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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심판이 있다!

새벽예배 2022.12.14| 전도서 3장 16-22절 | 이선기 목사




전도서 3장 16-22절


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새벽 묵상


한 기독교 라디오 생방송 중에 한 농부가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떤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농부는 자신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기독교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 같은 사람이 당신들이 말하는 신앙이 좋은 사람보다도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농장 바로 옆에 교회 잘 다니고 신앙이 정말 좋은 농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밭에서 자란 곡식보다 우리 밭에서 자란 곡식이 거의 절반이나 많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 머리론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기독교 라디오 방송 진행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실력이 정말 좋으신 것 같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하나님은 가을마다 결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연말에 결산하시는 분도 아니고요. 하나님의 결산은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찾아온답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1553년 왕위에 오른 후 기독교인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청교도의 씨앗을 뿌린 순교자 후퍼도 있었습니다. 후퍼의 화형을 담당했던 집행관은 후퍼에게 신앙을 포기하면 살려 주겠다고 구슬리면서 이렇게 후퍼를 설득합니다. 「생각해 보시오 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소?」 그러나 후퍼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고 신앙인은 영원한 기쁨의 삶을 살지만 비 신앙인은 영원한 고통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하나님의 결산이 찾아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당장은 억울하게 죽을 수도 있고 고통을 겪으며 죽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영원한 기쁨의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소망을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토마스 칼 라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코 심판의 날을 잊지 마라. 어리석은 자들은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은 더디며 이 땅에는 우연만 있고 공의가 없다고 생각하나 심판은 반드시 오며 비록 하루나 이틀 한 세기나 두 세기 늦게 올지 모르나 인간에게 죽음이 있는 것처럼 분명히 심판이 있다.

오늘 전도서 3장 끝부분이 바로 분명히 오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제 우리는 전도서 3장 앞부분을 묵상하면서 인생에 대한 교훈,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고 교훈하는 솔로몬의 권면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전도서 3장 끝부분에는 인생의 끝에 분명히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제에 내용과 이어서 생각하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마지막에 최종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정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솔로몬은 하나님의 최종 심판과 비교 되도록 이 세상 심판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를 표현합니다. 16절 보십시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공의를 구현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법정이 공정함을 잃고 악이 있다는 것 얼마나 힘 빠지는 일입니까? 오죽했으면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한 번 더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이렇게 두 번이나 강조해서 표현했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첫 번째 교훈은 1. 아무리 인간이 공정하게 정의로 판단하고 재판한다고 해도 인간은 완전히 정의롭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고,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편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화성 연쇄 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살인의 추억” 영화를 기억하십니까? 얼마 전에 이 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죄를 자백하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윤성여 씨는 32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무죄 선고가 된 것을 보셨습니까? 22살에 누명 쓰고 옥살이를 시작해서 무려 54세가 되어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다는 사실, 32년 동안 윤성여 씨 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의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이게 보상금을 많이 준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을 해도 우리 인간의 판단은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솔로몬이 왜 많은 것 중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오류가 많고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인간의 판단은 편견이 많고 실수투성이입니다. 제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백성을 잘 판단하고 다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서로 자기 아들이 산 아이이고 저 여인의 아들이 죽은 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앞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기도한 후에 아주 탁월하고 정확한 판결을 내립니다. 지금 같으면 유전자 검색하면 바로 나왔을 텐데 솔로몬은 병사에게 칼을 가져와서 산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진짜 엄마는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아이를 포기할 테니 죽지 않게 하라고 간청합니다. 진짜 엄마를 발견하게 하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지혜,

저와 여러분도 도저히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가서 판단해 달라고 하지 말고 가장 공정하신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 교훈은 사람은 짐승과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18절을 보십쇼.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여러분 이 18절만 보면 어? 사람과 짐승이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네 하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19절도 보십쇼.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을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역시 18절처럼 사람과 짐승이 똑같이 죽는다 별로 다를 바 없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18절과 19절은 솔로몬이 정말 하고 싶은 말 바로 직전에 말하여 급반전의 효과를 주는 표현으로 앞에 16절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16절의 해 아래에서 인간들이 재판하는 곳에는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한다고 하는 곳에도 역시 악이 있다. 이렇게 인간은 한계가 있어서 18, 19절 차라리 짐승이나 진배없는 존재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짐승은 죄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없는데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지어 짐승처럼 똑같이 죽게 되었다. 불공정하고 악이 가득한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그런 표현입니다.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다음 20절과 21절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짐승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기에 20절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즉 짐승처럼 죽어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21절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즉 인생은 짐승과 달리 그 혼이 아래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것을 누가 알랴? 즉 왜 이 사실을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왜 모르고 있느냐? 하는 탄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을 확실히 발견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그냥 평범한 인생으로 살아가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 우리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육체적인 인생이라는 사실, 21절의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즉 우리의 인생이 그냥 죽어 육체로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이 위로, 즉 하나님 앞으로 가서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그 뜻입니다. 우리의 혼을 위로 올라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저는요 요즘 참 혀를 찰 일들을 많이 봅니다. 한국말에 “개”라는 표현이 정말 많은데 요즘처럼 개가 호강하는 시대가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가”, “우리 딸”, “우리 아들”, 혹은 “우리 동생” 하면서 개와 정말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를 보면서 너무 가깝게 여긴 나머지 지나칠 정도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안타까워해야 하는데 사람에게 무관심하는 우리 인생들이 많다는 사실, 정말 사람보다 개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반성해야 할 사실입니다. 여러분 21절을 다시 보십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개의 영혼은 사람처럼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개를 좋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개를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안타까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바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마시고, 안타까운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분명히 오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금 하는 일에 즐거워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22절 보십쇼.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이 22절은 뒷부분을 먼저 해석하면서 앞부분으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즉 “뒤에 일어날 일” 즉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날 일들을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즉 누가 알 수 있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즉 지금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심판주이신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시면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주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 기억하시고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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