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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4.04 | 마태복음 26장 26-35절 | 이선기 목사




마태복음 26장 26-35절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교회에서 하는 성만찬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은 동생 (찰스 웨슬리)과 함께 일주일에 여러 차례 성찬식에 참여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을 따르는 초기 감리교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성찬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였습니다. 웨슬리의 설교 121 “성찬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 에 의하면 너무 자주 하는 성만찬이 성만찬에 대한 경외심을 떨어뜨린다며 반발하는 이들에 대하여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성만찬을 지켜 행하라 (Do this)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당신에게 너무 내 말을 자주 순종하면 경외심이 사라지니까 순종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와 같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따로 빈번한 성찬에 대해서 주님의 명령을 바꾸지 않는 한, 성찬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주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성만찬을 함에 많은 제재가 있었지만 성만찬을 자주하는 것을 오히려 감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성찬을 할 때마다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들어보셨을텐데 성찬 빵,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 아주 큰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는데 성만찬을 하게 되면 보통 장로님과 짝이 되어 성찬을 분급했습니다. 분급하는 방법은 빵을 받는 분이 장로님이 들고 있는 빵의 적당량을 직접 떼어 옆에 제가 들고 있는 포도주잔 포도주에 살짝 찍어서 드시고 가는 방식인데 그날 따라 성도님이 많이 오셔서 줄을 서서 성찬을 받는데 빵분급하시는 장로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왜 그러신가 했더니 너무 줄을 많이 서서 준비한 빵이 모자라겠다고 생각하시고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 장로님은 빵을 떼는 분들을 향해 원래는 “주님의 몸입니다” 하셔야 하는데 빵이 모자를 걱정에 빵을 많이 못 떼시도록 제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쪼금만 떼십시오. 아주 쪼금만 떼십시오. 웃음 참느라 참 힘들었는데 다음번에는 빵을 좀 많이 준비해서 장로님 걱정을 덜어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성찬 포도주. 엉뚱한 말을 자주 하는 제 둘째 딸이 6살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성만찬을 받으러 앞으로 나가면서 줄을 섰는데 딸도 줄을 서서 엄마 귀에 물어봅니다. 엄마 지금 앞에서 뭐 주는 거야? 엄마가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서 먹는 거야. 엥? 피를 먹는다고.. 으... 더러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피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 진짜 피가 아니라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스이고 그 의미를 잘 전해 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만찬의 의미를 잘 깨닫고 이 성찬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는 주님의 뜻을 잘 기억하고 적용하고 되새기시면서 성찬을 받을 때마다 마음의 큰 감동과 은혜가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성찬의 원조인 최초의 성찬, 주님의 최후의 만찬이 나오는 본문입니다. 원래는 오늘처럼 화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에 성찬하시고 발을 씻기시면서 새 계명을 주셨기에 Maundy Thursday 세족 목요일 성목요일이라고 하죠. 목요일에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아주 익숙하지만 주님께서 베푸신 성찬의 의미를 다시 진지하게 묵상하시면서 성찬의 은혜가 회복되시고 받은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선 떡을 떼어 주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자신의 몸을 찢기시며 십자가를 대신 져 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떡이나 빵을 주시는 것은 빵처럼 자신의 살, 몸을 내어주신다 하는 의미와 우리를 먹이신다. 영적인 양식이 되신다는 의미가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떼어”라는 단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성찬빵 주시는 장로님이 쪼금만 떼십시오 하셨는데. 쪼금만은 작게 하고 떼십시오를 크게 하셨으면 좋았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이 떼어는 히브리어로 “에클라센”이라고 하는데요. 그냥 살짝 떼는 것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부숴버린다”라는 단어가 바로 이 에클라센입니다. 왜 이렇게 강한 의미의 단어를 썼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철저히 자신을 부숴버리셨다는 것. 빵이 다 부숴지듯이 죄없으신 분이 저와 여러분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자 자신의 몸을 사형수들만 달리는 십자가에서 철저히 다 찢기시고 부서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가 얼마나 지독한지 십자가에서 철저히 대신 찢기시고 부서지지 않고는 그 죄를 사할 수 없기에 기꺼이 자신이 다 바스라 지도록 희생하신 예수님. 어제 이 떡을 떼어주심 자신을 부숴뜨려 내어주신 주님을 묵상하는데 딱 그 찬양이 생각나더라구요.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흥이란 단어가 이제 우리에게 점점 어색한 단어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흥은 교인들이 많아지는 게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 커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한국의 부흥운동의 시작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시작은 바로 부서짐이었습니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장대현교회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철저히 부서지고 죄를 자백할 때에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영적 혼란의 시기입니다. 다시 깨어지고 부서짐으로 이번 고난주간에 철저히 회개함으로 다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 보실 것 없습니다. 내가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 내가 부서지겠습니다. 