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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9.28| 히브리서 13장 1-8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13장 1-8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으신 동일하신 분이시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럼 예수님의 무엇이 영원토록 동일한가요?



 첫째, 예수님의 존재입니다. 



중국에 가면 공자의 무덤이 있고, 인도에 가면 석가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리고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무덤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시고 영원토록 살아 계실 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존재에 있어서 불변하신 분이십니다. 



얼마 전에 오랜 만에 만난 교인이 있었는데, 저를 보고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요” 그래요. 왜 변한 것이 없겠습니까? 인사로 한 이야기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젊었구, 머리카락도 더 많았고, 더 잘생겼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다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문화도 변합니다. 그래서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가 여럿입니다. 그 중에 항상 저에게 인상깊은 성화는 어린양을 품에 안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온화한 얼굴과 사랑스런 미소,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안고 있다는 만족스러운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인상이 깊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긴 그 어린양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 양에게 무슨 고통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생활은 이런 어린양처럼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사는 생활입니다. 주안에 있으면 근심, 걱정할 것 없습니다. 왜 근심, 걱정합니까? 가만히 보면 자꾸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주님을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이 시간 마음이 괴롭고 답답한 분들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입니까?



이 말씀 그대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구원은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에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그랬습니다. 이 말은 “오직 예수 외에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예수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다정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휴일이면 술집만 드나들었고, 한 친구는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결과는 뻔한 겁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셋째로 예수님께서 주신 소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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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모든 인류에게 어제도 소망, 오늘도 소망, 영원토록 소망이십니다. 예수님은 미국사람, 멕시코 사람, 한국 사람,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십니다. 



그래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찬송하는 겁니다. 



유명한 화가 ‘죠지 프레드릭 왓츠’라는 분이 그려놓은 '소망'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둥그런 지구 위에 한 젊은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수건으로 눈을 동였습니다. 그는 소경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외롭게 지구 꼭대기에 앉아있는 여인.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가슴에 비파를 안고 있는데, 더 자세히 보면 줄이 다 끊어져버린 비파 외줄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것으로 이 여인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용의 그림입니다. 줄이 다 끊어져 버리고 남아있는 한 줄 이 외줄이 이 여인에게 소망의 줄이라는 내용입니다. 남북전쟁때에 이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소 잃어버린 소망을 찾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셉티멋 윈너’는 이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아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리에 부르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 언약을…”



그렇습니다. 인생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줄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업, 성공, 건강, 남편, 아내의 줄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한 줄 남은 외줄이요, 소망 줄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소망이 전혀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참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의 소망은 공통점이 있는데   잠깐   겉모양만 그럴싸 합니다. 물거품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기억합니다. 베드로전서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그랬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주님은 다른 사람아닌 나를 돕는 분, 나 같은 죄인을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에, 어려운 때에, 돕는 사람을 찾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에 누가 나를 도와주던가요? 물론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나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꼬치꼬치 따지고 돕습니다. 그리고 그 돕는 것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순수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도우실 때에 무조건 도와 주십니다. 어제도 오늘도 나를 도와주시고, 영원토록 나를 도와주실 분이십니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 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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