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여지를 남기지 말라.

새벽예배 2022.09.06 | 창세기 19장 30-38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19장 30-38절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새벽 묵상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야고보서를 공부하던 중에 그들은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약5:16)’라는 말씀에 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서로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아직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네.” 두 번째 사람도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자꾸만 거짓말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네.” 세 번째 사람도 고백 했습니다. “나는 아직 남의 물건만 보면 자꾸만 손이 간다네.”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네 번째 사람은 말을 하지 않다가 세 사람이 재촉하니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실은 나는 남의 약점을 알기만 하면 그것을 여기저기 다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 내 약점이라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죄의 유혹 앞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성 어거스틴도 한 때는 죄의 유혹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사생아를 낳을 정도로 하나님 품을 떠난 탕자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어느 날 기적같이 하나님 품에 돌아왔습니다. 360도 변화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 어거스틴의 회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암브로시우스라고 하는 목사님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는데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말이죠.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모니카는 눈물로 간절히 아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랑방탕한 삶을 살던 어거스틴이 어느 날 어린이들이 뛰놀던 동요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 한국 어린이들이 어릴 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집 다오! 그런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어거스틴이 밀라노 정원에 있을 때에 거기 있던 어린이들이 tole! Lege! 즉 집어라! 읽어라!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랫소리가 허황된 삶을 살던 어거스틴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바로 성경책을 찾아 펴서 읽었던 본문이 바로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 그의 오랜 방황이 끝나고 회심하여 결국 기독교 신앙의 아버지가 되게 됩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의 큰 기준이 되는 인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죄의 유혹 앞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늘 넘어질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주의 자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죄의 유혹 앞에 참 약한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히 느낄 수 있는 본문입니다. 또 인간이 어떤 유혹을 조심해야 하는가?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가 있었지만 결국 의인 10명을 찾을 수 없어서 하나님의 멸망의 불길을 피할 수 없었던 소돔 고모라,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은혜의 손길을 베푸시사 그리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29절 끝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고, 은혜로 소돔성이 불타기 직전에 롯의 가족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피할 길을 엊그제 본문 17절에 보면 산으로 도망하라 하셨는데, 19절에 산에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하고 20절에 작은 성읍 소알이라는 성으로 도망하게 해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허락하시는 하나님, 참 섬세하고 따뜻하신 하나님,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 이제 소알 성에 들어가서 일어났습니다. 소알 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궁금증이 많은 여인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소알 성읍 굴 속에 들어간 롯과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그만 아버지와 잠자리를 갖게 됩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콩가루 집안 이야기, 이게 무슨 비극입니까? 한국에 이와 비슷한 올드보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잔인하죠. 대단한 복수극, 그런데 올드보이라는 영화에서는 복수로 아버지가 딸과 잠자리를 갖게 하는데 나중에 보니 아버지와 딸 둘 다 피해자였는데, 오늘 본문은 딸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도 한명이 아니고 하루는 큰 딸과 다음날은 작은 딸과 잠자리를 갖게 됩니다. 기껏 은혜로 살려는 놨는데 아브라함의 신앙이 조카 롯의 딸들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했던지, 성경 역사에 길이 남을 이 부녀간에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사건을 통해서 죄의 유혹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이 유혹에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깊이 인정하고 깨닫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비극의 원인,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1. 첫째, 굴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의 장소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30절 보십쇼.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려운 게 문제입니다.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먼저 산으로 도망가라 했더니 무서워 소알 성읍으로 가겠습니다. 했을 때 그 때 알아봤어야 합니다. 그냥 소알 성읍에만 있어도 안전한데 지나친 두려움으로 산에 그것도 굴 속에 들어가게 된 게 문제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굴 속은 어두운 공간입니다. 