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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새벽예배 2023.01.31 | 사무엘상 5장 1-12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5장 1-12절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사람은 평생 동안 세 가지 손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는 바위손(주먹을 쥔 상태)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무엇인가를 손안에 꼭 쥐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세상 것을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자기 본위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소유욕이 강하죠. 사람들 중에는 이 바위손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의 끝이 코앞에 와 있는데도 바위손을 결코 풀지 않는 사람 이기적인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가는 안타까운 인생이 있습니다. 한편 아이가 조금 자라게 되면 두 손가락을 펴는 작업(가위손)을 합니다. 조금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내 것을 조금 나누어주는 태도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 손가락은 자기를 향해 쥐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 높다는 표시입니다. 다른 사람을 조금씩은 생각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어른이 된 성숙한 사람은 손을 활짝 펴는 것입니다(보의 손). 이것은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 올 때부터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다 나누어주고 가야 함을 깨닫고 열심히 베푸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이만 어르신이 되어 가지 마시고 모든 손을 펼치는 집착하지 않고 나누어 주는 진짜 어른의 성숙한 손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밀림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는 철학, 신학, 음악, 의학의 네 개 부문에서 박사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프리카 원시림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했습니다. 어느 날 그곳을 방문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이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십니까?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슈바이처는 대답했습니다. "나를 그렇게 안쓰럽게 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손이 펼쳐진 나눔의 손 진짜 어른의 성숙한 손이 되시고 주님의 손이 되어 일하는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시기를, 즉 하나님의 손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맥 브룬순은 ‘당신이 찾던 하나님’이란 책에서 하나님의 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구원하고, 용서하고, 돌보고, 지켜주시기에 넉넉하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질 찰나에 경고하신다. 비록 죄에 빠지더라도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 깨끗하게 하시고, 전보다 더욱 축복하신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확신하고 그 분의 손길 안에서 안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안식하라. 그곳은 궁극적인 만족과 축복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손”입니다. 6절 보십쇼.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7절 끝에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9절 보십쇼.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모든 성읍에 더하사” 11절 끝에 보십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블레셋 곳곳에 여호와의 손이 임하여 그들을 치시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이 블레셋 지역 곳곳을 쳐서 재앙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제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온 이스라엘 군사들 앞에서 약간 떨기는 했습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하면서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하면서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들을 친 이스라엘의 신의 상징 하나님의 궤를 보고서 움찔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이스라엘은 블레셋 앞에서 생각보다 어이없게 패배하고 맙니다. 무려 이스라엘 보병만 삼만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블레셋은 너무 좋았습니다. 승리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당시의 전통대로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과 이스라엘의 신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의 신 다곤의 신전에 바치게 됩니다. 2절 보십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허리 위쪽은 사람의 형상이요 허리 아래쪽은 물고기의 형상인 다곤 신전에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두었으니 이스라엘로서는 통탄할 노릇이요. 블레셋은 그 사기가 중천에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철저한 패배요 블레셋에 철저한 승리였는데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두고 난 다음날 블레셋에게는 참으로 참혹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곤 신이 땅에 엎드러져 하나님의 궤 앞에 얼굴을 땅에 닿고 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3절 보십쇼.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자 이 모습을 본 블레셋 사람들은 깨달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신은 살아계신 신이시고 다곤은 그냥 인간이 만든 신이구나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이걸 모르고 그들은 이 상황을 그냥 우연이다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재빨리 원상복구 합니다. 3절 맨 끝에 문장 보십시오.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싸인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은 조금 더 특단의 조치를 보내십니다.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을 끊어버리십니다. 4절 보십쇼.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아무도 없는 다곤 신전에서 전날과 똑같이 다곤이 땅에 엎드러져 하나님의 궤 앞에 절을 하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머리와 손목이 두 손목 다 끊어져 있으니 여러분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로 1. 하나님은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소부재 계시지 않으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가 거하는 어디든지 계실 수 있으신 하나님, 어제 새벽에 본대로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만 있는 줄 알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궤를 그냥 가지고 전쟁에 나가면 이길 줄 착각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 안에 제한된 분이 아니심을 보여주셨다는 사실. 눈에 보이는 대로 블레셋의 승리인 줄 알았으나 이제부터가 전쟁의 시작임을 알려주시는 하나님 블레셋 곳곳으로 하나님의 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재앙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1절에 보면 아스돗에서부터 시작하여 6절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8절 끝에 보니까 가드에 가서도 심히 큰 환난을 일으키십니다. 8절을 다시 보십쇼. 블레셋 방백들은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그들의 결론은 에이 우연이겠지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아뿔사 했을 때는 이미 옮겨간 가드 전역에 큰 독한 종기가 퍼지고 말았을 때였습니다. 9절 보십쇼.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서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셔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런 어디나 계셔서 역사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을 시편 139편 7절부터 10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우리는 두 가지 특별히 깨달을 것이 생깁니다. 우선 하나님은 나를 어디서나 보고 계신다. 그러기에 아무도 없다고 죄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키신다는 사실,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는 사실.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셔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우리는 지존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존 하면 존칭 중에 극존칭의 표현인데 지극히 존귀하시다는 뜻입니다. 그 어느 것도 견줄 것이 없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신데, 그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을 블레셋은 그저 이스라엘의 신 정도로 무시하고 다곤의 신전에 가두어 두었으니 하나님은 격한 사건을 통해 지존하심을 드러내십니다. 다시 2절 살펴보시면 블레셋의 신 다곤은 아까 허리 위로는 사람의 형상이요 허리 아래로는 물고기의 형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이렇게 생겼는가? 히브리어 다곤은 다그와 다간의 합성어입니다. 다그는 물고기이고 다간은 옥수수라는 뜻입니다. 해안과 내륙에 골고루 산재하여 살았던 블레셋은 바다의 소출의 대표인 물고기와 내륙의 풍성한 소출을 상징하는 옥수수를 합쳐서 다곤이라는 비옥과 풍성한 소출의 신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형상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디 이까짓 게 고개를 들 수 있느냐? 하시면서 다곤 형상의 목을 자르셨고 이 물건이 무슨 소출을 안겨주겠느냐? 하시면서 손목을 자르셨을 것입니다. 우상은 그저 그냥 형상일 뿐이요. 우리 인간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쓸모없는 우상임을 드러내시고자 했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중시 여겨 다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잘 다스리라 잘 관리하라 하셨습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잘 다스려야 할 것들이요. 그것들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며 사용할 것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을 지존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방법입니다. 세상에 돈 앞에 권력 앞에 명예 앞에 비굴해지지 마시고 당당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다스릴 것들이구나” 하고 어깨를 펴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의 손을 깨닫고 감사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가 가는 곳마다 블레셋 전역에 전염병을 퍼트리십니다. 마지막 12절 보십쇼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처음에 하나님의 궤를 가져올 때는 승리의 웃음이 가득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서 울음과 통곡이 가득하여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맷힌 고통의 부르짖음이 들렸던 블레셋,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블레셋 지역 여기저기서 죽음과 통곡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해 듣고 어땠을까요? 아마 기쁨의 축제를 벌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무엇을 상징하는 줄 알고 하나님의 임재를 아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통하여 일하시고 승리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찬양받으실 존귀하신 손이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궤가 가는 곳마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블레셋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철저한 심판의 손 두려움의 손이었을 것입니다.

이 땅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은 구원의 손이 될 것이고 아무리 전해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손은 무서운 심판의 손이 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찬송하고 또 찬송하면서 승리하는 하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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