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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4.07 | 마태복음 27장 35-53절 | 구진모 목사




마태복음 27장 35-53절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새벽 묵상


성경에 보면 고난 당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욥의 고난을 잘 압니다. 욥은 이유를 모르는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많은 소유물과 종들, 그리고 일곱 아들과 세 딸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몸에 악창이 생겨 온몸이 가렵고 진무르고 터지고 해서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재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위로하는 대신에 옆에서 비난을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의 세 친구(엘리바스, 빌닷, 소발)가 그를 위로한답시고 왔지만 그를 위로하는 대신에 오히려 욥의  고난의 원인이 욥의 범죄함에서 온 것이라면서 욥의의 의로움에 대해서 시비하며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신실한 욥은 자신 속에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마음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자기 의를 회개하고, 그동안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소유물과 자녀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알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축복보다 더욱 크신 축복으로 함께 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고난도 있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죽을 뻔 했지만, 넷째형 유다의 제안으로 미디안 상인에게 팔리어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 하인으로 넘기우고, 그 아내의 모략으로 옥에 갇히게 됩니다. 감옥에서 만난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고, 그가 옥에서 나가게 되면 자기를 기억하여 바로에게 자기를 건져달라고 부탁했지만, 자기의 직을 회복한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감옥안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겁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버리시지도 않았고,  잊으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을 잊어버렸던 술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생각나게 하시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하심으로  애굽의 국무총리로 높이셨습니다. 



다윗의 고통도 있습니다. 다윗은 일생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려고 했지만,  그의 일생도 고통과 번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왕이요 장인이었던 사울의 미움을 받아 쫓겨다닙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첩들을 희롱하고, 자신을 대적하여 싸움을 걸어옵니다. 또 신하들이 배반하고 그들에 의해 쫓김을 당합니다.



시편 22: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절규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다윗의 부르짖음이 무엇을 뜻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기도에 응답지 않으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임을 믿지만  지금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능력과 인내로는 견딜 수 없으니 조속히 건져달라는 절규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내용이 같은 시편 22:23-24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아브라함의 고통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흘 길을 행하여 모리아산에 이르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이삭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번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물어볼 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들에게 말했지만, 그의 나이 백세에 얻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아들을 향해 칼을 치켜든 아브라함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리고 아브라함의 마음에도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과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부르짖었을 겁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때 아브라함도 자신이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실 줄로 믿었습니다. 아니, 아들 이삭을 지금 번제물로 죽인다 하더라도 그를 다시 살리시고, 그에게 주신 약속을 이행하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신 이후 이곳 저곳으로  끌려다니시면서 심문을 당하시고,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지 6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온 땅이 어두움으로 뒤덮히고 정오부터 세시까지 계속 되어집니다. 큰 못으로 손과 발이 박히시고, 여섯시간이 경과함으로 인하여 그 온몸의 물과 피가 아래로 몰린 예수님의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를 질러 부르짖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치 다윗이 시편 22:1에서 절규하던 그 부르짖음이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도  육신이 뒤틀리고 찢겨지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절규하시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 때도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절규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금 주님이 당하시는 이 고통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정된 것이지만, 지금 당하는 고통이 주님이 감당하시기에 너무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겁니다. 



이 때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짐작하기에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엘리야가 과연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기에 십자가에서 능히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고통중에서 사단의 마지막 유혹을 이기고자 하셨던 겁니다 . 예수님은 육신의 고통으로 절규하셨지만, 이것이 자신이 마셔야 할 잔인줄 아셨기에 자신의 능력행함을 허락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본문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때 부르짖었던 말씀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중에 절규하실 때에, 말없이 그 고통 가운데 동참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의 고통가운데 함께 하셨던 겁니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칼을 들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을 때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아셨기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삭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 하시며 그를 중지시키시고, 이삭 대신에 수양을 준비해 주셔서 대신 번제물로 드리게 하셨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그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가운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으실 때는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영혼이 그 몸을 떠날 때에, 51-52절에 보면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무슨 현상입니까? 이는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고통 가운데 계셨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간들과의 막힌 담을 헐으신 겁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사이가 열리게 된 겁니다. 전에는 제사장만이 일년에 몇차례 기회를 얻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육체의 찢기심으로 이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언제나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0:19-20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고 했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는 광경을 보고 로마의 백부장과 병사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27:54절에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그토록 사랑하던 옛사람을 십자가에 내어놓는 고통과 절규를 해보지 않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새사람을 입는 기쁨과 영광을 맛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직 옛사람이 죽는 고통의 부르짖음을 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바라기는,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의 옛사람이 죽는 처절한 고통을 저에게 주시며, 왜 이 순간에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절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그 절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사순절 새벽 공동기도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2.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힘을 잃고 멈추게 해 주옵소서! 


3. 사순절에 온전히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온전히 주님을 닮아가게 해 주옵소서! 


4. 가정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며 치유와 평안을 느끼게 하옵소서!


5.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6.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모든 병자들이 치유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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