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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었습니다

새벽예배 2022.05.04 | 고린도전서 1장 26-31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1장 26-31절


26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새벽 묵상

어린아이들은 서로 자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첫 번째 아이가 엄마 자랑을 합니다. “우리 엄마 요즘 수영 배우는데 잠수를 30초나 한다! ” 그랬더니 다른 아이가 지기 싫은지 이렇게 할머니 자랑을 합니다. “30초 흥! 우리 할머니는 제주도 해녀라서 잠수를 50초나 한다. 엄청 오래하지? 까불지 마라! 그랬더니 또 다른 아이가 말합니다.“우리 삼촌은 작년에 물에 들어가서 지금까지도 안 나왔다고 너야 말로 까불지 마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런 이솝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사슴이 목이 말라 호숫가로 물을 마시러 갔습니다. 이때 사슴은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 가지 모양 여러 갈래로 뻗친 자기 뿔을 보고서 그는 감탄했습니다. beautiful! 내가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모두 다 내 뿔을 보고 부러워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래쪽에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게 되었는데,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왜 다리는 왜 이다지도 보기 싫은가 이런 다리는 없는 것만 못하다 하고 한탄을 했습니다. 사슴이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서 사슴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사슴은 그 소용없는 물건이라고 한탄했던 가는 다리에 의지하여, 숲속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답다고 자신했던 큰 뿔이 나무 가장귀에 걸려서 사슴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고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쌍한 사슴은 이렇게 후회를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욕만 하던 다리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자랑으로 알았던 뿔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랑하고 있고 무엇을 한탄하며 후회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 당장 눈앞에 좋게 보이는 것 때문에 자만하고 자랑하는 자 되지마시고 진짜 자랑할 것들을 발견하시고 마음껏 자랑하시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는 아덴과 더불어 가장 헬라 문명이 꽃을 피운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 비해 헬라 철학과 사변적 지식, 화술에 특별히 능통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린도에서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즉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교훈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은 미련한 것을 믿기에 어리석은 자들이다 라고 치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제 본문 18-25절에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분명하게 제시하였습니다. 미련하다 어리석다 놀리는데 누가 진짜 어리석고 미련한 자인지 아느냐? 바로 십자가의 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바로 미련한 자이다 하고 단언하는 바울

우리를 만드시고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이시야 말로 모든 지혜의 근원이요 그 앞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 즉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구원받게 된 아무 조건 없이 자격없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들이 바로 우리다. 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큰 섭리만이 참으로 자랑할 만한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교훈하는 사도바울,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었습니다.”라고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난 한 것이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고백하며 전하고 있는 바울의 메시지에 집중하시고 이 바울의 자랑이 바로 나의 자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만이 나의 자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1. 첫 번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편견이 없으시고 반전의 역사를 펼치시는 분이라고 표현하면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저히 편견의 세상이요 약육강식의 사회입니다. 인정하십니까? 객관적이지 못하고 학연 지연 혈연을 거의 벗어버리지 못하는 한국인 사회, 한국이든지 여기 미국의 한국인 공동체이든지 개관적으로 편견 없이 일이 이루어진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목사님들도요 함께 일할 목회자를 선택할 때도 그분의 능력보다 학연, 지연, 혈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초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한국인 사회에서의 편견을 대표적으로 깬 사람이 바로 축구 감동 거스 히딩크 감독입니다. 누구 추천, 누가 잘 알고 누구랑 친하고 심지어 누구의 가족이다. 이런 것은 히딩크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히딩크는 정말 축구를 사랑하고 그 실력이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을 정확히 선택합니다. 그랬더니 2002년 한국 축구가 4강까지 올라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편견이 사라지고 약육강식 온갖 줄과 빽이 있는 자만 살아남는 구조를 벗어버리니까 모든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사울 다음의 왕을 선택할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첫째 엘리압, 외모가 뛰어나고 훌륭한 아비나답과 삼마가 다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맨 마지막 8째 되는 다윗,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다윗을 하나님은 선택하십니다. 편견이 없으신 하나님,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이거였습니다. 너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저와 여러분도 편견을 버리고 중심을 보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또한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편견이 없으신 분일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반전의 역사를 펼치시는 분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7절과 28절을 보십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아주 당연한 듯이 돌아가고 있는 약육강식 그저 힘 있는 자만 강한 자만 살아남는 사회구조 속에서 반전을 이루시고자 당연하지 않은 방법으로 오히려 정반대의 방법으로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들어 쓰시사 우리의 편협하고 교만한 마음과 생각을 뒤집어엎으시는 하나님. 다시 27절과 28절을 보면 택하사라는 단어 “엑셀레싸토”라는 단어를 한번만 써도 되는데 세 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택함이 아닌 하나님의 택함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인간이 택하면 편견과 편협함이 있기에 철저히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하나님만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선택하실 수 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무조건 다수결의 원리로 선택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다수가 선택하면 정말 옳은 판단이 맞을까요? 다수결의 원리는 민주주의의 원리이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아닙니다. 아까 이스라엘 초대왕 다수결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사울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힘, 사람의 힘으로 왕을 세우는 이스라엘 백성들, 결국 그렇게 인간의 힘으로 고집하여 세워진 왕이 이스라엘 전체를 힘들게 하는 악한 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나의 판단이 옳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꼭 다수결의 판단이 옳은 판단이 아닐 수도 있음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셔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공동체와 교회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두 번째로 육체를 가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시고 그러기에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고 하나님만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29절 보십쇼.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세계 만물 온 우주 은하계 전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곳까지 다 만드신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넓은 우주에 아주 작은 지구, 그 지구에 미국 땅에 LA에 사는 우리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고만고만한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아주 큰 집에 살거나 작은 집에 살거나 그저 도토리 키 재기일 뿐입니다. 여러분 개미를 보십쇼. 수십마리의 개미를 찾으면 다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태양을 눈으로 쳐다볼 수도 없는 연약한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바로 인간이라고 자기가 중심이라고 착각하고 함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거부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개미가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우리가 볼 때는 그저 살짝 한번 누르면 끝나는 것이 개미의 인생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마치 인간이 개미가 된 것처럼 낮아지고 또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셨을 뿐만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다시 29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을 생각해 보는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래 가사처럼 얼마나 내가 작고 보잘 것 없고 죄인 중에 죄인 부족한 자 중에 최고의 부족한 자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를 강조한 키에르케고르의 마음을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30절과 31절에 오직 예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앞에 30절 후반부에는 우리의 자랑이 되시고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4가지 성격이 특별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지혜 중의 지혜요, 의로우신 분이시오, 거룩하신 분이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1절의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주님 안에서, 즉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시는 삶,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철저히 죽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자랑으로 삼는 자의 모습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구원받게 된 감격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은 감격으로 살아가는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감격하며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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