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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 버리고

새벽예배 2023.04.12 | 사무엘하 2장 1-11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2장 1-11절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튤립 혹시 삼형제 이야기를 아십니까? 세 쌍둥이 튤립 형제 뿌리가 작은 상자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쌍둥이의 이름은 각각 '아니'와 '혹시' 그리고 '순종' 이었습니다. 가을이 오자 쌍둥이들은 각자의 운명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큰 형인 '아니'뿌리가 먼저 말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 상자 안처럼 편안한 곳은 없을거야. 다른 곳에 가면 우린 죽을 지도 몰라." 그러자 둘째인 '혹시' 뿌리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혹시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도 형처럼 두렵긴 마찬가지야." 마지막으로 막내인 '순종' 뿌리가 말했습니다. "형님들,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다만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능력에 맡기면 그 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신다는 걸 우리 모두 믿자구요."

어느 날 커다란 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순종' 뿌리가 먼저 얼른 그 큰 손에 안기며 소리쳤습니다. "형님들, 같이 가요!" 그러나 '아니'와 '혹시'는 상자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 몸을 바싹 움츠렸습니다. '순종' 뿌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 거친 흙 속에 심어졌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따사로운 햇살 아래 '순종' 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웠고, 그 향기는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지으신 분이 저와 여러분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고 저와 여러분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꽃 같은 그리스도인 되시고 멀리까지 그 향기를 내뿜는 존귀한 주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으신 분이 누군지를 정확히 깨닫고 믿게 되면 나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사랑까지 알게 되면 이제는 내 뜻을 버릴 수 있습니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맞는 것 같아도 내 뜻을 과감히 stop하고 순종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도 없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여리고성을 돌면서 일주일 만에 그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 먼저 앞서고 말았습니다. 여리고성이 너무 쉽게 무너져서 자만해서 그런지 아이성 전투에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작은 성이라고 얕보면서 그냥 쳐들어 갑니다. 삼천명 정도만 아이성을 치러 올라갔다가 웬걸 아이성의 군사들 앞에서 놀라 도망하며 삼십 육명이 죽임 당하고 패하게 됩니다.

