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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9.08 | 히브리서 5장 1-14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5장 1-14절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새벽 묵상


오늘은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와 말씀에 대해서 같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십시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통곡과 눈물의 기도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곧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주로 새벽과 밤을 이용해 기도하셨습니다. 아주 피곤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까?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위해서 였습니다. 즉, 병들고, 귀신에게 잡혀 사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는 밤낮으로 기도하셨던 겁니다.


우리도 피곤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연약성이 있고, 직장 일에, 가정 일에 쫓기다 보면 기도 시간을 잃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바쁜 사역 속에서도 기도 시간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기도했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정말 간절했고, 애통하는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절망하고 슬퍼하는 인생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받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는 처참한 예언을 하시며 통곡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의 기도는 땀이 핏방울 같이 되는 통곡의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 앞에서 사명 감당키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의 일에 헌신하기 위해서 통곡함으로,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끝부분을 보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이유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끝부분을 보면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기도만 했다고 해서 기도 응답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고, 기도에 합당한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2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지 간절하게 부르짖는다고 해서 응답이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가 내 삶과 일치될 때 능력 있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어떻게 진실한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온전한 행위가 없으면서 하는 기도는 결국 사무적이고,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기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 친지들을 위해, 이웃을 위해 통곡의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저들의 멸망을 내다보면 우리의 눈이 메말라 있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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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국민일보에서 오늘날 성도들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얼마나 갖는가?를 조사를 해서 통계를 낸 것이 있습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장로와 권사는 주당 2시간 37분, 집사는 1시간 27분,일반성도는 52분이다는 겁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여러분은 얼마나 성경을 읽고 계십니까? 그래도 집에서든, 교회에 나와서든 새벽에 기도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하루에 30분은 성경을 읽고, 30분 묵상한다고 할 때 적어도 일주일에 7시간은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믿는 자들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는 영적 성장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멀어진 사람은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내려줘도 그 은혜를 전혀 맛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할 때는 비가 내려도 “아 오는가 보다” 태양이 떠올라도 “아 태양이 떴는가 보다” 계절이 바뀌어도 “아 계절이 바뀌었고 아름답구나” 이렇게 생각하지만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그 하나하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로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기도로 표현하고, 그리고 선한 삶을 통해서 드러내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지으신 자연을 보면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을 찬양하고 ,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를 찬양하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성장하는 단계를 세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받아 먹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는 말씀처럼, 처음에는 열심히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단계는 받아 먹는 단계듯이 영적으로 갓 태어났을 때는 받아 먹는 것으로만 충분합니다. 듣는 것 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두 번째 단계가 스스로 말씀을 찾아 먹는 단계인데, 이 단계에 도달하면 단단한 음식도 씹을 수 있고 소화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찾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편식을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통제를 해 줘야 합니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 입에 안 맞아도 부모님이 그것을 좋다고 하니까 그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몸의 균형을 잘 유지해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왜 목사를 세우셨나요? 물론 교회를 안 나오고도 여러분 스스로 말씀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얼마던지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적 지식을 가진 목사들이 영적양식을 골고루 먹도록 가르쳐 주고, 또 먹여주는 겁니다. 어떤 것은 쓴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단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쓴 것도 먹을 줄 알고, 단 것도 먹을 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는 하나하나 여긴 어떤 영양소가 들어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먹습니다. 이런 사람은 건강합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 자녀들을 보면 이건 써서 못먹겠다면서 먹지 않습니다. 마치 말씀을 “이건 읽어도 이해가 안되서 못읽겠다”고 합니다. “늘 죽이고, 빼앗는 일이라 은혜가 안된다”면서 내게 맞는 것만 찾아서 먹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바르게 자라지 못하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스스로 말씀을 먹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나누는 단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건강하게 성장을 했으면,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 합니다.


정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꿀송이 같은 단맛을 느끼면, 이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열심히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영적으로 받아 먹기만 하는 어린아이 단계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스스로 깨닫고, 단단한 것 가지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단계에 이르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 말씀을 나눠주는, 성숙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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