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5.01 | 사무엘하 13장 1-14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3장 1-14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고려장이란 말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고려시대부터 생긴 장례풍습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고려장 즉 늙은 부모를 산채로 산에 내다버리는 풍습은 실제 고려시대에는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고려시대에는 특정 계급의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풍습이 대부분이었으며 무덤 내의 껴묻거리 즉 죽은 특정 계급의 사람을 매장할 때 함께 그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 패물들을 묻었는데 그 보물들을 도굴하기 위해 일본이 왜곡해서 이 고려장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무분별하게 무덤을 파헤쳐 온전한 무덤이 없다 하는 것이 실제 역사라고 합니다. 참 가슴 아프고 화나는 이야기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왜곡된 고려장 이야기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는 지게형과 문제형이 있습니다. 먼저 지게형은 어떤 아들이 너무 가난하여 70세 된 늙은 어머니를 모실 수 없어 어린 아들과 함께 지게에 어머니를 지고 산에 가서 어머니를 내버리고 지게까지 두고 오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갔던 어린 아들이 지게를 빨리 도로 가져오죠. 아버지가 왜 가져오냐고 물으니 아깝잖아요. 어차피 아버지도 늙으면 제가 이 지게에 아버지를 지고 여기에 버리러 와야 한다고 하니, 자신의 불효를 깨달은 아버지가 울며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형은 이렇습니다. 어떤 대신이 늙은 어머니를 고려장으로 버릴 수가 없어서 고려장을 했다는 소문을 낸 이후, 몰래 노모를 벽장 속에 숨기고 모셨죠. 중국에서는 고려에 인재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두 마리의 말을 보내 어미와 새끼를 구별하고, 나무토막의 상하 구별하기, 코끼리의 무게 알아맞히기 등의 어려운 문제를 내고 해답을 요구하죠. 어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벽장에 있는 노모가 아들에게 알려주죠. 말을 굶긴 후에 먹이를 주면 새끼에게 건네주는 건 어미고 먼저 먹는 쪽이 새끼며, 나무토막은 물에 담그면 윗부분이 위로 뜨고 뿌리쪽인 물을 빨아들이는 쪽이 가라앉는다는 것. 코끼리를 배에 태운 다음 물에 잠긴 곳에 금을 긋고, 코끼리를 내린 다음 그만큼의 돌을 넣어 무게를 재면 된다고 말해줍니다. 이 말을 들은 대신이 임금께 문제의 해답을 고하는데. 임금이 기뻐하고 상을 주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까, 이 대신이 어머니를 숨긴 것을 고백하고 소원으로 고려장 없애기를 구할 때에 임금이 그 소원대로 고려장을 폐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두 가지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나도 언젠가 늙은 아비와 어미가 된다는 사실, 누구나 다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 또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돈 주고 살 수 없는 인생의 지혜가 생기니 그 지혜를 자녀와 자손들에게 잘 전해주어야 하겠다고 느끼시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느끼시나요?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했는데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이치에 따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나이 듦의 과정 가운데 영화의 면류관을 바라보시면서 의로운 길, 즉 하나님의 의를 자손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어르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자녀들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다윗의 좋은 모습이 아니라 부끄러운 모습 안 좋은 모습을 본받은 암논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자녀들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버지로서 어른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아무리 다윗이 이스라엘 최고의 왕일지라도 부족한 인간이기에 이런 부끄러운 가정사를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일과 모레까지 사무엘하 13장을 계속 다루며 이 암논과 다말 그리고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의 비극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우선 1절 보십쇼.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니” 암논은 아내 아히노암의 아들, 다윗의 맏아들이구요. 압살롬과 그 누이동생 다말은 다윗의 다른 아내 마아가가 낳은 셋째 아들과 딸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아가가 상당히 미인이었던 것 그래서 압살롬도 어마어마한 꽃미남이었구요. 다말 또한 절세 미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 다말을 사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냥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랑했다는 것, 2절 끝에 보니까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즉 상사병까지 생길 정도로 다말을 사랑했다는 것, 이 암논은 사촌이며 친구인 3절의 요나답의 잘못된 충고로 결국 다말을 겁탈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계기로 친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게 되죠. 여러분 비극 중에 비극 아닙니까? 내 자식들 사이에 성적인 범죄와 살해극까지 벌어지다니..이게 얼마나 창피스러운 아픔과 고통과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이 창피한 다윗의 가정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첫 번째로 자녀들이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자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절 다시 보십시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여러분 또 그 후에가 나왔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이 “그 후에”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십니까? 히브리어로 “아하레 켄”이라고 발음하는데 이 “아하레 켄”이 나오면 바로 앞에 이야기하고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사무엘하 10장을 시작하면서 바로 앞에 9장에서 므비보셋은 버림받을 수 없는 존재였는데 다윗이 요나단을 기억하면서 사울의 모든 밭 돌려주고 매일 다윗왕과 식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상반되게 10장 시작 부분 암몬 왕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다윗이 보낸 조문객 신하들을 첩자로 의심하고 수염 자르고 중동볼기까지 잘라 내쳤다. 자기 속에 가시 때문이었다. 기억나시죠?
