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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노래

새벽예배 2023.04.11 | 사무엘하 1장 17-27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장 17-27절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새벽 묵상

한 5년 전인가요? 암과 투병하다 끝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쓴 초등학교 6학년 12살 이슬 이라는 어린이의 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이란 시가 한 때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그 시를 읽어드립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 때는 왜 몰랐을까? 그 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그 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 봅시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 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얼마 얼굴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동요가 있습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최순애는 도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어린이 계몽 운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던 8세 위의 오빠 최영주를 그리며 이 노래 가사를 지었고 작곡가 박태준이 선율을 붙여 만든 곡이죠.

이렇게 그리움을 담은 시요 그리움을 담은 노래가 성경에도 나와 있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입니다. 일명 “활의 노래”라고 하는데요. 18절을 보십쇼.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22절도 보십쇼.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여러분 기억하시죠?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사울은 사무엘상 31장 3절에 나온 대로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고, 사무엘상 20장 17절 이후에 보시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활과 화살로 다윗에게 우정을 표시하며 다윗을 피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그런 활과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라고 해서, “활 노래”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노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빼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노래, “활의 노래”를 함께 묵상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순수한 믿음과 사랑의 사람 다윗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평생을 살면서 이런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를 많이 지으시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 뜨거운 사랑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활의 노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첫 번째는 1. 우리는 이 노래에서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절 보십쇼.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할례 받지 못한 이방 군대 블레셋에게 패배한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행여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그 거룩하신 이름이 모욕 당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알리지 말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에 불타는 의분, 의로운 분노가 일어났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이 있었기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하며 거룩한 호통을 친 다윗, 담대하게 나가 물맷돌 한방으로 골리앗의 정수리를 때려 눕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것에 분노하지 말고, 믿지 못할 사람 믿고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화내지 말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분노하는 거룩한 분노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돈 때문에, 손해 본 것 때문에, 자존심 상하게 한 것 때문에 화내지 말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때문에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왜 내 것은 받지 않으시는가? 질투 때문에 분노하다가 동생을 돌로 쳐 죽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지도자 모세도 다 잘 하다가 딱 한번, 또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혈기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친 것 때문에 그토록 직접 가고 싶었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왕비 이세벨은 성 앞에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지 못해 병이 난 남편 아합왕을 보고서 죄 없는 나봇에게 분노하여 거짓 증인을 두명 세우고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주었습니다. 결국 이 악한 왕비 이세벨 어떻게 되었습니까? 후에 성에서 떨어져 동네 개들이 다 몰려와서 이세벨의 몸을 뜯어 먹어 죽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분노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부부싸움 있지 않습니까? 부부싸움도 사실 첫 시작은 별것 아닌 것 때문에 출발합니다. 그런데 점점 더 싸움이 커지면서 싸움 중에 하는 말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큰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지 않습니까? 부부싸움 안 해봤다는 얼굴이십니다. 남편이 있어야지 싸우지 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진짜 분노해야 할 일은 죄로 죄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넘어가는 것에 분노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분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그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해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가만히 있지 마시고 다윗의 거룩한 분노를 본받으시면서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의 사람으로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충성의 마음을 확인하시고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사실 무고하게 사울왕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질투심이 발동하여 끈질기게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의 칼을 피해 수년간을 정처 없이 피해 다녔습니다. 심지어 적진으로 피하여 침을 흘리며 미친 척도 해야 했고 가족과 헤어지기도 했고,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때에 저 같았으면 할렐루야! 만세 삼창을 하면서 기뻐하고 잔치를 벌이며 풍악을 울리고 온 동네방네 승리의 깃발을 들고 펄럭이며 기뻐했을 텐데, 다윗은 기뻐하기는커녕 진정으로 슬픔을 토로합니다.

22절 끝에 보십쇼.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즉 사울의 용기를 칭찬하면서 23절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같으면 사울의 이름은 빼고 그냥 요나단만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했을텐데,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사울의 덕을 높이면서 심지어 24절 보십쇼.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며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철저하게 사울왕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사울왕의 단점을 폭로하거나 그의 실정이나 폭정을 떠올리고 험담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에게서 그 모진 고난과 애매한 핍박을 당했으면서도 사울왕을 모신 신하로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다윗의 모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받은 만큼 다 갚아주고, 손해 당한 만큼 그대로 받아내는 것, 원수의 멸망에 기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 일반적인 모습이요. 거룩한 성도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14절 이후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원수 갚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채찍질하고 모욕했던 모든 놈들을 능히 한방에 없애버리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직 한 분 하나님께 철저히 충성하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 영혼 구원하는 일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된 분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충성된 그리스도인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 되시고 내 원수 갚는 일을 누르고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의 소원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다윗의 신실한 우정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활노래의 결말 부분은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윗의 애절한 심정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던 친구였기에 다윗은 이렇게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26절 보십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요나단의 사랑은 그 강하다는 여인의 사랑보다 더 깊고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이 감동적인 요나단의 사랑,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요나단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중에는 그의 아들 두발 절름발이 된 므비보셋을 친 아들처럼 여기고 사랑하고 돌보게 됩니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점점 더 세상이 포악해져 가고 있고 계산적이 되어가고 있는 이 때에 저와 여러분과 모든 성도들 모든 관계 가운데 이런 감동적인 우정의 이야기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자매의 풋풋한 은혜의 이야기들이 넘쳐나게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지은 시 중에 시편 133편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은 모세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아론을 성결케 한 거룩한 기름을 말합니다. 가장 깨끗하고 고귀함을 상징하는 기름입니다. 건조하고 긴 여름에 헤르몬 산의 이슬은 나무들에게 생명을 주는 달콤한 물입니다. 신실한 우정, 신실한 형제애가 그토록 깨끗하고 고귀하며 생명을 주는 가장 달콤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깨끗하고 아름답고 귀한 신실한 우정들을 우리와 쌓으시려고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 바로 참 좋은 저와 여러분의 친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감사하시고 그 신실한 우정을 나와 관련된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눠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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