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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12.09 | 전도서 1장 1-11절 | 구진모 목사



전도서 1장 1-11절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새벽 묵상


여러분, 인생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철학자들이나 하는 거창한 말 같지만,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전도서를 통해서 진정한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학자는  “인생은 미꾸라지”라고재미난 표현을 했습니다. 잡았다면 빠지고 또 잡아도 빠지고 마는 것처럼 인생은 미꾸라지다고 정의를 했습니다.  어떤 가수는 "인생은 쓰다만 편지다"고 했습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제각기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했는데, 파스칼은 “인생은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고 했고, 니체는 “인생은 배우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웃었다 울었다 하다가 끝을 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소펜하우어는 “무의미한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나면 빨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염세주의자 답게 말을 했습니다.



과연 인생이 이런 겁니까?



성경도 인생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드는 풀과 같고, 떨어지는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다고 정의하기도 했고, 인생을 나그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생은 나그네와 같은 행인 같고, 아침에 잠깐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또한 그림자와 같고, 풀과 같이 시드는 것이 인생이요, 꽃과 같이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인생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솔로몬은 3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잠언, 전도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청년기에 쓴 성경입니다. 그래서 아가서를 읽어보면 젊음의 열정과 또 뜨거운 연애 감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반면에 잠언은 중년기에 기록을 했고, 전도서는 노년기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과 전도서를 읽어 보면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잠언의 어투는 직설적이고 교훈적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등등, 이런 표현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그냥 들으면 알수 있고,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외우면 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접근 방법이 좀 잠언과 다릅니다. 역설적인 주장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취할 수 있는 쾌락을 다 취해봐라” 이렇게 말하고선 “다 허망하니라”고 한탄을 합니다. “돈이 좋다면 실컷 모아봐라, 얼마나 행복한지 한번 느껴봐라”고 말했다가 마지막에 “결국은 다 미친 짓이다” 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처음에 한 두장 읽다가 말아버리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다 읽어봐야 합니다. 결론까지 들어야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해 아래에서”라고 했는데, 전도서에 보면 “해 아래에서”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29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해 아래에서의” 삶에서 모든 것을 누려본 솔로몬 왕이 노년기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을 성찰하는 자서전적 고백록입니다. 



그런데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의 신앙을 보면, 솔로몬은 인생 후반기에 세속적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기록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전도서에는 삶의 허무, 염세주의 적인 삶에 대한 절망이 많이 표현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서의 이러한 부분만을 읽고 나서 “아,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성급한 태도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서 말하려고하는 주제는 믿지 않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겁니다. 



사실 전도서에서 “해 아래에서”의 삶을 많이 말했지만, 사실은 솔로몬은 “해 위”의 삶을 말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면 전도서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헛된 것을 강조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서를 읽는 모든 독자들을 대안부재로 이끌어 가는 겁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겁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 다 추구해봤자 그게 진리의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정직하게 읽으면,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도대체 갈 데가 없다,. 그러면 죽으란 말이냐?” 절망적인 이 외침이 나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도서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사실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헛된 인생을 말하지만, 사실은 영적인 길을 찾고 있고,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는 길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에 대한 진정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비로소 솔로몬은 자기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허무한 삶속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전도서 12: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비로소 솔로몬은 다시 신앙인의 시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허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며 살라”고 결론을 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 전도서의 기자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려본 사람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누려보고 경험해 본 사람이 고백해준 것이 전도서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살아 본 사람이 “헛되다” 했으니,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다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볼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고백처럼 “곤고한 날, 어두운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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