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9.05 | 히브리서 3장 12-19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3장 1-11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새벽 묵상
여러분 우리 한국말 중에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할 때 꼭 사용하는 강조적 표현이 있습니다. 뭘까요? 예 죽는다는 표현입니다. 배고파 죽겠네, 졸려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머리 아파 죽겠네, 좋아 죽겠네, 보고 싶어 죽겠네, 그런데 이건 내가 어떠어떠해서 죽는다는 1인칭 표현이구요. 이걸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면 2인칭으로 사용하면 어떤 표현이 될까요? 즉 너 까불면 죽어! 너 우리 애 괴롭히면 죽는다! 너 그렇게 하다간 힘들어 죽는다! 너 계속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면 고생만 하다가 죽어! 무슨 표현이 됩니까? 강한 경고의 표현이 됩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하는 표현이 되죠. 오늘 본문의 표현이 바로 그런 경고의 표현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약해지고 기독교에서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가려 하는 유혹을 받는 이들을 향해서 어제 복음의 분명한 확신을 주기 위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면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표현으로 유대인들이 그렇게 중요시하고 숭배하는 모세는 복음의 본질이요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일한 종일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오. 모세처럼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실하셨다 하고 강조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어제 3장 6절까지의 내용이었습니다. 7절부터 오늘 본문 마지막절 19절까지는 앞에 6절까지의 포괄적인 비교와는 다르게 조금 더 피부에 와 닿도록, 좀 더 강하게 교훈할 필요를 느끼고 경고하는 표현으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죽는다. 기독교의 본질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했으니 더 나아가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도록 예로 드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8절 보십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즉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지내는 동안 얼마나 불평하면서 조금만 힘들면 모세를 원망하면서 차라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는가? 결국 그렇게 후회하고 다시 되돌아가고자 했던 이들 어떻게 되었는가? 다 죽었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는 그 60만 명 애들과 여인들까지 하면 거의 200만 명에 이르는 너희 선조들 딱 2명 외에는 심지어 모세도 그토록 원하는 가나안 땅에 직접 들어가지 못했다. 다 죽고 말았다. 즉 로마의 박해로 많은 복음 1세대가 죽어가는 때에 성도들이여 두려워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라.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지 말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고 복음의 길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계속 전진하라. 이게 바로 히브리서 기자의 소망이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영광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중에도 혹시 믿음 생활 여태까지 참 잘 하다가 갑자기 냉랭해지거나 그렇게 세상의 생활을 다 청산하고 주님 앞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의 메시지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 명 빼고 다 죽었다. 돌아가려다가 죽는 자 되지 말고 두 명처럼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 영광의 가나안 땅을 누리는 자가 되라. 이 땅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나안 땅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기준대로 세상을 따라 살지 말고 다시 하나님 붙들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런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혹을 이기고 사는 방법을 발견하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첫 번째는 하나님께 멀어지면 죽는다 하는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2절 보십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여러분 여기서 우선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란 표현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악함이라는 것은 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생각하는데 더 근본적인 악함은 믿지 아니하는 것이 악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인류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처음 와서 새신자로 교육도 받고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주님을 만나게 되는 이들을 보십쇼.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동안 잘 몰랐는데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악한 죄인임을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동안 몰랐는데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보면서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내 대신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 왜 amazing grace가 amazing grace인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예수 믿기 전에 아주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좀 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착함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죄 안 짓고 참 정직하게 사는데 왜 내가 서양에서 들어온 신을 믿어야 하는가? 이게 제 아버지의 물음이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죽음이 바로 코 앞에 있음을 깨닫게 되니까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왜 죽어야 되는 존재가 되었는지 깨닫게 되고 또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니까 인생이 확 바뀌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뜨거운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악함임을 저와 여러분도 다시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12절 그 다음 문장도 중요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앞에 믿지 아니하는 것이 본질적인 악한 마음이고,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곧 악이라는 표현입니다. 특히 떨어질까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떨어질까 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포스테나이”인데 여러분 그냥 멀어질까 라고 해도 되는데 왜 굳이 떨어질까라고 표현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곧 아래로 떨어지는 패망의 표현 그게 바로 악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간곡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진 표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기독교에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인데 그냥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것이니 악한 길로 떨어지는 것이니 조심하라.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안타까워할 것은 눈에 보이는 소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시고 늘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와 하나님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가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미루지 말라 그리고,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3절 보십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여기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이 표현은 헬라어로 “아크리스 토 세메론”이라고 발음하는데 이 표현은 시제 중에 “종말적 현재”를 강조한 표현으로 히브리서만의 특별한 표현 중에 하나입니다. 종말적 즉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마음과 현재 바로 지금 하라는 표현이죠. 바로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마지막 기회다. 다시 유대교로 광야에서 죽은 이들처럼 지금 돌아가면 끝이 될 수도 있다. 절대 되돌아가지 말아라.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도를 유혹하여 죄 가운데 파멸로 이끄는 사탄에 위험성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심각하게 여기고 조심하라는 뜻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13절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다음 문장 보십쇼. “매일 피차 권면하며” 이렇게 심각하게 여기며 마지막이라는 종말론적 마음과 더불어, 혼자서는 안 된다. 매일 즉 하루도 빠짐없이 항상 피차 권면하며, 즉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서로서로 권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서로 권하고 기도하고 격려하고 함께 신앙의 조력자가 되라 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코이노니아. 믿음의 형제들과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서로 교제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 다른 분과 교제하다가 받은 상처 때문에 내가 다시는 교회 안에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 하고 주일 예배 참석 하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분과 서로 관계 맺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속회 때 소그룹으로 모일 때마다 웨슬리 목사님이 속장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것을 강조했는데 첫 번째가 한 주간동안 서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떤 유혹을 받았는지, 어떻게 그 유혹을 이겼는지 체크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로 중보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피차 권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시고 지금 미루지 마시고 믿음의 형제 안으로 들어가시고 피차 권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초심을 잃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14절 보십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즉 처음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에 감격을 회복하라. 그걸 끝까지 견고하게 잡고 정진하면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 즉, 부활의 특권을 얻는 자가 되리라. 영생을 얻는 자가 되리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 주님을 뜨겁게 만났을 때를 다시 회상하시기 바랍니다. 왜 나 같은 못난 인간을 사랑하셔서 만나주시고 구원해 주셨는지 깨닫고 한없이 눈물 흘렸던 그 순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왜 로마에 가서 순교할 때까지 3차에 걸친 목숨을 건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 복음의 열정이 꺼지지 않았는가? 바로 다메섹에서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 감격적인 순간을 늘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히브리서의 경고의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기시면서 다시 주님을 처음 뜨겁게 만났을 때를 다시 떠올리시고 뜨거워지시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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