바로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앞에 12장의 이야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범하고 임신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부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죽고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았고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회개한 이야기입니다. 이 다윗의 가장 부끄러운 죄의 이야기와 오늘 본문이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죄짓는 모습을 암논이 그대로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암논은 아버지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서 어땠을까요? 도덕적인 불감증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술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똑같이 성장해서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답습하듯이 오늘 본문의 이 근친상간과 결국 살해극이 일어나는 것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우리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죄 앞에서 정말 진지해야 합니다. 나만 죄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부모에게서 보고 배우고 받은 것들 중에 좋은 것들은 그대로 잘 지키시고 더 발전시켜 가시고, 안 좋은 것들은 초반에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새벽에 주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 내 부모로부터 우리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받은 좋은 유산입니다. 내 자녀들이 보고 배울 좋은 기도의 유산입니다. 어떤 자녀들은 아빠는 혹은 엄마는 교회에서는 좋은 권사님 집사님일 줄 몰라도 집에서는 전혀 다르네.. 이런 말 듣지 않도록 언행일치가 되도록 이중인격자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더 힘듭니다. 행여나 저희 애들이 아빠는 목사님인데 왜 그래? 그런 말 나올까봐 제일 두렵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저 예수님을 닮아서 아빠는 예수님 같아. 엄마는 진짜 크리스찬이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일거수일투족을 오직 주님 닮아가시는 성화의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내가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들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가정적 비극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은 바로 요나답이었습니다. 3절 보십쇼.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여러분 요나단은 좋은 친구고 요나답은 나쁜 친구입니다. 이름의 뜻이 요나단은 “여호와가 주셨다”라는 뜻이고 요나답은 “여호와는 고귀하시다”라는 뜻으로 둘 다 좋은 뜻인데 요나단은 이름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하며 누리고 전하는 자로 살았고 요나답은 이름만 좋았지 이름과 다르게 이렇게 암논에게 엉뚱한 조언자로 하나님을 욕되게 만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5접 보십쇼. 침상에 누워서 병든 체를 해라. 아버지 다윗왕이 오면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떡을 먹이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라. 그 때 덮쳐라. 여러분 이게 요나답의 조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가면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왕 여호사밧이 연합하여 아람 군대와 전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불러 전쟁의 여부를 묻는데 400명의 선지자가 다 승리를 예언합니다. 그 중에 시드기야라고 하는 선지자는 철로 된 뿔을 가지고 와서 승리를 예언합니다. 딱 한 사람 미가야라는 이름의 선지자는 하나님께 묻고 실패를 예언합니다. 아합은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400명의 예언자 승리를 예언한 이들의 조언을 듣고 나가서 결국 화살에 맞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귀에 좋은 말만 하는 조언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내게 진언을 해주는 사람 따끔하지만 그 사람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조언자일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잘 점검하시고 잘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동지들은 물론 아닌 사람도 아주 가끔 있지만 믿음의 동지들, 속회 식구들, 선교회 식구들 교회 교우들 만큼 귀한 조언자들이 없습니다. 귀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성령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의 조언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허용하는 것, 눈감아 주는 것, 방치하는 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다윗이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정말 깊이 예민하게 깨닫고 있었으면 하지 말았어야 할 부분이 발견되는데 암논이 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했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 암논이 꾀병을 부리고 배다른 누이동생이 와서 과자 만들어주기를 원한다고 했을 때 다윗은 암논의 병이 꾀병인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 리 없습니다.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7절에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가서 음식 차려라” 설마 그래도 배가 다르지만 여동생 아닌가? 하고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버려 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 아들로서 제물을 도적질하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할 때 얼마나 방치했는지를 기억합니다. 여기 다윗도 그냥 놔두므로 설마 설마 함으로 죄짓게 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게으름과 무책임이 큰 죄를 저지르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 지고 대신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부지런하신 분이셨습니다. 방치해 두었던 것 다시 살피시고 구원받은 열정으로 다시 뜨거워지시고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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