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7.05 | 사도행전 7장 51절 - 8장 1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7장 51절 - 8장 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새벽 묵상
이정원 목사님이라는 분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바로 요셉이다 하시면서 설교하신 적이 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설교에 보면 요셉과 예수님과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우선,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7년 동안 풍년과 7년의 흉년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백성에게 선포했다는 것,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이 뭐였습니까? 케리그마 하나님의 말씀 선포였습니다.
또 하나 요셉은 17세에 형들에 의해서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 가서 노예가 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등 무려 13년 동안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극심한 고난을 당했으며 결국 애굽의 둘째 치리자로 존귀하게 되었는데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심지어 가롯 유다에게 팔리기도 하셨고 수많은 고초를 겪으셨는데 결국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몸으로 가장 존귀하게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요셉은 사브낫 바네아라고 바로왕으로부터 애굽식으로 이름을 지음 받았는데 사브낫 바네아는 생명의 구원자라는 뜻으로 실제로 요셉은 그 이름처럼 자기 민족 히브리 민족의 생명을 구원했을 뿐만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의 생명까지 다 구원한 큰 구원자가 되었다는 것, 예수님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또 온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생명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비슷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 요셉은 이방 여인 애굽 제사장의 딸을 신부로 맞이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사 당신의 신부인 교회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까?
신학교 졸업하고 대학원 때 제 친한 친구인 목사님이 제 별명을 예수님이라고 지어줘서 잠깐 뿌듯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 행동이 내 말투가 주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며 거룩해 보였나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가 그 친구에게 왜 내 별명을 예수님이라고 부르는가 자세히 묻고 그 답을 듣고 나서 영~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별명을 왜 예수님이라고 부르는가? 했더니 당시에 같이 신학교 다녔던 지금은 제 아내가 된 무지 씩씩한 여인 백미진을 아내로 두었기 때문에, 즉 저 엄청난 아무나 감당하기 힘든 여인을 십자가로 지고 가는 모습을 보니 존경스럽고 예수님과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어쨌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과 행동 모든 부분이 정말 예수님을 닮는, 별명이 예수님이 될 정도로 주님 본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요셉이라고 한다면 신약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바로 오늘 본문의 스데반 집사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은 스데반 집사님의 마지막 순교의 장면이 담긴 본문에서 그 이유를 발견하며 교훈을 얻고자 하는데
1. 첫 번째로 스데반 집사님은 그를 보고 있는 모든 청중에게, 정확하게 죄를 깨닫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51절 보십쇼. 스데반이 어제 50절까지 눈에 보이는 성전에 대한 집착과 어려운 율법의 허점을 밝힌 후에 이제 51절부터는 아주 직선적으로 무엇이 죄인지를 밝히고 영적 권위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절에는 예수님을 잡아 죽인 죄를 아주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52절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마치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을 지적하고 우리아를 죽인 것을 매섭게 지적한 나단 선지자처럼 죄를 분명히 지적하는 스데반,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너희들은 메시야 예수님을 살인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54절 보십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얼마나 직선적이고 분명하게 죄를 지적했든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지는 못할지언정 이를 갈고 독기를 품게 된 이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실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핍박당하시고, 놀림당하시고 조롱당하시며 가장 악한 죄인만이 달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것, 아무 죄없으신 분이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해 주는 최고의 직설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리 선지자, 예언자들을 보내서 깨닫게 하려고 했어도 깨닫지 못한 무지 몽매한 우리 인류에게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왜 우리가 죄인인지 말씀을 통해서 직접 보여 주심으로 알려 주신 예수님, 여러분 세례받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은 몰랐는데 무엇이 죄인지를 정확하게 깨닫는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내 대신 이 죄인을 대신해서 대신 십자가 져주시고 죽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눈물로 고백하며 받게 되는 세례,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주인 되시는 새 사람됨의 고백 이게 바로 세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목적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친교모임하고 사교모임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새신자라 환영하지만 언젠가 예수님이 누군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삶의 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이 땅의 소망이 아니라 부활의 나라의 소망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소망이 바뀌게 되는 것, 새로운 영혼이 교회에 나와 어느 순간에 찔림을 받고 내 죄를 고백하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과정이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예민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처럼 돈 있는 사람, 명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이 갑질하는 곳이 아니라 모두 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곳, 자랑할 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밖에는 없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다 용서받은 죄인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죄인 하나가 교회에 와서 변화되어 용서받은 죄인이 될 때에 가장 기뻐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죄를 깨닫고 용서받은 죄인됨을 가장 크게 기뻐하는 참 교회의 깨어 있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스데반은 신비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꿈꾸었던 사람이기에 예수님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55절 보십쇼.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절도 보십쇼.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여기서 인자는 헬라어로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라고 발음하는데 이 단어가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왜 중요한가?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리키실 때만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실 때만 사용한 주님만 사용했던 단어를 주님이 아닌 사람 중에서는 유일하게 딱 한명 이 스데반이 이 단어를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특별히 예수님 닮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 우편, 하늘이 열림, 이런 놀라운 신비한 역사를 저와 여러분도 체험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죄를 회개하며 삶의 목적이 바뀌고 내 삶의 주인이 바뀌게 되면 따라오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데 은혜체험입니다. 기도의 신비한 체험, 문제가 해결되고, 놀라운 병고침의 역사가 나타나고, 물질적인 부분이 풍성해지고,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증거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찬양하며 나타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모든 찬양이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딱 맞는 고백의 노래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도 송이꿀보다도 더 단 그 기쁨, 자고 일어나면 기쁘고 잠들 때 기쁘고, 주와 동행하는 기쁨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던 그 경험을 나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처음 은혜 체험할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은혜의 사람으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식었던 열정이 되살아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스데반이 했던 마지막 말, 죽으면서 돌에 맞아 순교하시면서도 하신 마지막 유언이 꼭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했기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59절 보십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우리의 영혼을 받으시는 분이 누군지, 영혼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아는 자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순간에 누구나 다 그 순간이 오는데 혹시라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내 재산 누구 가져라. 너희들 유산 때문에 싸우지 말아라. 이런 말 마시고 하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즉 복수하고 싶은 마음까지 이겨낸 다른 사람의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영혼 사랑의 고백입니다. 인간의 모든 미움, 시기, 분노, 복수의 마음을 다 이겨내고 영혼을 사랑하는, 가장 하나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자가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도 스데반도 마지막까지 영혼 사랑, 영혼 구원의 소망이 있으셨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장 귀한 소망이 영혼 구원에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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