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들아 명령하노라

새벽예배 2022.04.25 | 말라기 2장 1-9절 | 이선기 목사



말라기 2장 1-9절


1절.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3절.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절.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절.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절.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9절.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새벽 묵상


신앙생활 하면서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꼭 등장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운 자 318명과 함께 롯을 구하러 간 전쟁에서 승리하여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하고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아 돌아올 때에 창세기 14장 20절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라는 구절,

또 하나는 창세기 28장 21-22절에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서 도망할 때에 벧엘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의 환상을 보고 나서 하나님께 하게 된 약속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했던 서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 바로 이번주간 묵상하는 말씀인 말라기 중에서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러분 이 말라기 3장 10절이 세 구절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십일조의 배경이 되는 성경구절 아닙니까? 그런데 이 말라기 3장 10절 때문에 마치 말라기 전체가 십일조에 관한 말씀인 것처럼, 그리고 십일조 헌금만 잘 내면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고 해석하는 목회자들이 있어서 다른 미신 종교랑 비슷하게끔 지나치게 기복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말라기는 그렇게 어느 한 부분만 극대화하고 필요한대로 내가복음이 되도록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라기 말씀을 누구에게 말씀하신 것인지, 왜 어떤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인지 그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를 시험하여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라는 이 말씀은 일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십일조를 담당하는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백성들을 잘 지도하여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서 벗어나,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 성전 중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에게 하신 교훈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말라기 전체를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는 총 6편의 설교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2번째, 3번째 설교가 바로 이 잘못된 제사장들의 어리석은 지도력에 대한 책망과 권고의 이야기입니다. 1장 6절부터 오늘 본문인 2장 9절까지가 두 번째 설교요. 내일 본문인 2장 10절부터 16절까지가 3번째 설교입니다. 살펴보시면서 아!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잘못을 교정하시고자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해 신랄하게 책망하고 계시는 것, 이게 바로 말라기구나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 드리면 꼭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럼 이 말라기는 바로 목사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네요. 목사님들만 읽어야 할 말씀이 바로 말라기이군요. 여러분 제사장들은 곧 목사님들, 백성들은 곧 일반 성도님들 이건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인 제사장, 모든 사람이 바로 제사장이구나. 하나님이 나도 이 땅의 제사장으로 이 땅에서 예배하는 자로, 그리고 아직도 복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 인도자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시고 살아가라고 하시는구나 깨닫게 되시고, 거룩한 성도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제사장들의 어떤 부분을 교훈하고 계시는가?

1. 첫 번째로 사명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절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여러분 이 문장은 아주 강력한 명령의 문장입니다. 명령하노라의 명령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쯔바”인데 이는 신의 명령, 즉 하나님의 경고성 명령이요. 무서운 심판을 전제할 때에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무섭게 제사장들에게 미쯔바, 강력한 단어를 쓰시면서 명령하시는가? 2절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우선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에서 듣지 아니하며 의 듣지는 우리가 잘아는 히브리어 쉐마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듣는데서 시작되는데 쉐마라고 주의를 집중하여 들어야 믿음의 싹이 트게 될텐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쉐마에 문제가 생겨서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할 마음이 엉뚱한데로 향하고 있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으니” 여러분 저주라는 표현이 이 짧은 문장에서 3번이나 나옵니다. 저주를 내려, 저주하리라. 이미 저주하였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일 새벽 피곤한데도 이렇게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말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저주의 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 저주를 내려, 저주하리라. 이미 저주하리라 하시는 음성을 심각하게 들으시고 묵상하시며, 매일 듣는 것,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육신은 조금만 아파도 그렇게 바로 바로 병원에 가시는데 우리 영혼은 병든 지도 모르고 너무 무뎌진 저와 여러분은 아닙니까? 예민하게 깨어있지 못한다는 사실. 3절에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이 구절은 개역 성경에는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라”라고 되어 있는데 팔을 억제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사명을 저버리고 있으니까 자손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요 그 일해야 할 팔로,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니 팔을 확 묶어버리고, 다시 3절 보십쇼. 똥을 얼굴에 바른다. 즉 제사장들에게 심한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웬만해서는 이렇게 지저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표현을 하셨겠습니까? 제가 조지아에 살 때에 교회학교 어린이 중에서 한국말을 잘 못하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보면 “똥”이라는 표현을 하는 친구를 본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맘에 안들면 “선생님 똥이야!” 하고 도망을 가는 친구. 마치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꼴보기 싫다는 표현이 똥이야인데 하나님께서 오죽했으면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이런 표현까지 하셨겠습니까? 제사장들이 사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면 이런 지저분한 표현의 책망을 들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이 목사! 너 뭐해다 왔느냐? 내가 볼 때는 똥목사였구나. 나를 위해 도대체 뭘 하다 왔느냐? 아무리 살펴봐도 날 위해 한 게 아니라 너만 위해 살지 않았느냐? 하고 책망 받으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지금부터 하시면 됩니다. 오늘부터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집중하여 귀기울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항상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목받는 자리, 넓은 길, 칭찬받는 자리,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 두신 곳 즉, 남이 잘 알아주지 않는 자리, 지저분하고 힘든 곳, 칭찬받기 어려운 자리, 좁은 길, 발을 씻기는 종의 자리 그런 곳이 바로 하나님이 마음을 두신 곳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잃어버린 제사장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4절 보십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민수기 25장 12-13절에, 그리고 신명기 33장 8-11절에 레위의 후손인 모세와 세운 언약을 의미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 언약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그 언약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을 더 표현하고 있습니다. 5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즉 “생명과 평강”이 레위와 세운 언약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이임”이란 히브리어를 쓰는데 만물을 살리는 근원을 의미합니다. 평강은 들어보셨죠? 샬롬이란 단어로 하나님 안에서만 느끼는 영원히 보장된 최고의 평화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예수님 영원한 삶의 시작이 되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 샬롬의 축복 즉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축복의 약속,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누가 잃어버렸는가? 제사장들이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보장된 최고의 축복은 세상 사람들의 복과 다릅니다. 이 땅에 잠시 사용하다가 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 죽음을 넘어서는 영생이요 만물을 소생케 하는 생명이요, 평강임을 다시 기억하시고 감사가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부모의 유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심지어 형제들 간에 대 살인극이 벌어지고 있는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자녀들에게 꼭 전해주어야 할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견고한 믿음을 전해 주셔야 합니다. 영생의 길 부활의 감격과 소망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이것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가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언약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저와 여러분 가정에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되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6절부터 보십쇼.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불의함이 없고 화평함, 정직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제사장이요 7절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제사장의 입에서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7절 맨 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제사장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의 칭호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라는 칭호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모든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렸다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의 직분의 권위는 세상의 직분과 다릅니다. 우리의 상급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자, 만물의 주인의 사자, 그의 일꾼이라는 칭호만으로도 그 자체가 너무 큰 감격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저와 여러분은 가능성 없는 죄인이었으나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하시고 무익한 종으로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고 고백하는 거룩한 제사장,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신실한 성도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