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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딸아 요즘 하나님과 괜찮냐?

새벽예배 2023.10.05 | 잠언 3장 11-26절 | 이선기 목사




잠언 3장 11-26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새벽 묵상


여러분 가족 관계 중에 참 가까운 관계지만 참 어색해서 막상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 어려운 특이한 관계가 있습니다. 뭘까요? 예 사위와 장인어른 관계입니다. 여인이 아내이자 딸이 되는 아주 친밀한 관계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음을 터놓기가 어려워서 뻘쭘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 저도 제 장인어른과 만나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 어르신분들하고 잘 허물없이 대화하는데 자신 있는데 장인어른을 만나면 왜 그렇게 어색한지요. 처음 장인어른을 마주하고 있을 때 무슨 말씀을 드릴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인 어른이 교회에 열심인 분이 아니시라서 그런지, 도무지 공통관심을 찾기가 정말 어렵더라구요. 기다리다 지친 장인어른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자네 운전해서 여기 왔어?”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예 장인어른” 그랬더니 “운전 조심해야 돼, 사고 조심해야 해.” 그래서 “예”하고 대답했더니 또 한참동안 말이 없으시더라구요. 한 10분 흘렀을까요. 장인어른이 또 묻고 확인하십니다. “운전 조심해야 한다니까” 이게 저와 장인어른과의 그래도 제일 대화를 많이 했던 내용입니다.

제가 왜 이런 사위와 장인어른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시작할까요? 이렇게 사위와 장인어른의 어색하고 민망한 관계처럼 하나님과 어색하고 별로 할 말이 없는 관계로 지내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계속 그렇게 있지 마시고 하나님께 크게 가까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가까워지자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 요청에 아멘하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뜨겁게 진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잠언 3장은 앞에 2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으로 2장에서는 지혜의 가치를 강조하는 중에 지혜를 힘써 추구할 것을 독려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 3장은 지혜로부터 오는 유익과 지혜를 발견한 자가 누릴 복을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13절 보십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8절 보십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세계에서 가장 복을 좋아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장이 바로 잠언 3장이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잠언 3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라 그리하면 ~하리라”하는 형식의 문장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본문에는 4번 나왔구요. 오늘 본문에 21절과 22절 보십쇼.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22절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이렇게 “~ 하라 그리하면”, 이 구조는 복을 누리기에 앞서 지혜로운 자가 힘써 행하여야 할 삶의 의무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율법처럼 이렇게 꼭 해야 한다. 또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613개 조항 같은 강제적 의무의 표현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붙드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이 너무 크고 감사해서 당연히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이 의무를 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의미입니다. 이런 자발적 의무의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우선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의무입니다. 어제 본문 3장 1절부터 오늘 본문 마지막 26절까지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내일 본문인 27절부터 마지막 35절까지는 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지킬 의무, 복 있는 자가 자발적으로 할 의무입니다.

오늘 본문에 표현된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며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지킬 것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점검하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깨닫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우선 우리는 오늘 본문에 두 번 나온 11절과 21절에 나온 “내 아들아”라는 표현에서 수직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다시금 발견하고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엊그제 어떤 분이 고맙게도 목사님 내 아들아 라고 제목을 지으면 여성 분들이 별로 안 좋아 하시지 않을까요? 하고 팁을 주시더라구요.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제목을 내 아들, 딸아 하고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은 여성들이 아직 그 권리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천시 당하는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비록 솔로몬이 내 아들아! 라고 했지만 이 내 아들이란 표현 속에 아들이고 딸이고 전체 자녀들, 후손들이 다 포함된 의미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 주목할 것은 실제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내 아들아! 라고 실제로 표현하는가? 거의 어렵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가?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요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내 아들아, 내 딸아 부르시는 너무나 자상하고 친근하신 분이심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냥 아들아도 아니고 “내” 아들아 하고 1인칭 소유격의 표현을 주저 없이 하실 정도로 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할 때 했던 표현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얼마나 애틋하기에, 마찬가지로 지혜의 근원이신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게 솔로몬이 전하고자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솔로몬만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저와 여러분도 똑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며 나의 소유라고 나의 특별한 자녀로 크게 선포하며 부르시는 그 부름에 예민해야 합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어서 오라 하고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소개하시고 아직도 영혼의 아버지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산가족 상봉하는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징계를 받는 것을 싫어하지 말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다. 하는 교훈입니다. 11절 다시 보십쇼.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하고서 그 다음절 12절에 그 여호와의 징계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12절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사랑하니까 때리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때리지 않는다. 그 의미입니다.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 지갑에서 5000원 훔치고 쌀자루 속에 몰래 감춰두었다가 아버지께 싸리까지 30개가 다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은 잠을 안 재우고 안수기도 하셔서 새벽에 새벽예배까지 참석하게 하여 회개시키셨습니다. 여러분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는 것입니다. 징계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아이의 길을 비뚤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29장 17절 말씀입니다.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난 교회 안 나가도 아무 일 없던데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로마서에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벌은 버려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는 버려두는 불쌍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떠나지 않는, 그래서 고난이 와도 아픔이 와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이게 하나님과의 수직관계에서 기본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표현합니다. 19절 보십쇼.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20절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땅과 하늘 바다 공중에 이슬까지 모든 자연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입니다. 자연 만물을 지으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지음 받았고 자꾸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욥기서 끝부분 40장, 41장에 하나님이 욥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얼마나 세상의 크고 무서운 것들을 다 지으셨는지를 표현하고 나니까 드디어 고통 받던 욥이 큰 깨달음을 얻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욥만큼 고통 당하고 계신 분 있습니까? 재산 다 날아가고 자녀 10명 전부 죽고 몸에 병을 얻어 기와로 몸을 긁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신 분 있습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고난이 오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있어도 우리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크신 분, 만물의 창조주임을 깨달으면 된다는 사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내가 받는 고통이 크게 보면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절망하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40장을 부르시면서 그 고난을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26절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우리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온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발을 꽉 붙들어 주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붙들면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절대 쓰러지지 않습니다. 주의 강한 손, 창조주의 강한 능력의 손을 의지하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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