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9.26 | 히브리서 12장 12-17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12장 12-17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새벽 묵상
어제 우리는 믿음장인 11장을 마무리하고 12장을 시작하며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의 증인이 되며 인내하고 경주하라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라 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목사님 말씀하신대로 제가 하나님 나라 국가대표가 되겠습니다. 하고 말씀해 주셔서 참 뭉클했습니다. 저분은 정말 하나님 나라 깃발을 가슴에 달고 신앙의 국가대표가 되시겠구나.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그 나라에서 만나겠구나 기대가 되고 그 분 위해서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국가대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4년 동안 수도 없이 훈련하는 국가대표처럼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다 참고 잘 훈련하시고 마침내 영광의 하나님 나라 면류관을 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12절과 13절은 그에 대한 연장으로 마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연습하다가 중간에 낙심하는 선수를 생각나게 하는 구절입니다. 12절 보십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이 표현은 이사야 35장 3절을 인용한 표현인데, 즉 아수르의 침략의 소식을 듣고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와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당장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할 손이 피곤하다. 힘이 쭉 빠져있다. 무릎으로 강하게 버티고 싸워야 하고 또한 기도의 무릎이 되어야 하는데 두려움과 떨림으로 버티지도 못하고 공포심으로 기도의 무릎이 되지 못하는 상황.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보고 있는 초대 교인들의 모습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오합지졸 패잔병처럼 온갖 핍박과 박해 앞에서 손에 힘이 다 빠지고 무릎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들이여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13절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곧은길, 즉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꽉 잡고 고침을 받고 일어나 전력 질주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리 떨리기 전에 세계여행 하라는 광고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다리 떨리기 전에 세계여행이 아니라 다리 떨려도 세계전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다리 떨려도 세계전도 하다보면 떨리는 다리도 고침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세계여행보다 더 멋진 여행이 예비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온갖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14절 보십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다가 화평함을 상실하고 거룩함을 놓쳐버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화목이란 뜻이죠.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목과 우리들 간의 화목함 이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샬롬이고 그게 곧 화평입니다. 핍박받다보니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인들간의 서로 간의 관계에도 분열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거룩 즉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절제하는 그 특별한 구별됨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박해받는 시기도 아닌데 우리는 왜 화평과 거룩함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과 갱년기 상태 아닙니까? 주위의 다른 믿음의 형제들과 혹은 아직 믿음이 없는 이들과 다 화목함을 이루고 계십니까? 또 하나 지금 세상의 사람들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된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똑같죠. 좋은 게 좋은 거죠. 하면서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자나 아무런 구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프라이팬에서 서서히 데워지면 뜨거운 줄 모르고 삶아져 가는 개구리처럼 우리가 그렇게 세상 속에 안주하고 여기가 좋습니다. 하고 구별됨이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예민해지시고 구별된 삶, 거룩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에는 이렇게 화평함과 거룩함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끔한 교훈의 말씀이 주어지는데 이 교훈 속에서 내 삶에 적용해야 할 것들을 분명히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1. 우선 첫 번째로 겉만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15절 보십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즉 신앙을 가지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왔는데 겉만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인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도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향해서 하는 표현입니다. 즉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찾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저 교회 주일 아침만 딱 한번 예배, 그저 적당히 종교인 정도로만 살아가면 구원받는 데는 문제없다는 식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요새 쓰는 한국말 중에 뼛속부터 아무개인 사람이란 표현이 있는데 우리는 뼛속부터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신앙이 뼛속까지 전달되도록 하는데 힘쓰고 애를 써야 합니다.
다른 것 하느라고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과 예배를 통해서 만나고 은혜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예배를 준비하는 일로 마르다처럼 열심히 일은 하는데 온전한 예배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속회 예배드릴 때, 소그룹 모임 하실 때 먹는 음식에 신경 쓰시느라고 예배가 메인이 아니라 음식이 메인이 되는 경우를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겉만 그리스도인 되지 않도록, 포장지 보다도 그 내용물에 본질에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쓴 뿌리를 조심해야 합니다. 다시 15절 중간에 보십쇼.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여기서 쓴 뿌리는 도저히 써서 먹을 수 없는 열매를 자라게 하는 뿌리를 가리킵니다. 바로 우상 숭배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하나님 아닌 것들에 정신을 팔리게 하는 온갖 육체의 소욕을 따르게 하는 쓴 뿌리들이 많았습니다. 이들로 인해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그러니까 이들이 앞서지 않도록 이들이 주도권을 잡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그냥 육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으로 자꾸만 하나님 아닌 것이 주인 되지 않도록 싸우고 또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되도록 예민하시기 바랍니다. 앞에 나와서 마이크 잡는 분들, 교회 각 리더들, 부서장님들, 임원들 다 서로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돈이 주인이 되지 않도록, 권력이 주인 되지 않도록, 어떤 사람도 주인 되지 않도록 다른 것이 하나님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할 때마다 가끔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나온 명장면 대사죠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이 참 힘들게 합니다. 꼭 하나님이 제게 경고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전도하십시오. “너는 잘 하고 있니?” 여러분 사랑하십시오. “너는 사랑하고 있니?”, 여러분 분노를 참으십시오. “너는 참고 있니?” 하나님이 “내 자리에 네가 대신 서서 말은 잘 하는데 너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냐?” 하고 물으시는 음성이 속으로 들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닌 것들이 교회에 주인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아닌 것들이 내 삶에 주인 되지 못하도록 영적인 싸움 잘 싸우시고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음행하며 망령된 자가 되지 않도록 하고,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16절 보십시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특별한 것은 음행하는 자와 동격으로 이삭의 맏아들 에서를 예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음행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을 첫 번째로 여기는 것이 음행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에서가 음식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과 같은 것인가? 여러분 어떤 분들은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하나님의 장자권을 잠깐 우습게 여긴 것이 문제였다 하고 단순히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에서는 그 전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즐기는 쾌락에 많이 집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5장 27절에 보면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자랄 때부터 목축업이 주업이었던 유목민들에게 사냥은 주업이 아니었습니다. 사냥에 익숙했다는 것은 엄친아. 즉 에서가 부잣집 아들이기에 재미를 위해서 사냥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그러니까 사냥에 넋이 나갈 정도로 집안일을 하기보다 그저 재미를 위해서 즐기며 살았던 맏아들, 거기다가 창세기 26장 34절에 보면 에서가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이라는 두 여자를 데리고 와서 부모에게 소개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냥하면서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그저 몸이 원하는 대로 여기 저기 사랑에 빠져서 부모가 어릴 때부터 이방 족속과 사랑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을 텐데 부모를 우습게 여겼던 아들, 창세기 26장 35절에 보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러분 이런 사람이 바로 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저 육체적 재미와 쾌락에 빠져 살았기에 평상시에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았기에 장자의 명분이 뭘 그렇게 대수인가 하면서 팥죽 한그릇과 바꿔버렸던 에서였기에 그것은 곧 음행하는 자와 같고 곧 하나님을 망령되게 여기는 자의 모습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끝에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 원문에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라는 뜻입니다.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이었던 에서, 그저 육체적 쾌락과 재미, 또 회개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축복권을 놓쳐버린 사람 에서를 기억하라.
히브리서 기자가 왜 이렇게 에서까지 예로 들면서 교훈했을까요? 아무리 박해와 핍박이 심해도 고난에 직면하여도 흔들리지 말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끝까지 거룩하게 육체가 원하는 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끝까지 견디어 내라. 기회를 놓치지 말라.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말라 하는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시며 십자가에서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포기하지 말고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우리 주님을 따르는 견고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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