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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7.12 | 사도행전 9장 32-43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9장 32-43절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베드로가 룻다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 있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 그를 일으켜 주었다는 것과 욥바의 다비다라는 여인이 병들어 죽었는데 베드로가 사린 사건이 오늘의 본문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몇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베드로의 믿음의 언어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8년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애니야’를 향하여 담대하게 본문 34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그랬습니다.


말에는 믿음의 말이 있고, 불신앙, 의심의 말이 있습니다.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는 12명의 정탐꾼 중의 10명은 불신앙의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가나안에 못간다, 강행하여 가다가는 몰살을 당하고 말 것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들과 우리는 사람과 메뚜기 같다” 라고 보고함으로 모든 사람을 낙심하게 하였고, 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충동질을 하여 나도 못가고 너도 못가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할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다,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함께 하시어 능히 우리를 가나안까지 갈 수 있게 하신다”고 믿음의 말을 함으로 이들은 자기들의 말대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놀라운 은총을 힘입게 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믿음의 언어, 긍정적인 말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8년된 중풍병자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 담대하게 외친 것은,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실지도 모른다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확신 있는 믿음의 선언인 겁니다.


이런 베드로의 절대 신앙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셨다는 사실 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말에 즉시 순종하는 애니아의 행동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는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아멘”하며 행동한 애니아의 순종과 베드로의 믿음이 합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겁니다.


베드로가 8년된 중풍병자에게 믿음으로 “일어나라”고 했을 때, 중풍병자가 주저했다든지, 못 들은척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환자가 “아멘” 하고 벌떡 일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 누가 나를 낫게 하십니까? 누가 나를 살리십니까? 누가 나를 새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까? 누가 내 대신 죽을 수 있습니까? 누가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을 주실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라는 믿음의 선언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의 말을 듣고, 즉시 “아멘”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일반적인 방법은,


(1)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묵상할 때, 깨달음으로, 감동으로 주어집니다. 평소 읽던 말씀이지만, 어떤 문제를 갖고 읽을 때, 그 말씀이 다른 때와 달리 섬광처럼 마음에 부딪쳐 옴으로 “아 이 것이야” 라는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2) 설교를 통해서 말씀 하십니다.

평소 기도하던 기도의 내용이 목사님의 설교속에 나오면서 “아 저거야, 저 말씀은 나보고 하는 말씀이야.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는 성령의 감동이 강하게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던 구약시대에도 대부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왕에게 말씀하셨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말씀 하셨고, 엘리야를 통하여 사르밧 여인에게, 엘리사를 통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도 주의 종들의 설교를 통하여 말씀 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귀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3) 또 우리가 기도할 때 깨달음으로, 감동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중에 깨달음으로, 새롭게 느끼게 함으로, 새로운 생각으로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기도중에 생각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은혜입니다.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또 때로는 평소 어떤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가령 잘 아는 사람중에 사고를 당했다든지, 갑자기 쓰러졌다든지 했을 때, 강력하게 “너 정신차려, 다음은 네 차례야, 일할수 있을 때 주의 일 해서 하늘의 상급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건을 통하여 나를 깨우고 있는 겁니다. 환경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의 귀가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신의 자리를 정돈하는 겁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그랬습니다.


8년 동안 깔고 뭉개었던 애니아의 자리는 냄새나고, 곰팡이 슬고, 썩은 자리였을 겁니다. 그 자리를 자기 스스로 정리정돈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뭉게 논 자리를 누구보고 정리하라 할 것입니까?. 내가 뭉게 논 자리, 내가 더럽힌 자리는 내가 정리 해야 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점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리를 정돈할 줄 안다는 겁니다.

사람은 자기 주변이나 환경, 그리고 자기가 사는 곳을 정돈할 줄 압니다. 도로를 정비합니다. 집안 살림을 정돈하고, 실내를 꾸미고, 숟가락 식기를 정돈해 줍니다. 옷장도 정리하고, 입던 옷, 덮고 자던 이불 정돈할 줄 압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개, 돼지는 정돈이라는 행위가 없습니다. 먹는 곳, 싸는 곳, 자는 곳, 눕는 곳, 노는 곳의 구분이 없습니다. 밥 그릇 정돈하는 법 없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법 없습니다. 사람만 자기 정돈이 있고, 주변을 정리하고, 신변을 정리합니다.


기독교는 정리와 정돈이 철저한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정돈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내 자신을 정돈하며 살아야 합니다. 삐뚤어지고 잘못된 내 행동을 정돈해야 합니다. 제멋대로 내뱉는 말, 제멋대로 사는 내 행동, 불순종하고 원망, 불평하며 사는 내 생활습관, 못된 버릇, 정리 정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 자리를 정돈하라” 중풍병자 애니아가 바로 오늘 우리 자신 입니다.


그러므로 5년, 10년, 20년, 30년 고집과 불신앙으로 쌓이고 쌓인 내 자리를 믿음의 자리로 정돈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신앙갖고 천국갈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불신앙의 자리를 정돈하고 믿음의 자리로 옮겨 앉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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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간 주의 음성듣고 일어 나십시다. 그리고 더럽고 추한 나의 자리를 정리 하십시다.

그래서 내 마음에, 내 가정에, 내 사업에 주님이 계실 자리를 마련 해 드리십시오. 주님 모실 수 있는 자리로 정돈해 드리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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