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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6.17 | 예레미야애가 5장 15-22절 | 구진모 목사




예레미야애가 5장 15-22절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새벽 묵상



어제 묵상한 말씀을 보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적들이 여인들을 욕보이고,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청년들은 맷돌을 지고, 어린아이들도 나무를 지다 쓰러지고, 노인들은 성문에 앉지 못하고, 청년들은 다시 노래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각계각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아주 중요한 한 구절을 보게 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다”라고 고백입니다. 이렇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원인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범죄에서 찾았다는 겁니다. 



오늘 나라의 정치를 보면 나라가 어려워지면 여당은 야당이 야당은 여당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예레미야 처럼 둘이 합쳐서 “우리의 부족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아마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우리의 부족때문입니다”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들을 속히 해결해 주실 겁니다. 교회의 부흥은 어느 한 쪽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질 때 틀림없이 그런 교회는 부흥하는 겁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는데 그냥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비통한 마음으로 이 말을 합니다.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오호(嗚呼)라!”는 아주 슬플 때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오호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도다”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기 바랍니다. 



이사야서 5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이 말씀이 읽을 때마다 감동적인 것은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벌이란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벌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말할 때 남의 말 하듯이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입니다” “오호라 나의 범죄 때문입니다” 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겪는 이런 어려움 때문에 본문 17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그랬습니다. 여기서 “이러므로”라는 말은 예루살렘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말하는 겁니다. 



마음이 피곤해졌다는 것은 은혜를 받지 못해서 영적인 힘이 마른 것을 말합니다. 기도가 막힌 것을 말합니다. 탈진된 것을 말합니다. 탈진이라는 말을 영어에서 ‘burn out’ 되었다고 말합니다. 불이 꺼진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도 때때로 마음의 피로를 느낀 일이 있습니다. 민수기 11: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는데, 백성들이 이번에는 고기가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이니까” 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무척 마음이 피로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로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피로도 문제지만, 마음의 피로, 신앙의 피로는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때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의심이 생깁니다. 마귀는 이 때를 노립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정치적인 지도자가 될 것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재정담당 장관 자리는 틀림없이 자기 것이라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점점 더 엉뚱한 일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성에 들어 가실 때 영광스럽게 말을 타고 들어가실 줄 알았더니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갑니다. 틀림없이 로마총독부로 갈 줄 알았는데 성전으로 갑니다. 피로를 느낀 가룟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 배반하게 했던 겁니다. 



마음의 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고민하시고 슬퍼하셔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마음이 피로하고 괴로울 때 기도로 극복하셨습니다. 고리고 말씀 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이겨내셨습니다. 



예레미야도 오늘 본문 21절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옛적 같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마음의 피로를 극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의 피로를 느낄 때 운동을 함으로써 그 피로를 극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만히 앓고 있는 것보다,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피로를 느낄 때 더 열심히 기도하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가 가치 있는 기도입니다.



본문 2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이 말의 속뜻은 “주님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주님, 진노를 풀어 주십시오” 라는 뜻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어저께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언제나 기억하시고 살펴 보시는 분이십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버림을 받았다고 느낄 뿐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정말 기도하기도 힘이들 때, 이렇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시면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새롭게 하사, 옛적같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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