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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는!

새벽예배 2023.08.29 | 사도행전 28장 1-10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8장 1-10절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새벽 묵상


들어보신 이야기일 것입니다. 1861년에서 1865년까지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에 북부와 남부를 각각 대표하는 링컨과 로버트 리 장군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전쟁 초기, 북부는 남부에 비해 인구가 3배나 많았지만 유능한 지휘관의 부족과 병사들의 훈련이나 전투경험 부족으로 초기에 계속 패하여 전세가 불리했었습니다. 계속된 참패 때문에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공화당 상원의원들까지 링컨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링컨은 하루에 2~3시간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드리고 나오는데 한 참모가 와서 말했습니다.

“각하, 고민이 많으시죠? 하나님도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남부의 로버트 리 장군도 날마다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저는 각하께서 매일 새벽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나오시는 모습을 보면 기독교인으로서 늘 궁금해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두 분 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시니 하나님은 정작 누구 편을 들어주셔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말하니 이에 링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일세” 시편 118편 5-7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내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고민했던 링컨은 결국 1863년 1월 노예 해방령을 선포하고, 같은 해 7월 게티즈버그 전투를 기점으로 전세를 뒤집어, 마침내 1865년 4월 12일 남부군의 항복으로 모든 전쟁을 마무리 짓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내가 과연 하나님의 길, 좁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마침내 바울 선교의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하는 28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28장 1-10절은 그렇게 로마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바울 일행이 탄 배가 파선되어 인근 멜리데 섬에서 약 3개월간을 보내면서 발생했던 사건들을 소개한 본문입니다. 1절에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어제까지의 내용을 기억해 보십시오. 지중해상의 큰 섬 그레데에 있는 미항을 떠나자마자 유라굴로라는 큰 태풍을 만났던 바울 일행은 14일 동안 거친 파도와 뼈 속까지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 가운데 한 치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사도 바울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초월의 능력으로 바울과 함께 승선했던 276명은 한명도 희생되지 않고 모두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절제절명의 때에 극적으로 구조된 것, 후에 구조된 섬에서 섬 이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1절의 멜리데 라는 뜻이 바로 피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생명이 위태로웠을지라도 극적으로 피할 길을 여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멜리데 섬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2절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처음 와보는 섬, 만약에 포악한 원주민들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은 바울 일행 모두를 동정하면서 불까지 피워 따뜻하게 일행을 영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피할 길을 여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는 멜리데섬 원주민들처럼 어려움 당한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환대의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불까지 피워주며 환대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바울은 미안했는지 불 피우는데 손을 보태게 됩니다. 3절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바울이 잡은 나무 한 묶음 속에 겨울잠을 자던 독사가 한 마리 있었던 것 같습니다. 3절 끝에 그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바울이 독사에 물려 곧 죽을 줄 알았는데 5절 “바울이 그 독사를 불어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아마도 멜리데의 원주민들은 이 독사에 대해서 익숙하게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무 이상이 없는 바울, 6절 멜리데 원주민들은 독사에게 물려도 사는 바울을 신이라 추앙하게 됩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일로 7절 멜리데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고 이름하는 이의 집에 가게 됩니다. 거기서 8절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기도하고 안수하여 깨끗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9절 소문이 나서 섬에 있는 모든 병든 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게 되고 10절 큰 대접과 기쁨의 환송을 받으면서 드디어 최종 목적지 로마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로마로 가기 직전에 이 얼마나 훈훈하고 기쁜 이야기입니까? 이렇게 은혜로운 일만 계속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깨달을 첫 번째 교훈은 1.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신비한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독사가 나와서 손을 물어도 그 독이 몸에 퍼지지 않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심지어 열병과 이질도 안수 기도함으로 낫게 되는 하나님의 신비한 신유의 사건.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생각할 때는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이런 일들이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기적이 상식이신 하나님,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실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물린 자들이 죽어 갈 때에 모세를 통해 다시 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몸에 퍼진 독이 없어지고 소생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하셨습니다. 8절의 열병과 이질도 그렇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살리신 하나님이 열병과 이질을 낫게 하시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치유의 광선을 발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독사의 독도 사라지게 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궁극적인 이유는 멜리데섬에 있는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구원의 손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2. 두 번째로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 즉 구원의 계획과 그 역사하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섬에서 사는 이들은 사실 이런 일이 아니면 도무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2절 다시 보십시오. 처음 보는 이들도 불쌍히 여겨 동정하며 영접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원주민들에게, 4절에 보면 독사에 물린 것을 보니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즉 권선징악, 그저 착하고 바르게 살면 고통이 없는데 죄짓고 살면 반드시 이 땅에서 벌을 받는다고 단순한 권선징악의 기준으로 살고 있었던 멜리데 섬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심으로 구원의 기회를 베푸셨다는 사실입니다. 8절에 보블리오의 부친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란 멜리데섬 사람들에게 바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6절 끝에 독사에게 물려 반드시 죽을 줄로만 알았으나 살아난 바울을 신이라 했던 이 멜리데 원주민들이 보블리오의 부친의 병을 고쳐 주었을 때 아마 원주민들은 탄호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기적의 비밀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로 가기 직전 또 다른 기적을 베푸셔서 또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면서 신기해하며 또 목놓아 외치며 복음을 더 열정적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멜리데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죽으셨으나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격에 차서 복음 전했을까요? 9절 다시 보니까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아마도 학자들은 지금 바울과 함께 가는 직업이 의사인 누가,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도 이 멜리데섬 사람들 고쳐주는데 크게 같이 힘썼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육신의 질병을 고치면서 영혼의 병까지 고치시는 영혼의 의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영혼이 구원받게 됨을 경험하는 것, 얼마나 기쁘고 기뻤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선 자만 깨달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함께 느끼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 편에 선 자는 비난에도 낙심하지 않고 칭찬에도 우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기에 사람들의 비난이나 혹은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을 때 4절 다시 보십시오.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멜리데섬 원주민들은 바울이 독사에 물린 것을 보고 자기들이 생각해 왔던 전통을 따라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즉 분명히 죄가 있어 이 불행을 겪는 것이다. 선한 자는 이 땅에서 반드시 눈에 보이는 복을 받고 죄를 진 자는 반드시 죗값을 치룬다. 이게 그들의 머릿속을 강하고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관여치 않았습니다. 5절 그저 파리 쫓듯이 그냥 불에 던져 넣어 버립니다. 6절 끝에는 독사에 물려도 괜찮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 하는데 바울은 응답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블리오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했을때도 바울은 별 답이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신이라고 하거나 칭찬하거나 높이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 구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 그게 바울의 최종 관심사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의 칭찬입니까? 사람들이 내 얼굴을 어떻게 볼까? 아니면 뭘 맛있는 걸 먹을까? 입니까? 어디 가서 재미를 볼까? 돈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저 돈 버는 재미에 쏙 빠져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칭찬하거나 비난하거나 언약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 다윗이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춤춘 것처럼, 하나님 보시는 데, 하나님의 관심사, 하나님의 시선에 저와 여러분의 관심과 시선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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