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내셨나이다!

새벽예배 2022.11.09 | 창세기 45장 1-15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5장 1-15절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참 작은 나라 우리 한국의 컨텐츠들이 어느 때보다도 세계로 가장 많이 수출되고 유행이 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참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 한국의 여러 컨텐츠 중에서 TV 프로그램 중에 너무 인기가 있어서 무려 58개국에 수출되어 각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뭘까요? 예 “복면가왕”입니다. 여러분 다 보신 적 있으시죠? 우리가 사는 이 미국에도 수출이 되어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The masked Singer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이 복면가왕은 가수나 연예인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나와 노래를 부르면서 이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가 예상하게 되고 나중에 그 얼굴이 밝혀지면서 맞추어서 행복하기도 하고 전혀 예상 외의 인물이 그 얼굴을 드러내면서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분명히 알 것 같은데...목소리만 듣고 참 궁금해 하다가 결국 그 가면을 벗으면서 감춘 사람도 궁금해 했던 사람도 서로 환호하며 맞아 맞아! 이 목소리의 주인공 바로 당신이구나, 그래 바로 나야! 하면서 서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이 복면가왕과 같은 장면이 성경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바로 오늘 본문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 자신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복면가왕처럼 요셉이 20여년 만에 겉으로 애굽 사람 그것도 애굽의 바로 왕 다음의 권력자 국무총리의 모습으로 멋지고 고귀하게 치장한 그 겉모습의 가면을 벗고 자신이 20여년 전에 형들이 버린 그 요셉이 바로 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자신이 요셉임을 밝힐 때에 이 순간은 분명히 복면가왕에서 가면 벗는 것하고 비교가 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감동과 눈물과 충격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1절 보십쇼.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이 장면 바로 앞에서 넷째 형 유다는 무려 18절에서 34절까지 17절이나 되는 많은 절을 할애할 정도로 참 길고 간절하게 간곡하며 애원하며 눈물로 엎드려 요셉에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비록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지만 베냐민은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베냐민과 우리 아버지 야곱의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베냐민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곧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디 저만 이 유다만 노예로 삼으시고 베냐민과 모든 형제들은 돌려보내소서.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하는 구구절절한 유다의 희생의 모습을 보면서 또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자기 때문에 큰 고통 속에 괴로워했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요셉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소리 지르며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합니다. 2절에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 성경에는 “방성 대곡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큰 소리로 보다는 방성대곡이 그 의미가 잘 전달되는 말인 것 같은데 아주 큰소리로 통곡하는 요셉, 아마도 지난 20여년 동안 마음껏 울지 못했던 울음을 이 순간에 한꺼번에 다 쏟아내며 울었던 것 같습니다.

3절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여기서 나는 요셉이라 이 선포가 형들에게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분명히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 요셉 때문에 양심에 찔려 순간 순간 죄의식 속에 살았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살아서 만났으니, 그리고 노예의 모습이 아니라 애굽 둘째 치리자의 모습으로 만났으니 이런 놀라 기절할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3절 다시 보십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요셉의 질문에 형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3절 마지막 문장입니다.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이렇게 말문을 잇지 못하는 충격 받은 형들에게 4절 요셉은 가까이 오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4절 끝 부분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했을 때 분명히 요셉의 형들은 다시 땅에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죽여 달라고 빌고 또 빌었을 것입니다. 저 같았으면 “그래 네 놈들이 네 놈들의 죄를 알렸다.” 하고 구덩이를 파게하고 한 명씩 구덩이에 집에 넣고 굶기고 노예 체험도 하게 하고 감옥도 들어가게 하고 그랬을 텐데.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관심이 자신의 감정에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말합니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오늘 바로 이 5절이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의 핵심입니다. 형님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이 일을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우리 인간적인 감정, 인간의 계획, 인간의 생각들을 다 과감히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하는 주의 자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 요셉의 이야기의 클라이막스 요셉이 자신이 요셉임을 형들에게 밝히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첫 번째로 참 승리는 원수 갚음이 아니라 용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처음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왔을 때 처음 형들을 만났을 때, 모르긴 몰라도 형들에게 원수갚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당장 마음가는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심사숙고하며 깊이 묵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순간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고 나서 하나님께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원수 갚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절제하면서 형들을 테스트하게 됩니다. 마지막 테스트가 끝날 때에 요셉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꿈을 꾸었을 때에 그 장면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의 뜻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면서 미움의 마음이 다 사라지고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고생했지만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말 못할 고난을 겪었지만 이렇게 존귀하게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미움의 마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당장 기회가 오면 원수 갚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속 시원할 것 같지만 내가 당한만큼 아니 그 보다 더 큰 고통을 배로 당하게 하면 마음이 확 풀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친 누이동생 다말을 범한 배다른 형 암논을 기회를 노려 죽여 버립니다. 당장 죽이는 순간은 원수갚게 되어 기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때부터 압살롬은 계속 파행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아버지를 반역합니다. 심지어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압살롬은 참 잘생긴 남자였는데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상수리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서 요압 장군에 의해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원수 갚지 않습니다.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고 겉옷자락을 잘라가지고 나오면서 저는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왕은 저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십니까? 하고 소리칩니다. 나중에 다윗은 어떻게 됩니까? 친히 원수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십니다. 사울왕이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하십니다. 또한 다윗을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세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는, 내 혈기대로가 아니라 내 분노대로가 아니라 대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 삼는 손 양원 목사님 같이는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눈을 감을 수는 있습니다. 친히 원수 갚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자녀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야 참 평안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요셉은 3절에서 나는 요셉이라 밝히고, 가장 먼저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니이까 하고 물었을 뿐만이 아니라 9절 보십쇼. 놀라 어안이 벙벙한 형들에게 강력히 요구합니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시라”고 급히 권하도록 합니다. 11절에도 또 아버지에 대한 표현이 세세히 나와 있습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13절에도 또 다시 강조합니다.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요셉의 마음속에 영적인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외에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그토록 그리웠던 아버지, 어릴 때 엄마 라헬을 잃고 자신을 특별히 사랑해 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토록 안기고 싶었던 아버지의 품, 여러분 탕자가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며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품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은 아버지 품에 안겨야만 참 평안을 얻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품에서 비로소 참 평안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1장 가장 첫 번째 문장이 이렇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에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가져보고 누려 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는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품에 안기기까지는 채워질 수 없다는 사실, 하나님 품, 참 안식할 그 품을 기다리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5절을 보십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20여 년 전에 하나님이 20여년 후에 큰 흉년이 7년동안 계속될 것을 내다 보시고, 또한 야곱의 자손들이 이 애굽땅에 살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길을 인도하시고자 먼저 요셉을 보내셨다는 고백입니다. 미래까지 내다 보시고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사람은 바로 1분 후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20여년 이후의 일까지 내다보시고 예비하시는가?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중에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과거와 현재까지는 어떻게 기억하고 안다고 해도 한치 앞의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죽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경험해 보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이 있습니다. 미래까지 주관하시는 시간의 창조주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도 요셉처럼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려고 나를 내 가족을 내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고백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