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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7.15 | 사도행전 10장 34-48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0장 34-48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새벽 묵상


사도행전 10:31절에 에 보면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다”고 하실 정도로 고넬료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경건하고, 종교성이 풍부한 고넬료도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입니다. 성경은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첫째로 말씀이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화평의 복음이란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고넬료에게도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던 겁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는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은 유대인과만 화평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보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 때는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에 이끌리어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으면서 크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화평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38절에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고, 그리고 “두루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41절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산다고 해도 오늘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서 반드시 들어야 할 복음은 하나님과 화평케 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간증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다는 외침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선행을 추구하는 종교도 많습니다. 도덕적인 완벽을 추구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해 고넬료에게 전한 복음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의 화평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둘째로 오늘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들은 복음은 예수님만이 죄사함을 줄 수 있는 재판장이라는 겁니다.


본문 42절에 보면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고넬료가 알아야만 하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삼으셨다는 겁니다.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을 한 마리 훔쳤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고소당한 피고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그 양은 며칠 전에 잃어버렸던 원래 자기 양이라는 겁니다. 판사는 그 양을 법정 안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로 하여금 문밖에 나가서 양을 부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그 특유한 목소리로 양을 부르자 쏜살같이 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이 “양은 주인을 알아봅니다” “꽝꽝!” 재판이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겁니다. 우리가 늘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 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재판장이 되실 겁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할 겁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그들은 지옥의 사자 음성밖에 들을 수 없는 것이 재앙입니다.


그러나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고소할지라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정확히 자신의 양을 구별해 내실 겁니다. 그래서 그 때에 저를 믿는 자마다 주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을 겁니다.


1825년부터 1855년 사이 러시아의 훌륭한 통치자로 니콜라이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를 친히 관리하였는데, 종종 평복을 입고 군대를 순찰하였습니다. 태만하고 게으른 군인은 책임을 물러 벌을 주고, 직무에 충실한 군인은 포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니콜라이 황제는 한 장교의 책상 위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이 산같은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라고 써놓은 쪽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번민하던 장교가 누워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본 황제는 그 종이 밑에 ‘니콜라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장교가 황제의 서명을 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 황제가 놓고 간 그 돈을 보고 그 서명의 의미를 실감했습니다. “이 산 같은 빚을 갚아주실 수 있는 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자기가 섬기고 있는 황제임을 알았습니다.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의 남은 일생을 황제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산같이 많은 죄악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로 지은 죄, 생각으로 지은 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정말 많은 죄악 속에서 삽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합니다.


그럼 “누가 나의 이 산 같은 죄의 빚을 갚아줄 수 있는가?” 왕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죄의 빚을 갚아 주실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모른 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그 산 같은 죄의 빚을 갚으시려고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겁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강물은 육지의 여러곳을 통과해 오는 동안 온갖 더러운 쓰레기와 폐물, 오물들이 세균과 독극물 등으로 오염된 상태로 바다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나 바다는 그 더러운 것들을 다 받아들여 짠 염수로 정화하여 깨끗한 해수로 만드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죄로 오염된 죄악들도 하나님의 넓은 은혜의 바다로 들어오기만 하면, 깨끗이 정화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더러워진 육신의 생각을, 세상적인 지식이나 교양이나 도덕으로 정화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깊이 뛰어들어 정화시키기 바랍니다.


고넬료가 경건하고 의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구제를 기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깨끗한 강물 정도입니다. 여전이 그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소독되어야 할 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썩을 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베드로를 보내 복음을 주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케 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여러분, “이 산 같은 죄의 빚을 누가 깊아주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죄사함 받습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설명을 한다면 어떻게 설명 하시겠습니까? 예수님 당시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범법자로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한 때 아들로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한 때 꺾인 소망으로 보았습니다. 병고침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은인으로 보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 보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내게 주시는 평화의 왕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재판장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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