고난주간 새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제가 정녕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자신했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주님은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후에 주님이 잡혀 가시고 핍박받으실 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자신했고 당당하고 죽기를 각오했던 베드로, 그 자신만만함은 없어지고 주님의 예언 그대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장담하는 말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는 나의 결단들 이런 것들은 그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연약한 내 뜻일 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안정한 내 뜻,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순간적인 내 뜻을 의지하지 말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져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주의 뜻을 간구하면서 그 뜻에 따라 순종하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울왕이 죽은 이스라엘, 이제는 누가 보아도 기름부음 받은 다윗 밖에는 왕이 될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다윗이 그동안의 오랜 도망자의 생활을 마치고 이제 왕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다윗 스스로도 이제 때가 되었구나. 내가 이제 왕이 되는구나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마음을 먹고 그 위세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다윗 추종세력과 함께 진군했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윗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집중하며 왕위를 바로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냉정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즉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사울의 추종세력이 있음을 알았기에 다윗은 내가 원하는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고 후에 큰 뜻을 도모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제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즉 지금은 유다 성읍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 것 아닙니까? 하고 겸손히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여쭈어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1. 첫 번째로 내 뜻을 버리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께 열심히 묻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이 먼저 앞섰다면 다윗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묻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직감하고 내 뜻을 버리고 지금은 단지 유다지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맞지요? 하고 진지하게 하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시 1절 후반부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답하시니까 다시 연이어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하나님께 조금 더 세세하고 정확하게 하나님 뜻을 여쭈어 보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내 뜻을 버린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름을 처음 받을 때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겸손히 물으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한 번 더 요청하면서 확인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부르신 게 맞으시면 이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다른 데는 없게 하옵소서.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정말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시니까 그 다음날 다시 한 번 확신주시기를 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번만 더 확신 주옵소서.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만 이슬이 없고 다른 데는 다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요청대로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너무 믿음이 좋아서 그런지 직접 주님의 몸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한 도마를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믿으라면 믿는 거지 뭘 그렇게 따져 묻는가?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꾸 하나님께 묻는 것은 오히려 부족한 나의 판단을 정확한 판단이 되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하나님께 꼼꼼하게 여쭤보려면 계속해서 주의 전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 한번만 잠깐 눈감고 안녕하세요. 하나님 오래간만입니다. 하지 말고 순간순간 계속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내 뜻을 버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신 분들은 이런 말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잠든 이 시간에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주의 자녀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놓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오히려 바쁘니까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내 하는 일들 가운데 내 뜻이 앞서지 않도록 내 욕심이 내 이기심이 먼저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빌하이벨스 목사님이 그런 책을 쓰셨죠?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바쁘니까 기도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더 바쁘고 더 시간이 없을수록 행여나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을까 더 많이 기도하는 내 뜻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께 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내 뜻을 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먼저 축복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는 내 뜻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께 연속해서 묻고 또 물은 후에 하나님이 허락하신대로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곳 1절 끝에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4절 보십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자 이제 유다 족속의 왕이 되어 첫 번째로 다윗이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5절 보십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게 됩니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요단강 동쪽 므낫세 지파의 영토 안에 위치한 이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축복한 것은 다름 아닌 사울왕의 시신을 거둬 정성스럽게 장사지낸 것을 보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 있던 상태에서 사울의 시신이 블레셋 군대의 놀림거리로 처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신을 용기 내어 거두어 장사 지내는 것은 분명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혹 자신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그 옛날 암몬 족속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해 준 사울왕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울의 시신을 잘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입었어도 목숨의 위협이 오면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흔한 일이었을텐데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울왕의 시신을 잘 장사지낸데 대한 고마움을 다윗은 잊지 않고 축복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축복은 축복인데 그냥 축복이 아니라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히브리어로 “알레헴 버루킴 아템 야훼” 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찬양에 찬양을 계속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게 되면 끊임없이 무릎꿇고 찬양하고 또 찬양하게 되겠습니까?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복 주셔서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게 되는 그 복을 길르앗 야베스 주민에게 주신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 뒤에 6절에 보시면 다윗이 얼마나 내 뜻을 버린 사람인지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5절에서 찬양하고 또 찬양하게 하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6절에는 은혜와 진리로, 히브리어로 “헤세드 웨 에메트” 즉 헤세드는 언약을 기초로 한 사랑과 자비의 복을 주신다. 에메트는 진리, 즉 시간과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신실한 복을 주신다. 이런 복을 누가 주시는가?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너희들 길르앗 야베스에게 복을 주신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런 복을 저와 여러분도 받으시길 바랍니다. 길르앗 야베스처럼 은혜를 베풀고 품는 자가 되셔서 이 복을 다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 이런 복들은 다 하나님으로터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리라. 그리고 나서 6절 끝에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즉 겸손히 여호와께서 복주신다. 복주신다.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마음껏 축복하고 나서 맨 마지막으로 나도 너희에게 선한 일을 갚겠다고 고백하는 다윗, 여러분 얼마나 내 뜻을 버린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까? 아무리 내가 높은 자리에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먼저가 아니면 다 껍데기와 같은 것임을 알았던 다윗, 저와 여러분도 이런 내 뜻 버린 다윗의 모습을 철저히 본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8절과 9절에 보면 이 혼란한 시대를 틈타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이고 요나단의 동생이었던 이스보셋을 세워 급하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없고 철저히 아브넬의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세워진 이스보셋왕 어떻게 되었을까요? 10절에 보면 겨우 2년만 왕위에 있다가 죽고 맙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 버리고 다윗에게 망명하고, 신하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대낮에 낮잠 자다가 살해 당한 자가 바로 이스보셋입니다. 하나님 아닌 내 뜻이 앞섰던 자의 대표적인 최후의 모습을 다윗과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철저히 내 뜻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철저히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존귀한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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