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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그리스도인

새벽예배 2023.07.17 | 사도행전 11장 19-30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11장 19-30절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새벽 묵상


몇 년 전인가요? 한국 뉴스 중에 이런 뉴스가 있었습니다. “장애인 21명 친자 출생신고 한 ‘천사 아버지 목사의 악랄한 실상’ 지적 장애인을 키워 온 강원도에 아무개 목사가 성적 희롱과 폭행, 학대, 장애인 수당 갈취..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개 목사 신학도 안 했고, 그냥 자기가 목숨 바쳐 사랑하자 그래서 목사라고 스스로 불렀던 것으로 밝혀져..”

이런 뉴스도 있었습니다. “목사 인터넷에 음란행위 동영상 유포하여 적발”..저도 목사로서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참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93년 신학교 처음 갈 때 처음 만난 신학교 교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신학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떤 분들은 매스컴에서 일부러 기독교를 겨냥하고 교회 지도자인 목회자의 범죄를 크게 부각시켜 교회를 무너뜨리게 한다. 편파 폄하 방송을 하는 거다.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목회자들이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이런 것을 계기로 성도님들도 기독교의 본래 정신을 잘 세워가고 있는가? 나는 정말 참 그리스도인인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그저 목사님이라는 호칭만 들어도 존경 받았던 한국 교회 선배 목사님들에 대한 세상의 존경심이 지금도 또다시 회복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철저히 채찍질해야 합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워도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주님 욕먹게 하지 않는 일입니다. 성도님들은 그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말만으로도 저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면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하겠지! 이 정도까지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맨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만 모여 있더라! 맨날 복만 달라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더라! 교회 다니나 안다니나 똑같애 이런 꼬집는 소리를 새겨 들어야 합니다. 미신과 별 차이 없는 지나치게 기복적인 신앙의 옷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성숙한 공동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동체, 올바른 기준 세우는 공동체로 회복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 교회를 함께 다시 세워가시길 바랍니다.

목회자의 존경 회복, 성도의 신뢰성 회복 이 두 가지와 깊이 관련된 본문이 바로 사도행전 11장입니다. 26절 보십쇼. 후반부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는 구절,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된 안디옥 교회, 여러분 한국교회 이름 중에 안디옥 교회라고 이름 지은 곳이 많죠?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 같은 사람들, 최고의 스승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그래서 그리스도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 예배하는 분들, 방송으로 예배하는 모든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안디옥 교회의 첫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다함께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다시 26절에 보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앞에 특이하게 “비로소”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제목을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을 영어로는 그냥 first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표현이 정확합니다. 헬라어로 프로톤 프로토스라고 발음하는데 프로톤은 첫째라는 뜻 영어 first 맞습니다. 그런데 프로토스는 최상의 중요한, 가장 중요한 이라고 해석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첫 번째라고 해야 아주 정확하게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한글로 “비로소”라고 번역한 우리 선조 할아버님들이 대단하신 것입니다. 아주 딱 맞는 표현으로 번역하셨습니다. 비로소가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이제야말로”, “여태까지는 좀 그랬는데 이제는 드디어” 이게 비로소의 뜻입니다. 당시에 기독교인들이 그 전까지는 그냥 그저 그런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이제는 확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제야말로, 드디어 진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6절 앞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들이 이제야 진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절부터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천사의 얼굴로 순교하는 일이 일어났고, 흩어진 이들이 말씀 전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즉 스데반의 순교가 헛되지 않고 놀라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 아버지 존 웨슬리 목사님도 별명이 불 속에서 건져낸 불 꼬챙이인데, 이 스데반의 부흥의 불길이 20절 헬라인에게도 복음 전하는 불이 되었고, 결국 22절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게 되고, 25절 다메섹에서 변화된 사울, 즉 바울과 함께 더 큰 불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의 역사로 26절 안디옥에 와서 일 년 동안 사역하게 되니까 가장 큰 복음의 폭발,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수많은 제자들에게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 여러분 이런 복음 전파의 운동이 지금도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방법은 좀 달라져야 하겠지만 열정은 식어지면 안됩니다. 잠잠해 있으면 안됩니다. 잠들어 있으면 안됩니다. 그냥 나 교회만 다니면 천국은 가겠지! 하시는 분 있습니까? 종교인, 그냥 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충전되고 나가서 세상에 나가서 영혼을 구원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그리스도인 맞습니까?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요소들이 무엇일까요? 중요합니다.

1. 첫째로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1절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주의 손, 하나님의 손, 시편 17편에서 다윗은 주의 손, 주의 오른손을 구원의 손이라고 표현합니다.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여러분이 잘 아는 이사야 41장 10절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사람의 손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큰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고, 우리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 내 손으로 하려고 하면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실 때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다시 20절 중간을 보십쇼.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니, 즉 국경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에 국경을 뛰어넘을 때,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열정을 가지고 과감히 뛰어 넘어설 때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탈북자들이 국경 뛰어넘는 것 보셨습니까? 어떻게 합니까? 목숨 걸고 합니다. 체면이고 뭐고, 살고 죽는 게 달린 문제인데 지금 체면이 문제입니까? 마찬가지로 복음 전하는 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상황 되면 하고, 안 하면 그만이고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증인, 부활의 증인, 증인은 증언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증언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복음 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기억하시고, 그냥 말로만 하나님 내 손 잡아 주소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내 손 잡아 주시는 상황을 말씀대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증인, 부활의 증인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나와야 합니다. 이게 두 번째 과정입니다. 24절 보십쇼. 바나바가 와서 부흥의 불길에 더 큰 불길을 일으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복음 전하는 사람들 속에 바나바,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더해지니까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여러분 우리가 착해져야 하는 이유, 성령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착해지므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큰 무리를 주께 더하여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함의 영향력으로 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 김상용 시인의 시 중에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여러분 우리는 왜 사냐고 물으면 웃지 말고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증인되기 위해 삽니다. 주님의 증인, 부활의 증인되기 위해 삽니다. 큰 무리를 주께 더하기 위해, 아니 작은 무리라도 주께 더하기 위해 삽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 부자 되고 성공해야 되는 이유는 나를 위함이 아니라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꼭 그렇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가르침이 살아나야 합니다. 26절 보십쇼.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무얼 합니까?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일년 동안 생명의 가르침, 산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바울, 로마 최고의 교육자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지식에, 주님의 생명의 가르침이 들어가니 그야말로 최고의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교육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교육이다. 전인교육이다 하지 않습니까? 머리에 든 지식은 엄청나게 많은데 생명이 전해지지 않으니까 지식을 생명 해하는 데 쓰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 이야기입니까? 우리 대한민국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에 고3 대학시험을 전국적으로 방송하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정말 세계 최고의 교육 국가인데 자살율이 1위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식만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가르침으로 교육에 앞장서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영국 사회에 존 웨슬리의 산 교육이 들어가니까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사회가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선한 영향력의 주님이셨습니다. 산 교육 참 교육의 지도자이셨습니다. 주님 따라가시길 비로소 그리스도인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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