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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룬 승리

새벽예배 2023.05.24 | 사무엘하 21장 15-22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21장 15-22절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밥상에 숟가락”이란 수상소감을 아십니까?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 황정민씨는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스태프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밥상에 숟가락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요. 왜냐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이 다 밥상을 차려 놔요. 그럼 저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저만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해요” 참 멋있는 소감 아닙니까? 자신이 주인공으로 누구보다도 크게 노력하고 좋은 결실을 맺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이 아닌 모든 숨겨진 분들의 수고라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모습, 함께 이룬 결실의 뿌듯함과 겸손함을 함께 보여주는 훈훈한 모습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어떤 귀한 것을 성취했을 때 내가 잘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모든 분들이 함께 이룬 것이라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공동체 전체를 세워주며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멋진 리더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이런 함께 이룬 멋진 승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만약에 오늘 본문의 다윗왕에게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거둔 수상 소감을 발표하라고 했다면 다윗도 배우 황정민씨랑 비슷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다 목숨을 걸고 싸운 신하들과 병사들의 수고 덕뿐입니다. 나는 그저 다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발표했을 전쟁의 승리, 블레셋과의 전쟁의 승리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앙숙이라고 할까요? 그동안 참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었는데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역시 또 기선을 잡으려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15절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꼭 사탄의 공격 같지 않습니까? 집요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잘 싸워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좀 특별한 것은 이 끈질기게 찾아온 블레셋의 공격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이스라엘이 한 마음이 되어 잘 싸운 합심하여 거둔 승리였다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절 22절 끝부분을 먼저 보십시오. “다윗의 손과 그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젊은 시절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로 때려 눕히며 기선을 제압하고 전체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그런 어느 한 사람의 특별한 초반의 쾌거가 아닌 다 열심히 한, 모든 이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거둔 값진 승리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도 이렇게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이루어지는 부흥, 저와 여러분의 교회가 그런 부흥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이 값진 승리의 내부를 좀 자세히 살펴보면 아! 이래서 합심하여 이룬 함께 이룬 승리였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는데


1. 첫 번째로 다윗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15절 보십쇼.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라는 표현은 다윗이 보통 왕과 다르게 보스가 아닌 리더의 모습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기억하시죠? 보스는 전쟁에서 돌격 앞으로! 하는데 리더는 어떻게 한다구요? 나를 따르라! 자기가 제일 먼저 달려가며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리더입니다. 다윗이 그런 리더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총알받이처럼 부하들을 앞에 내보내는 이기적인 보스가 아니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하고 왕이 리더로서 직접 먼저 앞서 나가며 군사들과 함께 싸울 때에 활활 불타올랐을 군인들의 사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맨 마지막 표현 “다윗이 피곤하매”라고 되어 있는데 다윗이 왜 피곤했을까요? 다윗이 늙었다는 표현입니다. 옛날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노장 다윗, 아들들 때문에 고통을 수없이 겪고 이제 나이가 지긋하여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윗, 이제는 옛날 체력이 아니었기에 피곤했다는 것입니다. 피곤해도 앞장서서 먼저 본을 보일 때에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3장에서 몸소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보여주신 리더의 모습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와 선생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런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던 제자들, 비록 주님이 잡히실 때는 다 도망하였으나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주님처럼 섬김의 모습으로 남은 여생을 마지막에는 주님처럼 순교자의 모습으로 전부 다 생을 마감하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직분 맡으신 분들이 참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속장 인도자분들, 선교회장님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전부 다 리더들이십니다. 속도원들, 선교회원들 모든 성도들이 다 보고 계십니다. 예배하는 모습, 기도생활, 헌금생활, 전도생활 모든 부분의 본을 보이는 리더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솔선수범 리더십 주님 닮은 리더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지도자의 애정과 또한 군사들의 존경의 마음이 가득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방금 15절 끝에 다윗이 피곤하매, 나이 때문에 피곤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힘들어 하는 다윗을 보면서 기회는 이때다 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16절 보십쇼.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이스비브놉” 이 사람은 당시의 거인족인 르바임 족속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골리앗처럼 이 이스비브놉을 앞세워 다윗과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던 블레셋,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윗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고 다윗의 조카이자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가 달려와 다윗을 구하며 이스비브놉을 쳐 죽였다는 것입니다. 17절 보십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 그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여러분 이 마지막 문장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이게 바로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윗을 생각했던 모습이었습니다. 등불, 즉 모든 이스라엘을 크게 밝히는 빛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기꺼이 대신 죽을 수 있는 최고의 리더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여러분 정말 감동적이고 멋지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여러 왕 중에 이렇게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칭송받은 왕이 누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냥 아부하느라고 등불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왕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던 백성들, 그런데 왜 이런 마음이 생겼을까요? 그동안 다윗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 애정이 아주 특별했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내리사랑이라고 위에서 먼저 베푼 사랑에 감동하여 백성들 또한 내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이런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내리 사랑과 존경이 있는 공동체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강력한 공동체가 됩니다. 여러분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라고 불립니다. 옥중서신 즉 바울이 옥에 갇혀서 쓴 편지인데 어떻게 기쁨의 편지입니까?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끈끈한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이루고 쓰여진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힘든데도 오히려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와 성도님들간의 관계도 이런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군사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블레셋 장수들에 대항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다윗의 네 명의 용사들이 언급됩니다. 먼저 아비새가 이스비브놉을 쳐 죽인 것은 말씀드렸고 두번째로 18절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 죽였고, 19절에 엘하난이란 용사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고 마지막 네 번째로 20절 손가락 발가락이 여섯 개인 6*4=24 총 24개인 거인족의 소생을 21절에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죽였다는 것, 기억할 것은 이들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삼백 세겔되는 놋 창이나, 새 칼, 거인족, 베틀 채 같은 창 자루, 손 발가락 6개 다 무슨 뜻인가? 엄청난 무기들, 거인들 어떤 적 하나도 쉬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상대하기 어려운 힘든 적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하여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더니, 오직 다윗왕과 동족들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걸고 싸웠더니 결국 모두가 다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싸우는 이야기 누구 죽인 이야기만 나와서 이게 뭔가 나랑 별로 상관이 없네 하시는 분들이 혹시 있습니까? 영적인 눈으로 오늘 이 싸움의 이야기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 사이에 영적인 전투력이 상실된 것 같아 참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교회는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 마음 수련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정신 훈련하는 곳도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을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인도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대신 죽으심과 부활의 소망을 깨닫게 해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냥 대충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구원해 내어야 할 사명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따라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또 하루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시길 바라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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