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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8.05 | 사도행전 18장 18-28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8장 18-28절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24-25절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했고, 25절에는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개되고 있는 아볼로를 보면, 그는 진실하고 열정적인 훌륭한 일꾼입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체험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에 관해서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냥 아는 지식으로만 있을 때 그 아는 지식은 생명이 없는 겁니다. 생명이 없는 지식은 불완전한 겁니다. 바로 아볼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볼로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데려다가 본문 26절에 보면 “브리스길라와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본문 27절에 보면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도 예수 믿고 열정을 가진 재주도 능력도 많은 아볼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꽃에 물을 주듯이 잘 가꾸어 충성된 일꾼이 되도록 잘 가르치고 함께 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잘 연결해 줄 징검돌이 필요 합니다. 말씀을 더 깊이있게 가르쳐 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있어야 하고, 본문 27절의 아굴라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잘 영접해 줄 것을 편지로 부탁한 “형제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감동적인 간증이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 39번가의 어느 회사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는 ‘빈센트 존스’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존스는 출근길에 25센트를 구걸하는 홈리스와 마주쳤습니다. 홈리스는 서 있기도 불편한 듯, 한 손은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구걸을 했습니다. 도심에서 그런 홈리스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날 존스는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존스는 25센트 동전 두개를 주고, 커피와 샌드위치도 사주었습니다. 홈리스들에게도 구역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39번가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술을 사기 위해 구걸을 계속했습니다. 존스는 이 홈리스를 볼 때마다 술을 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몸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스스로 술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존스는 그 홈리스에게 매일 같이 끌려들어가는 듯한 자기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존스는 때로 “하나님, 왜 이 사람이 계속 나에게 나타납니까?”하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홈리스는 ‘레이몬드 로렌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존스를 만나기 전까지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렌스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맨발로 길에서 자다가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모두 잘라 내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스는 이 사람이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렌스는 누이동생 ‘캐서린’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캐서린도 날마다 39번가로 출근했지만 오빠가 그 거리에서 동냥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로렌스는 보스턴에 있는 음대를 다닌 재즈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으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는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로렌스의 어머니의 소재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존스는 로렌스를 바로 고향에 데려다 줄까도 생각했지만 일단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한 달 동안 술도 끊게 했습니다.


그제서야 존스는 로렌스를 포츠머스에 사는 어머니에게 데려갔습니다. 아들을 맞은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로렌스는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습니다. 술을 갑자기 끊은 데 따른 후유증이었습니다. 로렌스는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 시작되는 주일에 존스는 로렌스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로렌스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피아노 연주에 울음과 합창이 뒤범벅됐습니다. 존스는 혼잣말로 “내 친구 레이몬드 로렌스”하고는 조용히 교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트럭 운전사 죤스의 관심과 수고로 뉴욕 한복판의 삭막한 광야에서 죽어가는 한 사람(로렌스)을, 인애하신 구세주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바로 죤스는 한 영혼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징검돌이 되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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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계곡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 나무가 모여서 각자의 희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 번째 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꿈이 있었지 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거기서 하나님 성전이 되었으면 해.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경배 드리러 와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꺼야” 두 번째 나무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 꿈은 지중해의 큰 범선이 되어서 검푸른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싶어” 그 때 세 번째 나무가 또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혼자 남아 있고 싶어. 그래서 높게 자란 나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싶어. 그리고 뜨거운 여름철에는 피곤한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싶어”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도끼가 첫 번째 나무를 잘랐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의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제단이 되리라는 꿈은 깨어지고 베들레헴 어느 집 말구유가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심한 수치감에 몸을 떨었습니다. '내 꿈은 어디 가고 겨우 구유가 되다니”


두 번째 나무도 베어졌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배를 짓는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도 허무하게 깨어졌습니다. 넓은 지중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겨우 갈릴리 호수 조그만 고깃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나무는 자신이 그렇게 이름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에 대단한 수치를 느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가 바라던 대로 오랫동안 그 언덕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 역시 잘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죄인을 처형하는 세 개의 십자가 형틀이 된 것을 알고 그만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듣지 않고도 은혜로운 결론에 도달한 내용을 상상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보잘것없는 말구유가 되었음을 불평했으나, 어느 거룩한 밤하늘에 별이 찬란할 때 마리아라는 처녀가 한 아기를 낳아 그 구유에 눕혔습니다. 그 아기는 메시아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성전도 이 구유와 같은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고깃배가 된 두 번째 나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존재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중해의 꿈이 깨진 채 좁다란 갈릴리의 고깃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작은 배에 오르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갈릴리의 조그만 고깃배는 세상 어느 범선보다 더 큰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 편 세 번째로 십자가가 된 나무에서 어린양 예수님께서 인류의 속죄를 이루시고,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이 땅의 어느 교회를 가나 그 나무의 모습을 본 딴 십자가가 걸려있습니다. 그 나무는 죄의 수렁에서 구원을 열망하는 수 없는 인생들에게 영생과 믿음의 상징이 된 겁니다. 이처럼 계곡에 서 있던 세 그루의 평범한 나무들은 그 꿈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실패한 것 같았으나 참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짧은 생각으로 자기 인생을 무의미하다고, 불행하다고, 실패했다고 체념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름 없는 자 같으나 도리어 유명해지고, 또한 죽은 것 같고,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아볼로와 에베소교회 교인들이 배려해주는 큰 사랑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이런 사랑의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서로를 긍휼이 여기는 자비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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