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새벽예배 2022.10.11 | 창세기 33장 1-11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3장 1-12절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한국 관객 1174만 명이 본 영화, 대작 중에 대작, 제가 본 영화 중에 가장 큰 인상을 남긴 명작 중에 명작인데 안 보신 분들이 계시면 꼭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배우 장동건과 원빈이 주인공 이구요. 6.25전쟁을 배경으로 형과 동생이 함께 강제로 군에 징집되면서 동생을 전역시키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자원하는 형의 지극한 사랑, 심지어 한국군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북한군이 되어 반대로 한국군을 공격하는 이야기 그러다가 살아있는 동생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반대로 북한군을 공격하다가 전사하는 이야기 등 참 특별한 인상과 감동과 아픔을 주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의 여러 장면 중에서 특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을 전쟁 중에 극적으로 만나 갑자기 변한 형의 눈빛, 배우 장동건씨의 눈빛 연기는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남는 명장면 중에 명장면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형과 동생이 만나 큰 반전의 감동과 감격을 주는 장면이 성경에도 나오는데 바로 오늘 본문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이 장면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참 오랜 시간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 밧단아람에서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종으로 살며 고생고생 하다가 20년만에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살펴보았습니다. 야곱의 가장 큰 고민과 두려움은 바로 형 에서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형에 대한 너무나 큰 두려움은 야곱을 괴롭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나오는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몸서리치게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누고 형님에게 드릴 각종 예물을 네 때로 나누어서 앞서 보내며 형의 노여움을 미리 풀어보고자 했던 야곱의 마음이 참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어제 우리는 이런 야곱을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씨름하시고 환도뼈를 치시고 이름까지 이스라엘로 바꾸시며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시는 하나님, 져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야곱은 이 져 주시는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면서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인생이 완전히 바뀐 야곱, 오늘 본문 창세기 33장 3절을 보십쇼. 딱 한 문장이 야곱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여러분 앞에 32장에 보면 야곱은 형을 만나는 두려움 때문에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치사하게도 맨 뒤에서 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예물을 맨 앞에 앞세워 형의 노여움을 선물로 뇌물로 그치게 하려 했고, 가족 배치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참 속 보이고 너무 남자답지 못한 아주 부끄럽기 짝이 없는 찌질한 사람이었습니다. 1절 끝에 보십시오.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11명의 아들을 엄마들에게라도 맡깁니다. 그런데 2절 보십쇼.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그러니까 몸종 빌하와 실바와 그들이 낳은 아들들을 맨 앞에 두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아무리 빌하와 실바가 레아와 라헬의 몸종들이었다고 해도 그래도 자기의 아들들을 낳은 여인들인데 위험에 대비해서 맨 앞으로 배치합니다. 400명의 군사들이 공격해 오면 맨 앞에서 총알받이 하라는 거죠. 그 다음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아무리 예쁘지 않은 아내라고 해도 라헬을 맨 뒤에 요셉과 배치하고 그 앞에 레아와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두었다는 것은 좀 너무해 보입니다. 너무 속마음이 다 드러나 보이는 야곱, 아마 몸종이었던 빌하 실바, 그리고 레아의 마음 속에는 배신감과 속상함, 온갖 두려움이 다 교차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너무 속보이는 배치를 했던 야곱, 다행히도 3절을 시작하면서 이제 완전히 다른 진정한 남자, 혹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맨 뒤에 있던 야곱, 자기를 가장 먼저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야곱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모든 가족들 맨 앞으로 나아가 모든 가족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내가 대신 죽으리니 내 가족은 건들지 말라 하는 멋진 가장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을 얻게 되는데 1. 하나님을 만나면 보스의 모습에서 리더의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한번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께 보스와 리더의 차이를 설명 드린 적이 있는데 싸움이 일어나면 보스는 자기를 먼저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맨 앞에 내 보냅니다. 돌격 앞으로 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먼저 희생시킵니다. 하지만 리더는 다르죠. 모든 부하들보다 맨 앞에 솔선수범하며 가장 먼저 싸움터로 나갑니다. 나를 따르라 하면서 가장 앞에서 싸우는 사람이 바로 리더입니다. 야곱이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니까 즉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니까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어 적어도 가족에게만큼은 진심인, 가족을 책임질 만한 리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헌혈을 하던 생각이 납니다. 담임목사님이 온 성도들에게 우리가 세상을 섬겨야 한다 하시면서 광고시간에 헌혈을 권유하셨습니다. 