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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9.29| 히브리서 13장 9-17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13장 9-17절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새벽 묵상


구약시대에는 많은 제사들이 의무적으로 항상 드려져야했습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끊임 없이 속죄제를 드려야 했고, 봉사와 충성을 다짐하는 소제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화목제 등이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들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희생의 제사로 인해서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를 시작하면서 말씀 드렸듯이, 이 히브리서를 읽는 대상이 유대인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인데, 지금 이들이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여전히 보이는 제단과 제사에 집착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우리에게 제단이 있으니”라고 말해 주면서, 이제는 보이는 제단과 제사에서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드릴 제사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그 육체를 태워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는 제단”는 이 제단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고 했습니다.  “영문 밖에서 불살랐다”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동안에 그들이 거처하는 공동체 진영 밖에서 태웠다는 말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이 되셔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에서 희생의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은 겁니다.   그리고 속죄 제물로 드린 짐승의 피가 쏟아지고, 그 살이 다 태워진 것 같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피와 살을 다 희생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제사는 단번의 제사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가 폐해졌지만 구약 백성들에게 제단과 제물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제단과 제물이 있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의미는 다시는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영화롭게 했다고 할 때,  지금은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필요없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더 온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성도들이 오늘날 하나님께 항상드려야 할 제사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본문 13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치욕의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 골고다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우리들도 우리의 십자가를 달게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에서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약 백성들 같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이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겁니다. 이 말은 내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직접 동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죽이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찬미의 제사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갚을 길이 있습니까? 부모의 은혜도 너무 깊고 커서 갚을 길이 없다고 하는데, 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 위해서 내어 놓으신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이루신 속죄의 은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길이 있습니까? 



그래서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만입으로 찬송하기도 벅찬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을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의 크신 사랑 갚을 길이 없다면, 우리의 입술과 마음으로 감사 찬양하는 것 뿐입니다. 이 찬미의 제사는 단지 예배 시간을 통해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을 통하여 우리의 언행심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깨달음에서 나오는 찬양이어야 합니다. 전 인격을 다해 찬양드려야 합니다.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영적 예배,  찬미의 제사입니다. 



세 번째 드릴 제사는 본문 16절에 보면,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술로 찬양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단지 마음에서만, 입술의 찬양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합당한 행실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믿는다는 사람들이 교회안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 밖으로 나가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현실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선한 생각과 선한 행실이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뀌어서 모든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살아보려는 선한 행실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거치는 자가 아니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제사, 찬미의 제사, 은혜에 합당한 삶이 있는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도 비록 구약시대에 드렸던 짐승의 피와 육체는 아니지만, 주님께 드리는 예배에 과연 이런 헌신과 희생이 있는지, 과연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영적 예배인지,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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