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2.04 | 골로세서 2장 1-15절 | 구진모 목사




골로세서 2장 1-15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새벽 묵상


우리 교회의 역사의 뿌리가 45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민교회의 역사에 비교하면 그래도 꽤 그 뿌리가 깊이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뿌리가 깊이 내려도 한 번 시험이 오고 폭풍이 불면, 해마다 미국 동남부 지역을 강타해서 수백년짜리 나무도 건물들도 넘어뜨리듯이 아무리 뿌리가 깊은 교회도 넘어지는 겁니다.


오래된 나무들을 옆에서 보면 크고 우람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곳곳에 상처와 흠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뿌리가 깊으면 나무는 크고 우람할지 몰라도 곳곳에 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역사가 깊으면 썩어지는 부분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크다는 것 하나만으로 늘 든든할 것으로 생각하고, 안일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는 뿌리를 흔들어 놓을만한 환난을 언제 만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역사의 뿌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깊이 내려야 할 신앙의 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 첫째 뿌리가 어떤 뿌리입니까? 믿음의 뿌리입니다.

오늘 본문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시험은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하여 찾아오는 시험도 너무 무섭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으면 말 한마디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뿌리가 얕으냐 깊으냐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바람이 불어봐야 압니다. 날씨가 가물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뿌리가 흔들려서 곧 뽑혀집니다. 가뭄이 조금만 심해도 잎이 시들어가고 말라죽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으면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믿음의 뿌리가 깊으냐 얕으냐는 어려운 환난의 바람이 불거나, 사람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할 때, 비로소 판단됩니다. 똑같은 어려운 시험이라도 믿음의 뿌리가 있는 교회는 오히려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견고해 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교회는 온통 흔들리며 성도들이 실족하여 믿음생활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밀 까부르듯이 까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모두 든든한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사랑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사랑은 만병통치약과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류를 새롭게 만들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움은 허다한 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사랑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관용하는 겁니다. 사랑은 묶인 것을 풀어주는 겁니다. 사랑은 얽어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성도를 사랑하십시오.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 사랑하는 모습을 이 지역에 널리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 왕에게 두여인이 아이를 한명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하면서 판단해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솔로몬이 아이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아이를 가지런히 뉘어 놓고는 칼로 절반 잘라서 나눠가지도록 했습니다. 그 때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마음이 북받쳐 오릅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아이를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지지 못해도 아이는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 여인에게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가 아닌 가짜 어머니 여인은 반으로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솔로몬 왕은 그 아이를 죽이지 말고, '저 여인에게 주라'고 한 바로 그 여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진실한 사랑입니까? 교회야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없이, 내 욕심대로 편을 가르고 교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아집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면서도 “나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내 아들은 기왕 죽었으니 그 아들도 반으로 갈라 달라고 하는 여인과 다를바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마시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십시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관용할만한 일인데도, 성도들간에 그렇게도 이해하지 못하고, 덮어주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실망하는 겁니다.


여러분 성도간의 사랑하는 모습이 이 지역 구석구석에까지 전해지고 전해져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윌셔교회는 사랑이 넘친다는 소문이 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다시 믿음을 가지고 큰 꿈을 꾸면서 믿음 안에서 행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큰 일을 행하실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 믿음만 있으면 믿음의 분량만큼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믿음을 크게 가지십시오.


지금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윌셔교회와 45년동안 함께 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반드시 시행하리라”고 말씀 하실 겁니다. 할렐루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