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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제의 감격으로!

새벽예배 2023.11.15 | 잠언 17장 1-12절 | 이선기 목사




잠언 17장 1-12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밥 태운 건 마찬가지인데”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시어머니가 밥을 앉히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일렀습니다. 갓 시집온 며느리는 밥 짓는 경험이 없는 터라 밥물이 넘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불을 때다가 밥은 타고 솥은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놀란 며느리가 전전긍긍하고 있자 시어머니는 "얘야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부어서 그렇게 됐구나" 하면서 며느리를 위로했고, 시아버지는 "아니다. 내가 부엌에 땔감을 너무 많이 들여서 그랬다." 라고 했으며, 신랑은 "아닙니다. 제가 너무 물을 적게 길어 와서 그렇게 됐습니다." 라고 말하며 서로 자기 탓이라고 했습니다. 참 훈훈하지 않습니까? 한편 길 건너에는 또 다른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서도 새 며느리가 들어왔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했고 역시 밥은 타고 솥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시어머니가 욕설을 퍼붓고 구박을 합니다. 어디서 이상한 게 들어왔다 집에서 교육을 그딴 식으로 받았냐? 그랬더니 며느리는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하면서 대들었고, 시아버지는 어디서 어머니에게 말대꾸냐며 호통을 쳤으며, 이를 지켜보던 신랑이 손찌검을 하자 며느리는 차라리 죽이라며 대들었습니다. 밥 태운 건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결과가 다르다니..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불을 땔 일도 없고 솥도 없으며 밥도 전기밥솥이 다 짓는 너무 편리한 시대가 되었는데 그래서 가정에 싸울 일이 없고 다들 평안하시고 화목하십니까?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고 또한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화목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여러분 알게 되셨겠지만 잠언 17장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이 읽어도 좋아할 아주 귀한 교훈적인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보십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한국에 있을 때 심방을 하면서 짧게 심방 예배를 드리며 설교할 때에 참 많이 인용했던 본문이 바로 잠언 17장 1절 말씀입니다. 가정의 화목을 이루십시오. 아무리 가난하고 부족해도 화목한 가정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섬기십시오. 하고 말씀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17장 1절 음식이 아무리 많고 부자여도 싸우는 것보다, 먹을 것이 없어도 가난해도 화목한 것이 낫다. 과연 그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훈의 말씀이 바로 이 잠언 17장 전체의 주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이한 두 가지 특징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발견하면서 정말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의 허탄하고 의미 없는 생활을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1절부터 3절까지만 올바른 사람의 모습이고 4절부터 내일 본문인 28절 끝까지에는 그 올바른 사람에 전혀 못 미치는 어리석고 악한 자들, 헛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군인들이 훈련소에 들어가서 제일먼저 하는 훈련이 뭔지 아십니까? 제식훈련입니다. 먼저 조교가 시범을 보이게 되죠. 앞으로 갓, 뒤로 돌아 갓, 좌로 돌아 갓, 우로 돌아 갓, 제자리에 섯 이런 것들을 시범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훈련병들이 처음에는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뭐 저렇게 쉬운 걸 하라고 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련병들을 시켜보면 300여명이 얼마나 제 멋대로 인지, 얼마나 한심하고 기본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하며 본인들도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엉망징창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겁니다. 1-3절까지 이것이 바로 바른 길을 걸어가는 의인의 모습인데 이게 표본이다. 이걸 본받아라 즉 1절 화목을 이루라, 2절 슬기로운 종이 되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주인의 아들을 다스릴 정도로 존귀하게 되고 유업을 얻게 되리라. 3절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잘 훈련받으라. 이래야 하는데 이게 기본인데 왜 이 모습을 따르지 못하고 왜 그리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 악한 행동을 수도 없이 행하고 있는가 하면서 4절부터는 기본이 안 된 훈련병들처럼 어리석고 허탄한 이들의 모습을 나열합니다. 4절부터 보십쇼. “악을 행하는 자는 선한 입술이 아니라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듣는다,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5절 가난한 자를 조롱하고 다른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 결국 형벌을 면지 못한다. 7절 지나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악한 자. 8절 뇌물로 사람을 움직인다. 9절 뒤에 이간질하는 자이고 10절 미련한 자는 맞아도 소용이 없다. 11절 반역하는 악한 자 12절. 미련한 자를 만나지도 말라 차라리 새끼 빼앗긴 무시무시한 암곰을 만나는 게 낫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새벽마다 첫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1-3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먼저 올바른 길을 묵상하고 표본을 세우고 결심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입니다. 하나님 새벽에 들은 하나님의 음성 그 음성을 표준삼고 오늘 하루 살아가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생각보다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첫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표본으로 삼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준 없이 사는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표본도 세우지 않고 기준 없이 그냥 악을 이기며 살자 그래서는 올바른 의인의 길을 걸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다이어트 하는 분들을 보십쇼. 젊을 때 입었던 날씬한 옷 그 샘플을 눈에 보도록 잘 걸어 놓고 얼마나 덜 먹고 운동하고 노력합니까?

빌립보서 3장 13절, 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라 권면했습니다. 푯대 세우는 일, 기준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1절 2절 3절 즉 화목, 슬기로운 종, 하나님의 연단, 이 기준 이 표본 잘 세우시고 철저히 악한 자의 길을 버리고 의인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특별한 것은 1절의 이 화목의 참 뜻, 화목의 본질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화목은 그저 윤리적인 화목이 아닙니다. 여러분 1절 다시 보십시오. 자세히 보십시오. 1절에 나오는 화목의 진짜 본질은 바로 그 다음 문장에 나오는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육이란 단어가 나오니까 갑자기 제육볶음이 생각나는데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가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밋바잇 말레 집헤”라고 발음합니다. 이 문장은 화목 제물이 가득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목 제사를 드리고 나서 제물의 일부를 제사 드린 당사자 가족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제사는 제물을 먹을 수 없는데 딱 하나 화목제사 제물만은 드린 자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물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욕심을 부려 적지 않은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정으로 보아 이같은 싸움은 쉽게 일어났고 종종 아주 큰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습니다. 화목제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화목제가 우리들간의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화목제의 본질을 놓치고 오히려 싸움을 하고 있느냐? 1절에 바로 이 잠언 17장을 지은 저자의 한탄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무엇인가? 화목제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가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자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친히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마침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회복된 것에 감사하면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으심 즉 하나님이 친히 아들을 보내어 희생함으로 막혀진 관계를 허물고 이미 그 관계를 회복시키셨는데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그 제물, 제사 드리고 남은 그 먹거리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하고 더 큰 싸움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황당해 하시겠는가? 지금 이 잠언 17장을 쓰고 있는 지혜자의 마음이 바로 그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는 못할망정 먹는 것 때문에 싸움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혹시 먹는 것 때문에 혹은 눈에 보이는 무엇 때문에 눈에 보이는 이득 때문에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거저 받은 우리가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믿음의 형제자매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싸우다니 어느 것 하나 싸고 갈 수 없는 것인데, 다 두고 가야할 것들 뿐인데 그것 때문에 싸우는 창피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화목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화목제의 감격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화목을 이루신 것 그게 화목의 본질입니다. 그 화목을 이루심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 살 길, 영원히 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 감사하여 저와 여러분이 형제와 이웃과 화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화목을 이루신 주님을 본받아 이 땅의 모든 관계 속에서 화목을 이루어 가시면서 주님 전하는 도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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