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나의 섬김!

새벽예배 2022.10.26 | 창세기 40장 1-8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0장 1-8절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새벽 묵상

이동원 목사님의 예화 중에서 윌리엄 카우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찬송 작가인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서른 두 살이 되었을 때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낀 나머지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강에 뛰어내릴 작정으로 마부에게 테임즈 강을 향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 카우퍼의 표정을 수상하게 여긴 마부는 카우퍼를 강가에 내려주고 바로 가지 않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막 강에 투신하려는 찰나에 빨리 달려가 카우퍼를 꽉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카우퍼를 향하여 이렇게 격려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죽을 용기를 가지고 죽도록 열심히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힘을 내십시오.” 이 마부 때문에 카우퍼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카우퍼가 아직 숨쉬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독제를 먹여서 살려 냈습니다.

두 번째 자살에도 실패한 그는 ‘내가 이래서는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면도날을 가지고 손목의 동맥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면도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는 꼭 성공하리라 결심하며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매단 순간 또 이웃집 사람이 와서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곧 끈을 풀어 병원으로 데려가 살려 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렴풋하게 ‘아,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정신적인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정신병 징후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를 사랑했던 이웃들의 배려와 손길을 통하여 교회로 초청을 받았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결국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분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뉴톤 목사님은 카우퍼의 친구가 되어 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상담해주고 격려하면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카우퍼에게도 존 뉴톤 목사님처럼 시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양육해준 목사님을 따라서 카우퍼는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쓰여진 찬송시 중에는 찬송가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는 곡이 무려 67곡이나 됩니다. 그 중 우리 찬송가에 세 곡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샘물과 같은 보혈은”(190장)입니다. 또 한 곡은 그가 쓴 찬송시 중 그가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을 때 그 생생한 상황에서 쓴 찬송시가 있는데 그게 바로 통일 찬송가 80장“주 하나님 크신 능력”입니다. 한국 찬송가는 곡조에 맞추다보니 원 작사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는데, 가사를 다시 번역하면 이런 내용의 찬송시입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도다. 그분은 경이롭게 일하시니 바다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며 폭풍우 위로 걸어가시는도다. 저 깊고 깊은 생각 위에 내가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로써 자신의 밝은 계획을 높이 세우고 그 분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는도다. 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지니 은혜로우신 그 주님을 의뢰할지라.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 짓는 얼굴을 숨기시는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을 쓰시는 하나님, 내 부족한 판단력으로 판단하지 말고 미소 짓는 주님의 얼굴을 의지하고 따르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제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옷이 붙잡힌 요셉이 그 옷을 버려두고 도망한 이야기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요셉의 억울함을 알았던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왕의 죄수들이 들어오는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냥 감옥이 아니라 왕의 죄수들이 들어오는 감옥에 요셉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왕의 죄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감옥은 일반인들이 들어가는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죄수 즉 왕의 측근에서 나라에 큰 일을 감당하는 최고 지도자들이 들어오는 감옥이었습니다. 1절 보십쇼.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절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절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이 인물들이 그냥 술 맡은 자, 떡 굽는 자가 아닙니다. 당대 세계 최고의 국가는 애굽이었습니다.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하늘에 닿을 권세가 바로 애굽왕의 파라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술 맡은 자는 왕에게 술을 가까이에서 바칠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술을 다 관리하는 세계 최고 술 사업 애굽주, 파라오주의 회장님이라고 할까요? 떡 굽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왕에게 내시처럼 왕이여 이 빵 맛있는데 드십시오. 이런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 전 세계 제빵업계의 대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사한 것은 여러분 요셉이 지금 이 세계 최고 술 사업 회장과 세계최고 제빵 업계의 큰손을 만날 군번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고자 신기한 방법으로 이들을 만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이 두 관원장과 아주 두터운 관계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이 중에 술 맡은 관원장과 연결이 되어 바로왕을 만나게 되고 바로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가장 존귀한 위치에 오르게 되죠.

우리가 여기서 첫 번째로 깨닫는 교훈은 하나님은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그 특별한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구덩이에 빠져서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구나 했는데 애굽으로 가는 상인의 손에 팔리게 된 요셉, 이제 노예로서 인생이 끝나는 구나 했더니 애굽 최고 비서실장인 친위대장의 집에 노예가 되어 그래 그래도 노예 중에서는 이 정도면 좋은 인생이다 싶었는데 웬걸 날마다 유혹하는 보디발 부인 때문에 정말 하루 하루가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결국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요셉은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도 못보고 죽는 구나 생각했는데 세계 최고 술 사업주를 만나게 하셨으니 최고였다가 최저였다가를 반복하는 요셉의 인생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의 눈으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을 겪는 과정이 다 하나님의 섭리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큰 섭리가 이루어지기에 하나님은 이 과정을 다 겪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구덩이에 빠져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곧 생각지도 않은 이스마엘 상인과의 만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타국에 팔려와서 외로웠을 수도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하지 말고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실히 한다고 해도 어느 날 보디발 부인의 계략으로 억울하게 누명 쓸 일도 있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만남이 예상치도 못했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 와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1. 술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비롯한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이들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술 관원장은 복직 될 사람이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될 사람이었기에 요셉이 차등을 두었습니까? 아닙니다. 편견 없이 사심없이 두 관원장 모두를 잘 섬겼습니다. 아마도 두 관원장 말고 10명의 관원들이 들어왔어도 똑같았을 것입니다. 앞에 보디발의 집에서도 모든 보디발 집안의 사람과 재산을 다 관리하는 위치에 있게된 것은 그의 섬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섬기는 것이 합당하니라.” 섬김은 말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님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행함으로 그리고 철저히 낮아짐으로 섬김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에 아멘만 하지 마시고 아멘 하신대로 이제 직장으로 돌아가시고 가정으로 돌아가셔서 손과 발로 낮아짐으로 뛰시는 행함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섬김의 모습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비록 조롱하는 눈빛이 있어도 채찍질이 있고 제자들의 수많은 부인함이 있어도 끝까지 행함으로 섬김을 완성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행함으로 섬기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따뜻한 관심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6절 보십시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절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여러분 술관원장과 떡 관원장은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인가? 날마다 왕의 얼굴을 대하게 되는데 얼굴 빛이 문제가 생기면 금방 왕이 알고 음식이나 술을 의심하게 되는 위치였기에 항상 일부러라도 웃고 친절한 얼굴을 가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꾼 꿈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지 사색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이 두 관원장의 얼굴을 잘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들 얼굴에 근심의 빛이 나타나는 것을 아주 예민하게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쓰여져 있지 않지만 근심된 두 관원장들의 모습을 보고 요셉은 이들을 위로하고 힘주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것,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다 전하며 섬겼을 것입니다.

따뜻함과 관심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내 가정부터 돌아보시고 내 속회도 돌아보시고 관심 가지셔서 얼굴에 근심의 빛이 보이는 사람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철저히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8절에 관원장들이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다고 할 때에 요셉이 했던 말이 뭐였습니까?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자기가 아무리 꿈을 잘 해석해도 자기는 도구일 뿐이고 실제 해석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엑스트라이고 주인공은 하나님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내가 아니라 나를 지으신 분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강단의 특징 중에 하나가 양쪽으로 사회자와 설교자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요새 주의 집중시키느라 이렇게 강단이 중간에 있지 원래 감리교는 사회자 설교자 다 양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이유는 주인공이신 십자가의 주님을 가리지 말자 하는 의미입니다. 오직 주인공은 한 분 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