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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을 준비 되었냐?

새벽예배 2022.12.12| 전도서 2장 12-26절 | 이선기 목사




전도서 2장 12-26절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8.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을 전도하는 전 청송교도소 교도관, 소망교도소 부소장이었던 박효진 장로님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그 분의 간증에 보면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에게 강하게 전도하면서 복음으로 영혼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간증 중에 한 부분을 읽어드립니다.

이들을 먼저 전도하자는 마음으로 40여 명의 사형수들의 성분을 조사했다. 종교적 성분을 조사해보니 17명이 기독교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나마 17명, 다행이었다. 그래서 일단 17명부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도 전략도 세웠다. 기독교인 중 제일 센 사람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두영(가명)이라고 하는 자가 보스였다. 힘도 좋고, 덩치도 커서 다른 사형수들의 형님 격인 사람이었다.

그와 대면을 했다. 조그마한 방의 소파에서 마주 앉아 수인사를 하며 "나는 청송감호소에서 온 박효진 장로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 사람인지 아무리 느껴 보려고 해도 안 되었다. 영적인 냄새가 전혀 맡아지질 않았다. 참 답답했다. '이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래가 되겠나?' 이런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래서 이말 저말 하다가 아예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했다. "야, 두영아. 니 죽을 준비 됐나?"

이렇게 묻자마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에 셔터내리는 소리가 '철커덩'하고 들리는 듯했다.

사실 사형수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죽는다'는 소리다. 죽음과 관련된 단어는 사형수들이 절대로 듣기 싫어한다. 하나의 '금기'인 것이다. 내가 "죽을 준비 됐냐"고 묻자 반갑지도 않은 손님인데다 금기까지 깨트리니 만정이 떨어졌나 보다. 눈을 내리깔고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자세다.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두영아. 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기분 나쁘게 '죽을 준비 됐냐'고 묻겠냐? 그러나 두영아 따지고 보면 너만 사형수가 아니고 우리도 다 사형수 아니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사형수다. 하나님 앞에 전부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들이다. 너희만 사형수가 아니야. 언제 갈 지 모르는 인생, 너희만 죽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나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이니 고깝게 생각지 말고 내 말 들어라."

한참, 울면서 기도하자 두영이의 반응도 아까와는 달라졌다. 이제는 아예 두영이의 목을 끌어안게 만들었다. 두영이도 주춤주춤 하더니만 나의 목을 끌어 안게 되었다. 결국은 같이 목과 가슴을 끌어안고 기도할 때부터 눈물과 눈물이 교차되며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통곡을 했고 이후부터 기적적으로 변화되었다. 감방에 앉아서 날마다 찬송하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두영이의 삶이 그 날의 기도를 계기로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죽을 준비를 하자고 했다. 두영이의 변화된 모습은 서울구치소의 사형수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전부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임을 믿으십니까? 죽을 준비를 잘 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2장 뒷부분이 바로 죽을 준비를 잘 하라고 권면하는 지혜의 사람 솔로몬의 권면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솔로몬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기도하는 것을 많이 들으셨을 텐데 아시겠지만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던 왕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기적이지 않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시고 지혜뿐만이 아니라 각종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누리도록 눈으로 보이는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보십쇼.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실제로 열왕기상 4장 22절과 23절에 보면 솔로몬의 일일분 음식이 이랬습니다. 가는 밀가루 30석, 굵은 밀가루 60석, 살진 소 10마리, 초장의 소 20마리, 양 100마리 그 외 수사슴, 노루, 암사슴, 살진 새들 놀랍지 않습니까? 모든 인간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태평성대를 누렸던 사람. 그런데 이런 솔로몬의 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왜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데 허무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솔로몬은 어제 본문이지만 2장 2절과 3절에 웃음과 술이 나의 허무함을 채워주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웃음으로 술로 행복을 찾으려고 해도 도저히 그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시 생각합니다. 쾌락적인 것으로 안 되는 구나, 도덕적인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럼 차라리 가치 있는 일을 해 보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비슷하게 해 보자. 하고 마치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신 것처럼 비슷하게 열심히 일을 해 봅니다. 2장 4절부터 7절까지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고,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고 남녀 노비들을 사고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선한 일이라고 믿고 해도 도저히 솔로몬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허무함이 더 깊어져만 갑니다. 그래서 했던 고백이 어제 본문 마지막 11절입니다. 제가 읽어 드립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우리는 어제 본문에서 왜 쾌락으로도 혹은 가치 있는 일로도 솔로몬의 마음의 허무함이 채워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를 발견하면서 어제 본문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1. 모든 것은 나를 위하여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무엇인가를 해도 결국 나를 위하여 하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 즉 1인칭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어제 본문에는 더 많이 나와 있습니다. 나는, 내가, 내 마음으로, 내의 사업을,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내 눈이 원하는 대로 솔로몬은 의도적으로 이 1인칭을 수도 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인가? 내가 아무리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표현입니다. 채울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원래 하나님만 쓰실 수 있는 표현이 바로 “내가”였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다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도 죽는 존재가 아니었고 모든 것이 완전했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으로 인간 속에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내가 주인이 되려는 욕심이 찾아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내가 주인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죽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나를 위하여 내가 주인 되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죽는 존재가 되었음을 기억하시면서 죽을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주인이 아니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이셨습니다. 깨닫고 다시 내 안에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원래의 모습으로 내 안에 주인이신 주님께서 사시게 하는 것,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는 인생, 하나님이 주인이신 원래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돌아갈 내 고향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지혜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지혜에만 최고의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 바로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16절 보십쇼.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여러분 열왕기상 4장 29-34절에 보면 솔로몬은 잠언 3000을 지었고 노래 1005편을 지어 읊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연 만물과 우주의 이치에 대하여 전혀 거침이 없이 자유자재로 논했다고 했습니다. 13절 보십쇼.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즉 솔로몬은 지혜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가치있고 고상한 지혜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태양 앞에서 촛불의 밝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음의 문턱에 이른 노인철학자 솔로몬은 이 놀라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없이 그저 책속에 묻혀 세상 지식을 추구하는 모든 자들은 결국 솔로몬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했던 모든 업적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8절부터 20절까지 보십쇼.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알렉산더 대왕의 병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왕실은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름난 명의들이 수없이 왔다 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둥대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짙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조금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죽을 준비하는 듯했습니다. 신하들이 자리에 누워 쉴 것을 권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사람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살아 눈뜨고 있는 이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리라."

그러던 알렉산더 대왕도 병이 점점 더 깊어지자 자리에 앉아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이미 병색이 짙은 그를 포기한 상태라 '그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은 좀처럼 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 띄엄띄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뿐이요."

24절 보십쇼.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헛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붙들라 하는 메시지입니다. 오늘도 지혜가 아니라 이 땅에 업적이 아니라 하나 님의 손 붙들고 힘 있고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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