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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4.05 | 마태복음 26장 36-50절 | 이선기 목사




마태복음 26장 26-35절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새벽 묵상

여러분 본회퍼 목사님을 아십니까? 독일 루터교회의 목사님이시고 신학자이시며 반 나치운동가였습니다. 독재자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첩보국에 관여를 하다가 발각되어 핍박을 받고 결국 처형당한 순교하신 목사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히틀러가 직접내린 사형명령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본회퍼 목사님의 기도문은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그 기도문 중에 일부분을 여러분께 읽어드립니다.

오, 하나님, 이른 새벽 제가 주님을 바라보고 웁니다. 저를 도와주시어 기도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혼자서는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안에는 어둠이 있지만 주님과 함께, 거기엔 빛이 있습니다. 저는 혼자지만 주님은 저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제 가슴은 연약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강하십니다. 저는 쉬지를 못하지만 주님 안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제 안에는 고통이 있지만 주님 안에는 인내가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을 주님은 아십니다.

주여, 주님은 저처럼 가난하셨고 비천하셨고, 저처럼 체포당하여 친구들로부터 격리되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비통함을 아십니다. 제 안에, 저의 고독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저를 잊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저를 찾아내십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주님은 간절히 바라십니다. 주여, 주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제가 주님을 따라갑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절망에서 지켜줄 믿음을 저에게 주소서. 주님과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을 제 속에 담아주시어 그 어떤 증오에도 고통에도 오염되지 않게 하소서. 두려움에서 건져줄 믿음을 저에게 주옵소서. 오, 주 하나님, 크나큰 곤경이 저를 덮쳤습니다. 걱정 근심이 저를 삼켰고,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것들을 견뎌내도록 저에게 힘을 주소서. 두려움이 저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사랑 많으신 아버지로서, 저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주옵소서. 오,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께 그리고 이웃들에게 저지른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의 은총을 믿어 의지하고 제 생명을 온전히 주님 손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으신 대로 저에게 하옵소서. 그것이 저에게도 가장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저는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은 저와 함께 계십니다. 주여, 저는 주님의 구원과 주님의 왕국을 기다립니다.

죽음을 바로 코앞에 두고 두려운 마음을 떨쳐 내고자 간절히 기도했던 목사님의 기도, 고독한 기도와 부르짖음, 내 뜻을 꺾고 주님 손에 맡기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성숙한 눈물의 기도가 가슴깊이 들려옵니다.

오늘 본문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하셨던 기도도 바로 그런 기도였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내 자신을 이기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 비록 육신은 빛을 잃어갈 지라도 영혼의 고향,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빛난 영광,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며 드리는 숭고한 기도, 저와 여러분도 이런 순교자의 기도를 본받고 따라가는 성숙한 기도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태복음 6장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신 주기도문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석, 기도의 표준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 보이는 겟세마네의 기도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 긴급하고 진심을 담아 드리는 주님의 절박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의학교수님이 의대생들에게 이론적으로 사람의 몸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과 실제로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대하여 급히 하는 CPR 심폐소생술을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피부에 와 닿는 좀 더 실제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기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묵상하시면서 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얻으시고 정말 그대로 실천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선 겟세마네, 여러분 예수님은 가장 낮아지셔서 즉 이 땅의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하셨던 근본적인 목적, 지금 그 가장 중요한 일을 하시기 직전의 순간을 앞에 두고 계셨습니다.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 곧 배신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죄 없이 고문당하시며 십자가지고 고통 속에 죽게 될 것을 직감하셨던 주님, 그 고난의 순간을 앞두고 예수님은 겟세마네로 올라가셨습니다. 36절 보십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마태가 특별히 겟세마네라 하는 동네에 라고 그 지역 이름을 특별히 밝히고 있는 것은 그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겟세마네가 “기름 짜는 틀”이란 뜻인데 감람산 서쪽 기슭에 올리브 기름을 짜내는 작은 산에 36절 후반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즉 주님께서 기도의 장소를 필요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기도가 기름을 짜듯이 마지막 사력을 다해 피땀을 쏟으시면서 기도해야 하실 정도로 절실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생사의 갈림길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 앞에서 기도의 자리를 찾으신 적이 언제이셨습니까? 다시 그 간절한 기도의 열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1. 예수님은 이 중요한 순간에 정말 고민하고 슬퍼하며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37절 보십쇼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여기서 고민하고는 히브리어로 “아데모네인” 아주 크게 낙담했다는 뜻이고 슬퍼하사는 히브리어로 “리페이스타이” 이것은 억제할 수 없을 만큼의 크나큰 비탄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단어만 보아도 예수님이 얼마나 괴로움과 슬픔에 빠져 있는지 느낄 수 있는데 그 다음 38절에는 직접 예수님의 음성으로 그 고민하는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38절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여러분 성경 어디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힘들어 하셨다는 표현이 있습니까?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시는 우리 예수님

