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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10.21 | 에베소서 3장 14-21절 | 이선기 목사




에베소서 3장 14-21절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새벽 묵상

20살 때부터 교육 전도사를 시작해서 33살 될 때까지 13년 정도 전도사로 사역하고 2006년 4월에 한국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안수 후에 특별히 바뀐 것이 있는데 뭘까요? 예 축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연습을 많이 하기는 했는데 처음으로 축도하려고 하니 정말 떨리더라고요. 그것도 대 선배 목사님들 앞에서 축도를 하게 되니까 떨리는 게 두 배였습니다. 처음에 두 손을 올렸더니 하도 떨어서 무슨 강시도 아니고 너무 떨리니까 한 손만 들고 왼손으로 오른 팔을 붙잡고 축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보기보다 다르게 상당히 겁도 많고 소심한 스타일입니다.

감사한 것은 아무리 소심하고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축도를 했어도 하나님은 그 축도를 기뻐하셔서 오늘날까지 무사히 사역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축도는 영어로 ‘Benediction’이라고 합니다. ‘Bene’란 말은 ‘Good’이란 뜻이고, Diction이란 'Words'란 뜻입니다. 축도(祝禱)를 한자어 뜻대로 보면 “복을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이 축도 Benediction’의 시작은 민수기 6:22-27와 고린도후서 13:13절 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6:22-27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복을 선포하라”고 하셨고, 고후 13장 13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말씀들을 근거로 축도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번역을 보면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새번역에도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등 ‘기원’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축도는 ‘선포도 되고 기원’도 된다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설교에서 잘 다루지 않는 축도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할까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 3장 제일 끝부분에서 바울은 에베소서의 교리적 부분 1-3장을 마무리하면서 마치 축도하듯이 신앙 성숙을 위한 축도,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간절한 기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축복의 선포와 기원의 간절한 기도,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이런 기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축도를 잘 들으시면 꼭 등장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뭐죠?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각 특징을 표현하면서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삼위일체 세상이 알 수 없는 가장 신비한 형태로 존재하시는 우리보다 먼저 존재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이 우리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는 복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가장 완전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축도, 그 축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1. 우선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밝히며 축도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축도할 때 목사님들이 뭐라고 시작하죠? 지금은 우리를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바로 그겁니다. 14절 보십쇼.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뭐라 해도 만물을 지으신 유일한 창조주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뭡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만 들으면 상당히 제한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셨다. 즉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는 것을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만 지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처음과 나중 되시는 하나님, 즉 세상의 시작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끝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지으신 하나님은 신명기 5장 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겨우 100세를 살기 힘든데 하나님은 천대에 이르기까지 주관하신다. 즉 시간의 흐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14절 끝에 보시면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지으신 모든 것들의 존재 이유를 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제 두 딸 이름이 유빈 수빈입니다. 유빈은 기쁠 유자에 빛날 빈자입니다. 기쁨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라. 수빈은 빼어날 수자에 빛날 빈자입니다. 세상에서 뛰어나게 되어 세상을 빛나게 하라. 여러분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작명소 가서 돈 주고 지은 것도 아닌데 이름을 이렇게 잘 지었습니다. 누가 지었을까요? 제가 지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었습니다. 잘했죠? 여러분 아버지가 딸 이름을 짓는 데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지금 바울이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되 소망을 담아 지으셨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이유,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존재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도 모기도 그 존재의 이유가 다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저게 왜 필요 있나? 싶어도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셨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저 나만 위해 살고 있습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찾으시고 이름을 주신 하나님,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땅에 나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왜 태어났는가? 이건 실수 중에 실수다. 이는 하나님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분명히 내 삶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찾으시고 하루하루 순간순간 의미 있는 인생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16절 보십쇼.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축도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는 표현이 들어가죠. 성령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성령은 풍성함이 특징입니다. 축도할 때를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성령을 표현하면서 꼭 뭐라고 합니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성령의 부족함이 없이 채우시는, 풍성한 역사하심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사도행전 2장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늘 본문 뒤에 19절을 보십쇼.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쩨쩨하고, 재고, 계산하고, 쫌스럽고 이런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성령의 특징은 16절 다시 보십쇼.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단순히 육체를 나타내는 겉 사람과 대조되는 사람의 영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속사람은 헬라어로 에소 안쓰로폰 이라고 발음하는데 이 속사람의 속인 “에소”는 본래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영적인 면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히브리적 관용어였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겉모습은 약해 보여도, 심지어 병들었을지라도 그 속사람 그 영을 강건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비록 겉모습은 약해보여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엄청난 일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이 고백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표현이죠? 바울이 눈에 안질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세 번이나 크게 하나님께 제발 이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했던 고백입니다. 바울의 안질이 고쳐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대로였습니다. 육신은 너무 고통스러운데 병든 몸인데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즉 비록 병들고 고통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약한 가운데서 더 놀라운 역사를 들어내시는 하나님,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비싼 것 좋은 것, 화려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약함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병든 것, 부족한 것을 오히려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약한데, 병들었는데, 부족한데 나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은 상상할 수도 없이 크고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를 사용하신 것은 모세가 약할 때였습니다. 40세 팔팔하고 힘이 넘칠 때가 아니라 80세가 되어 힘도 없고 몸이 약할 때 그래서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을 때 그 때 출애굽의 지도자로 택하시고 사용하신 하나님. 세상 사람들의 자랑과 다른 자랑을 하는 성령의 역사를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심을 간구했습니다. 17절 보십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마음에 계시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졌다는 표현은 완전한 정착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셔서 정착하시고 완전히 자리를 잡으셨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나는 없어지고 내 욕심, 내 자존심, 내 고집이 다 사라지고 내가 바쳐진 제물처럼 완전히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정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간에 왜 갈등이 있는가? 내가 죽지 않아서 내가 죽고 내 고집이 죽고, 내 자존심이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다. 여러분 내가 철저히 죽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을 목 놓아 찬양하고 있습니다. 20절 21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절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구하시고 저와 여러분 속에 찬양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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