내가 엎드리겠습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포도주를 주시고 마시라고 하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8절 보십시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여러분 주님께서 그냥 떡이나 빵 주듯이 자신을 희생하며 주시고 가신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그냥 위대하신 위인으로 그치게 됩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사람들 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도 그 중에 하나밖에 안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달랐습니다. 떡이나 빵 부서지는 것처럼 자신을 희생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포도주의 언약 즉 약속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죽으면서 약속하는 것 이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죽는 사람이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습니까? 기껏해야 죽는 것을 보는 남겨진 사람들만이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포도주를 주시고 마시라 하시면서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이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주님의 포도주를 주시면서 하신 언약의 의미가 바로 그다음 29절에 밝혀져 있습니다. 29절 보십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것, 즉 세상의 것 전부를 의미합니다. 이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탁이다 하시는 의미입니다. 즉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사, 최후의 만찬을 하고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즉 이 땅의 삶이 끝나고 아버지 하나님 나라의 새것이 될 것이다. 즉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나라에게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진짜 할렐루야는 그 다음 문장입니다.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즉 새것, 즉 부활의 몸이 되어 너희와 함께 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영원까지 살게 될 그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날 운명이었던 우리에게 다시 새것이 되어 부활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언약, 약속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할렐루야!를 제일 크게 하셔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죽음의 순간이 와도 호흡이 멈추는 순간이 와도 곧 새것으로 변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가슴 아픈 일이 없고 더 이상 괴로움이 없고 슬픔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약속은 둘 다 하는 것입니까? 한쪽만 합니까? 둘 다 하는 것이 보통 약속입니다. 한쪽이 약속해도 다른 쪽이 그에 따르지 않으면 약속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포도주를 주시면서 하신 언약, 약속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뭐 요구한 것이 없는 그냥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되는 그런데 너무 큰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을 주시는 약속 새것이 되는 약속 영생과 부활의 특권을 주시는 약속을 주셨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걸 감리교의 가장 큰 특징, 선재적 은총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약속 다른 것 할 것 없고 그저 믿기만 하면 주시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주셨는데도 안 믿으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포도주의 의미가 그냥 와인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뱀 독뱀을 보내어 물리면 죽게 하신 사건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고 모세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장대에 뱀을 달라. 저 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다른 것 안 해도 된다. 그냥 눈을 들어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다. 살게 된다. 그런데도 끝까지 그 쉬운 행동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끝까지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도주의 약속, 은혜의 약속 붙들고 소망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주님과 함께 마실 그날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시는 말씀에서 주님은 결코 부인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1절에 제자들에게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시는 주님께 33절 베드로의 고백은 정말 든든해 보입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여러분 사람은 도저히 믿을 존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랑할 존재라고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왜 남자만 그렇게 믿지 못할 존재라고 하는지...어쨌든 인간은 절대 믿을 존재가 아닙니다. 특히 결코, 절대로,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니 아들이다. 이런 말 다 거짓말입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닙니다.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베드로의 대답 35절 뭐라고 합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죽을지언정”도 믿을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 나를 버리리라. 다 흩어지리라. 세 번 부인하리라.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들은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내 수제자 베드로 너도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하고 달아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끝까지 너희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한다. 언제까지?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함께 마시는 날까지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여러분 이게 바로 떡과 포도주를 내어주시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은혜의 약속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 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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