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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1.27 | 스바냐 1장 14절 - 2장 3절 | 구진모 목사




스바냐 1장 14절 - 2장 3절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새벽 묵상


영화가 The End라는 자막과 함께 끝이 나듯이, 게임이 Game Over라는 표시와 함께 끝이 나듯이 우리네 인생도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끝이 납니다. 싫든 좋든 이 파란만장했던 인생이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 역사에도 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날 역사의 화면에 The End라는 자막이 뜨면 이 역사도 끝이 날 겁니다. 연극 무대에 막이 내리듯이 이 역사도 막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 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 그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을 무려 1,518번이나 언급했습니다. 단일 사건에 대해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예언되고, 약속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잘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고, 그 날이 여호와의 날이며, 그 날에 이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겁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날은 왜 이토록 확실하게 약속되고 예언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그토록 여러 차례 강하게 약속하신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 활동을 했던 시기는 히스기야 왕 이후 므낫세, 아몬, 그리고 요시아 왕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스바냐 1: 4-7절과 3:1-4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우상숭배가 다시 만연하기 시작했고,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며 오히려 율법을 범하였습니다. 백성들도 온전히 여호와를 떠나 배반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불의와 부정이 극심했습니다.


스바냐는 그 시대를 바라보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스바냐 1:3절입니다.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15절에도 보면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분노의 날이요” 그랬는데, 이 분노의 뜻은 ‘마치 주전에서 물이 끓다가 뚜껑 너어모 끓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더 참으실 수 없어서 화를 폭발하시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더 강렬해 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진노가 폭발할 것을 예언한 겁니다. 즉,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본 겁니다.


2,000년이 되면서 미국의 시사 주간지인 타임지가 우리 인간의 21세기의 삶의 모습을 청사진처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17가지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유전공학적 기술 이용으로 암치료법이 개발되고, 2010년에는 가사일 돌보는 애완 로봇이 첫 선을 보일 것이고, 2020년 1천명 탑승, 시속 900키로 여객기가 등장할 것이고, 2030년 인공 폐, 신장, 간 등 인공 장기가 개발 완료될 것이고, 2050년에는 인간 수명이 140세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말대로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유토피아가 점점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은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우리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 이 상태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과학기술을 통해서 바벨탑을 쌓아가기만 한다면 여호와의 날은 더욱 가까이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는 이런 시대에 피할 길은 전혀 없는 겁니까? 여호와의 날을 대비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물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노아 가족 8사람은 홍수 심판을 면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멸망 때도 롯과 두 딸은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스바냐서에서 그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스바냐 3:12-13절을 보면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심판의 대상들, 멸망의 대상들을 다 추려 내고 남은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남은 자들 입니까? 우리가 남은 자 안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줍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가깝도다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고 했습이다. 이 말씀은 스바냐 선지자가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지만 스바냐 선지자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스바냐 선지자는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은 자들 그들은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지진이 다가오기 전에 들짐승들이 먼저 예감하고 대피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날에 남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날이 다가옴을 느끼고 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스바냐 선지자처럼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여호와의 날에 남을 자들은 오늘 본문 2:3에 보면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남들이 다 여호와를 등지고, 여호와를 떠나고, 여호와를 배반하며 살지라도 남은 자들은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찾는 삶을 삽니다. 성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땀을 흘립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시장으로 일터로 부지런히 나섭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 학교로 도서관으로 나섭니다. 즐거움과 쾌락을 얻기 위해 놀러도 가고 여행도 갑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 가지를 더 찾습니다. 아니 이것을 먼저 찾습니다. 바로 여호와입니다. 교회에서 여호와를 찾습니다. 가정에서 여호와를 찾습니다. 직장에서 세상 한 복판에서 여호와를 찾습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우선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잊으면 안됩니다. 어디 있든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 나라고 별 수 있나. 그러나 남은 자들은 하나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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