우리의 피로 한 사람이라도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예수님이 하신 행동 아니겠냐고 강하게 광고하시고 예배 후에 제일 먼저 헌혈차로 달려가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장로님들 교회 중직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헌혈차에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리더가 저래야 하는구나! 나도 담임목회하면 저래야 하겠구나! 좋은 일 있을 때 말고 어려운 일 당할 때에 맨 앞에서 앞장서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구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냥 그리스도인 되지 마시고 이왕이면 크리스천 리더가 되시길 바랍니다. 속장 인도자 분들이 앞장서서 힘든 일에 모범을 보이고 희생해야 속원들이 따라옵니다. 직분자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앞장서서 가장 힘든 일 다 하기 싫어하는 일을 감당하셔야 일반 성도들이 따라옵니다. 선교회장님이 앞장서서 자신을 희생해야 선교회원들이 그대로 따라옵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리더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야곱은 이제 드디어 형 에서를 만납니다. 그런데 에서를 만나는 야곱의 모습이 아주 특별합니다. 3절 뒷부분을 보십쇼.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여기서 땅에 굽히며에 굽히며 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샤하”라는 단어인데 몸의 다섯 군데를 땅에 닿게 하는 가장 낮은 땅과 거의 붙은 낮아짐의 자세가 바로 샤하입니다. 이마와 두 손과 두발 이 다 땅에 닿는 자세로 몸을 완전히 땅과 붙이는 가장 낮은 종, 노예의 자세 샤하의 모습으로 야곱이 이 지금 형 에서에게 절을 하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야곱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앞에 창세기 32장 25절의 상태 즉 하나님과 씨름하여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탈골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에서를 만났는데 밤새 먼지에서 뒹굴고 정말 거지 중에 상거지의 모습으로 꾸부정하고 절뚝거리면서 온 몸을 땅에 붙여 일곱 번 절하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400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야곱과 그의 모든 식솔들을 초전박살 낼 기세로 왔던 에서가 이 초라하고 불쌍한 야곱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과연 어땠을까요? 가차 없이 멸절하러 온 에서가 갑자기 오열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태극기 휘날리며의 형이 동생과 만나며 눈빛이 바뀐 것처럼 에서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눈빛이 확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확 솟아올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원한의 마음을 가지고 야곱을 멸하러 왔을지라도 이렇게 불쌍한 모습,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으로 힘들게 절을 하는 야곱을 보니 그것도쌍둥이인 에서의 마음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 나이도 99세가 된 노인인 야곱의 모습을 본 에서는 태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야곱도 변했는데 에서도 또한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뀝니다. 4절 보십쇼.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여러분 이 장면은 지금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입니다. 눈물 콧물 부둥켜 앉고 울고 불고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다 녹아져 내리고 서로 울고 불고 그간에 모든 앙금이 다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 두 번째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속에 미움이 사라지고 용서와 화해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법대로 하자! 무슨 3자 대면을 해서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협상을 잘 한다고 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인간관계를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게 될 때에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 안에 찢어진 관계들이 하나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미가서 4장 3절에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함께하시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품고 우리 안에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게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사이에 이 에서와 야곱의 화해와 용서의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시기를 말씀묵상만 하지마시고 실제 우리 사이에서 에서와 야곱의 화해와 용서의 역사가 꼭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0절 보십쇼. 실컷 울고 모든 관계가 회복되면서 야곱이 형님의 얼굴을 이제 제대로 보면서 하는 고백입니다. 10절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 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그렇게 두려웠던 형님의 얼굴을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형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야곱, 여러분 우리가 주님 만나게 되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바뀌고 내 마음이 바뀌고 거듭남, 내가 온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혼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바라 본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을 욕하고 저주하고 십자가에 달게 하라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저들의 얼굴을 보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시고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이 사람에게서 봅니다.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