밀폐된 공간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숨겨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한국에 보니까 이상한 방들은 다 지하에 어둑어둑한 방에 있습니다. 비디오방, 전화방, PC방 들어보셨습니까? PC방 같은데 가면 담배연기 자욱하고 쩌들은 냄새에...건전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노래방도 여기는 지하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퇴폐 노래방이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지..어둠의 장소에서 좋은 게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참 강할 것 같아도 죄를 유발하는 장소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나만 안 그러면 되지’ 아무리 결심해도 환경이 무서운 겁니다. 솔로몬이 무너진 것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들 산당을 짓게 허락하시니까 결국 끝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최고의 지혜와 부를 누린 왕이었어도 뒤끝이 안 좋았습니다. 창 34장에 야곱의 딸 디나도 세겜성에 잠깐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구경나왔다가 강간을 당합니다. 그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 추장과 남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하고 결국 세겜에 모든 남자를 다 죽이는 엄청난 피의 보복이 일어나죠? 문제가 뭐였습니까? 디나가 그 땅에 들어간 것이 문제의 대 살인극의 원인이었습니다. 환경이 문제입니다. 죄를 유발할 수 있는 장소에는 아예 발길을 끊는 것이 좋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맹자 어머니만 자녀를 위해서 좋은 환경으로 이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유발할 수 있는 장소를 벗어나야 합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오시고 예배 열심히 참석하시면 피곤하고 바빠서 죄의 장소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문제의 장소에 들어가지 않는 굴 속에 들어가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술취함이 문제였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 말씀 드렸습니다. 술 마시는 건 괜찮지 취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하고 질문하시는 분, 유심히 보셔야 될 본문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이 롯의 딸들이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술취함에 있었습니다. 노아도 술취함으로 옷을 다 벗고 아들 함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데, 32절 보십쇼.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33절에도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34절에도 술을 마시게 하고 35절에도 술을 마시게 하고 창세기 기자가 이 부분을 이렇게 여러 번 술을 마시게 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술은 모든 죄악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었기에 딸을 못 알아 볼 정도가 되었을까요? 다니엘서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 벽에 글씨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쓰여지고 다니엘이 그 해석을 하게 되고 결국 그 날 밤에 벨사살왕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문제가 어디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성소에서 가져온 금 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데 있었습니다. 나실인의 규례 세 가지 중에 하나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제작년인가요? 한국에 있는 신문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더라구요. “조폭 위의 주폭” 한국에 5대 강력범죄 중 술을 마신 사람의 범죄가 28.8%, 특히 살인 사건 10건 중 4건은 취중 범죄요, 1년에 술취한 사람 살인 사건의 사회적 비용이 무려 1조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술이 무서운 것입니다.

술 뿐만이 아닙니다. 술은 한 예일 뿐이고 우리를 제 정신이 아니도록 하는 것들은 전부다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의 대 비극, 역사의 비극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취할 것은 술이 아니라 성령의 취함입니다. 바울은 엡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여러 가지 죄의 유혹을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잘못된 습관이 문제였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사실 잘못된 생각에서 나옵니다. 31절 32절 보십쇼.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왜 세상 도리를 따라갑니까? 하나님이 기준 되야죠?)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굴에 있으니까 없죠. 굴 밖으로 나와야죠)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이런 잘못된 생각이 어디서 왔을까? 바로 음란과 방종과 남색의 도시 소돔 땅에서 보고 듣고 자란 그들의 환경에서 그런 패륜적인 생각이 어렵지 않게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라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잘못된 습관이 잘못된 생각, 잘못된 가치관을 가져오게 하고 결국 잘못된 행동을 실천에 옮기게 했다는 것,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거룩한 습관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젖먹이고 기르면서 가르치고 길렀던 거룩한 습관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거룩한 행동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뛰어놀아도 교회에서 놀게 하고, 공부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주의 전에서 형성되는 습관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이 거룩한 습관을 못 전해 주었더니 하나님 언약궤 뺏기고 엘리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 해산하다 죽고 집안이 몰락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습관이 중요합니다. 새벽마다 내 어머니는 내 아버지는 우리 가족 위해 기도하신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습관입니까? 자녀의 평생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습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신 분이셨고 자꾸만 죄의 굴 속에 들어가는 가능성 없었던 저와 여러분을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의 나라로 이끌고 나오신 분이십니다.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기시는 주님 같은 승리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