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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1.30 | 스바냐 3장 9-20절 | 구진모 목사




스바냐 3장 9-20절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벽 묵상


미국에 이민 온지 10년이 되었지만 영어로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에 와서 한글 인쇄소를 경영하므로 영어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시민권을 취득할 필요성이 있서 시험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면접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험관이 질문을 합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새가 무엇입니까? 그 정도의 질문 내용과 대답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답변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독수리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할 수없이 시험관 앞에서 자신의 두 손으로 날개 짓을 크게 하며 독수리처럼 눈을 무섭게 떠 보였다는 겁니다. 그러자 시험관이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 평생에 이런 재치와 유머감각이 있는 동양인은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합격을 시켜 주었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뻐서 그 다음날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겁니다. “어머니 제 아내가 어젯밤 미국 사람하고 잤어요!” “뭐라고”


어렵지만 유머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유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선언입니다. 이 짧은 말씀 하나가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고 산다는 겁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되시고, 기쁨이 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라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는데, 실제로 삶에서 체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기쁨, 칭찬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살면서 화가나고 슬픈것이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거룩한 영적인 문제로 화가 납고 슬픕니까? 아니면 재물, 명예같은 세상의 문제로 화가나고 슬픕니까?


한 번이라도 교회 못나가게 된 것에 대해서, 예배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정해 놓은 기도시간에 기도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년초에 성경 일독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실천 못한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하신적이 있습니까?


군대에서 오랫동안 복무한 후에 제대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 분은 늘 군생활동안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말하면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노인에게 짓궂은 장난을 쳐보기로 마음을 먹고, 하루는 그 노인이 두 팔에 물건을 잔뜩안고 길을 걸어가는데, 짓궂은 청년들이 노인 뒤로 가서 “차렷”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 노병은 팔을 옆으로 내리고 차렷자세를 취했고, 안고있던 물건들은 땅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역전의 노병은 잘 훈련받은대로 반사적으로 군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을 취했던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받은 사람들로써 새로운 삶에 맞는 태도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욕망들을 죽이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 무엇에 열심인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열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에 열심인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게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것을 꼭 세상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교회일하는것만을 하나님일이라고도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것으로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을 나누지 않습니다. 세상속에서 일하는것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고,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세상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로 구분하는 기준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여 얻은 명예와 권력과 소득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썩어없어질 세상을 위한 겁니다. 그러나 그 얻어진 것들이 자신에 앞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위한 일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 살면서 재물이나 지식이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 이런 은혜를 받은 능력자들인 것을 믿고,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7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계시다고 했습니까?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이십니다. 전능자란 무엇이든지 못하실 것이 없는 분,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꼭 붙잡으십시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만을 붙잡으십시오. 억울하게 사방으로 우격다짐을 당했습니까?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만 붙잡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안보일지라도, 캄캄한 동굴의 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붙잡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겁니다.

마침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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