어떤 분들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신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왜 고민하시는가? 고민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 왜 그러시나? 이것은 맞는 것 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잘 보시면 우리 주님이 참 인간으로 오심을 잊어버리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정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먹기도 하시고 웃으시기도 하시고 눈물도 흘리시고 아픔도 그대로 겪으신 참 인간이신 예수님이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걸 옛날 표현으로는 체휼이라고 하죠. 인간의 신체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그대로 다 똑같이 겪으신 예수님. 여러분 아픔을 똑같이 겪으신 분이시기에 나를 잘 아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 집사람이 한 2달 전에 제왕 절개 수술을 받았습니다. 진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자궁에 13센티 혹이 있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좀 혹이 크지만 복강경으로 수술이 가능하다 해서 수술을 했는데 웬걸 수술하다가 너무 혹이 커서 째고 절개를 하고 혹을 꺼내고 자궁도 적출하게 되었습니다. 빈궁마마가 되었습니다. 수술 하고나서 했던 표현이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다 겪게 하시는 분이시네. 그냥 자연분만으로 두 아이 나았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복강경 수술이 뭔지 까지 직접 겪게 하시고 심지어 다른 여성 분들이 하는 제왕절개까지 다 빼놓지 않고 겪게 하시는 것, 다른 사람을 더 잘 자세히 직접 겪으면 이해하라고 주신 경험 오히려 감사하다 고백하더라구요. 제가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목사님해라 더 은혜가 되겠다고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오빠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마르다 마리아에게 오셔서 예수님도 똑같이 눈물을 흘리시더라 하는 표현은 그냥 쓰여진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랑 똑같은 몸을 입으셔서 똑같이 슬퍼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감사한 것은 인간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신 분이란 것만 해도 너무 위로가 되는데 이 똑같은 아픔을 겪으신 예수님께서 죽음 이후가 너무 궁금한 우리에게 저와 여러분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려주시는 이정표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3절에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러분 정말 아멘 아닙니까? 인간의 몸을 똑같이 입으셨던 예수님께서 먼저 죽으셔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정말 믿으시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따라가면 부활의 영광을 분명히 보게 될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예수님은 홀로 외로이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을 11명 데리고 가셔서 17장에 나오는 변화산상의 경험을 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제자 3명은 37절 예수님을 기준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두고 기도하라 하시고 다른 8명의 제자는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이렇게 중보 기도하는 제자들을 필요로 하셨을까요? 38절 후반부를 보십쇼.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단순히 외로움의 기도가 아니라 고독의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외로움과 고독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배척당하는 상태가 외로움이고 상태가 심하면 왕따라고 하는 것이고 고독은 나 스스로가 사람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할 존재가 아니기에 믿을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지으시고 온 세계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홀로 창조주 앞에 나아가는 것 이게 고독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고독한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고독한 기도의 사람 되심으로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위로를 얻고 고통을 이겨내는 승리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일이 헛될 뿐임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깊이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것, 새벽기도 하시는 분들은 진정 고독한 분이십니다. 특별한 것은 이 고독한 예수님의 모습과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참 대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수면제를 먹었는지 계속 잠들어 있습니다. 40절 중간에 보십쇼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3절 보십쇼.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피곤하지만 무조건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잠에서 깨어 기도하는 성도님 되시길, 주님처럼 고독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고독하여 멋진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할 때에 나타난 변화, 바로 내가 변화되는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참 인간이신 주님께서 기도함으로 내가 바뀌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잠자는 제자들을 두고서 예수님은 고독하게 세 번 기도하시는데 39절 첫 번째 기도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의 기도가 두 번째 세 번째 기도에서는 바뀝니다. 42절 두 번째 기도에서는 뒤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는 비슷하지만 앞에가 좀 달라졌습니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으로 바뀌었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이 아니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이십니까? 첫 번째 기도는 하실 수 있으시면인데 두 번째는 내가 마시지 않고는 지나가지 않는다면으로 바뀌었습니다. 44절에 마지막 세 번째 기도는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즉 이제는 피할 수 없음을 아시고, 즉 마음에 확정하시고 담대한 모습으로 내 원함, 내 인간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다 이겨내시고 45절 46절 확신에 차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로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46절 일어날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십자가를 지는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가롯유다와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갑자기 눈이 어두워진 것도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주님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저와 여러분도 기도하다가 바로 내가 변화되는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변화시키는 신비한 기도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힘을 얻는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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