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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새벽예배 2023.08.09 | 사도행전 20장 1-12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0장 1-12절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새벽 묵상

'중국 내륙선교의 개척자', '믿음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며,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선교사, 21살의 나이의 중국으로 들어가 정말 중국 사람과 똑같이 되어 이름도 대덕생으로 바꾸고 옷도 중국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먹는 것도 중국 사람들과 함께 먹고, 중국 사람들과 같이 자고, 중국 사람과 같이 살면서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총 51세까지 살면서 28년을 중국에서 살았던 선교사, 그가 사역하는 중국내지 선교회 CIM은 1895년에 소속 선교사가 무려 641명에 이르렀고, 중국인 현지 조력 사역자가 462명이었으며, 중국 전체에 260개의 지부를 형성하여 복음을 전파하였고 중국 전역에 125,000명의 중국 기독교인이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1914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선교회가 되었다는 사실. 이렇게 자신의 전부를 드린 선교사가 있습니다. 누굴까요? 예 허드슨 테일러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선교사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습니다. 한번은 선교지에 가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이 올 때, 그 동기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오직 딱 한 가지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아프리카에 사역하고 있는 이름도 밝히지 않는 한 선교사님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선교지를 정말 좋아해서 선교하십니까?" 그 선교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와 제 아내는 먼지와 이 고생을 너무너무 싫어합니다. 우리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도 너무 싫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사님들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LA에서 선교하는 선교자요 전도자입니다. 내 욕심, 내 고집, 내 생각을 철저히 버리고 나만 위해서 살지 마시고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 때문에 아직 기회 있을 때 뜨겁게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선교를 좋아해서 선교여행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가장 내면적인 편지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했는데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역사를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사명을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에베소 대소동 이후에 바울은 너무 괴로운 심정으로 에베소를 떠나 재차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드로아로 가게 되는데 그 10달 동안의 선교 여행 기록을 압축 요약한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에베소를 떠난 바울 일행은 여행 도중에 고린도 교회 문제 해결 및 예루살렘 성도들 구제를 위해 헌금을 모으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바울은 일행 중에 디도를 고린도에 파견했고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고린도 교회 소식을 가지고 온 디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기록한 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이고 디도 편에 그 편지를 고린도에 보내게 됩니다. 다행히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는 교회의 문제는 많이 해결된 상태였고 바울은 3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 구제 문제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려 했던 계획이 순조롭지 않아서 대신 마게도냐로 나아갔고, 다시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보낸 후에 드로아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참 복잡하지 않습니까? 바울의 삶이 참 심란하고 너무 힘들었겠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서 27절에 이렇게까지 표현했겠습니까?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까지 고생고생을 하며 목숨걸고 선교여행을 했던 바울이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이 복음 전하는 것을 그만두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순교자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내일 본문이지만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무리 힘들어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기에 죄인 중에 괴수인 악독하고 극악무도 했던 자기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주시고 용서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고백할 정도로 주 예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마 바울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힘든 일 고통스러운 순간 만날 때마다 믿음의 선배 바울의 고백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 가운데 고통과 고난이 없을 수는 없다는 사실 기억하시고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즉 환란 당하는 것,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그 여러 고통과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잘 견뎌낸 이유 중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자신을 용서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또 하나 믿음의 동역자들이 바울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 보십쇼.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했는데, 석 달 후에 배로 수리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함이었습니다. 흉년으로 고통 중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 중간에 보십쇼.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정보를 미리 알아차리고 다른 길로 경로를 바꾸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이 007작전 같은 구제 헌금 전달 과정에서 바울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4절에 친절하게 바울과 동역한 이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4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여러분 몇 명입니까?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 이렇게 총 7명입니다. 일곱 완전수 완전히 바울을 보호하는 동역자들이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16장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바울의 복음 전파 운동, 선교 여행을 도왔던 수많은 동역자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뵈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 유니아 등 계속해서 동역자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주의 일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교회 일, 주의 일을 혼자 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혼자 하면 내 나만 고생해야 되? 하고 섭섭이란 놈이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나이에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십시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사역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떤 87세 할아버님이 서울에서 전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나오기도 전에 비집고 욕하면서 새치기 하고 들어가서 일반 자리에 앉으시는데 젊은 학생들을 혼내면서 내 쫓고 그 자리에 앉으셨답니다. 사람들이 다 혼자말로 험담을 하니까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하는 87세 할아버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바로 옆 경로석에 90세가 넘으신 할아버님이 87세 할아버지를 부르셨답니다. 87세 할아버지가 가까이 오니까 90세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죠. 야! 이 새치기하는 놈아! 황천길 갈때도 새치기 해서 나보다 먼저 가라 이놈아! 하셨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 박수를 쳤고 아멘까지 했다고 하죠. 나이가 많으시다는 것은 권리를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여 모든 이들의 선생님, 모범이 되실 어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배들에게 샘플이 되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아주 나이 어린 유치부어린이들부터 연세가 지긋한 모든 어른들까지 다 함께 주의 일을 동역하는 곳입니다. 영혼 구원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기쁨으로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함께 일하는 기쁨, 함께 일할 때 시너지가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늘 동역자의 마음으로 비교 의식도 버리고 나이도 신경 쓰지 마시고 주님의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는 아주 신기하고 놀라운 일, 재밌기도 하고 신비한 창에 걸터앉아 말씀 듣다가 졸다가 떨어져서 죽었으나 살아난 유두고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시죠? 7절 보십쇼. “그 주간의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여기서 그 주간의 첫 날, 이 표현이 바로 안식 후 첫날, 성경에서 주일 예배를 첫 번째로 드린 초대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애찬을 하러 모인 거죠. 여러분 예배드리러 주일에 오셔서 예배만 드리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하며 나누는 모임 또한 중요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식사 후에 바울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말씀이 좀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7절 끝에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9절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차에 걸터앉아 있다가 졸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3층에서 떨어져 죽게 됩니다. 여러분 이 유두고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lucky guy 운이 좋은 사람이란 뜻도 있고 다행이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죽었지만 다행히 살아납니다. 10절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몸을 끌어안고 말합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절 올라가서 그 청년과 떡을 먹었다. 얼마나 신이 나고 신기했겠습니까? 분명히 죽었는데 살아나는 역사, 이 유두고가 죽었다 살아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죠. 하나는 바울의 엎드려 그 몸을 안고 기도하는 간절한 특별한 기도, 여러분 이런 신비한 능력의 비밀은 바로 기도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7절 시작 “그 주간의 첫 날”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안식 후 첫날이 주일, 바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유두고가 살아난 것처럼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고 부활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이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 전하는 것이 별것 아닌 게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 영원한 부활의 삶까지 관련이 되어 있다는 막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이 귀한 일을 열정적으로 끝까지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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