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약함

새벽예배 2022.08.18 | 창세기 9장 18-29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9장 18-29절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해운대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개봉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영화입니다. 일본침몰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 보셨습니까?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중에 더 임파서블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보셨습니까? 해운대, 일본침몰, 더 임파서블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이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요? 직접 보시지는 않았어도 영화 제목만 보아도 어느 정도 추리가 가능합니다. 해운대라는 영화의 부제에도 쓰여 있듯이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자연의 무서운 재앙 앞에 인간은 참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 영화 말고도 많은 영화들이 언제부터인가 이와 비슷한 주제로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아마도 점점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여러 재앙들이 우리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좀 더 편하게 살고자 부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이 너무 남용되고 파괴되어서 그런지 수많은 자연재앙을 자연으로부터 되돌려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하나의 사실에 봉착하게 되는데 바로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기술을 잘 개발하여 우주 왕복선을 만들고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엄청난 기계들을 세상에 많이 만들어 낸다고 해도, 아주 쉽게 황당하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한계를 가진 우리의 본질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우리의 약함을 깨닫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약함을 철저히 깨닫고 약하기 때문에 강한 분을 붙들면서 살면 됩니다. 가장 강한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 가장 강하신 아버지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붙들면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약하지만 가장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장 강하신 하나님을 발견함과 동시에 자기의 약하심을 오히려 자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바울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10절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약함을 철저히 깨닫고, 가장 강하신 하나님 꽉 붙들고 약함을 오히려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성숙한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창세기 9장 18-29절에서는 바로 인간의 약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지난 8장에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신실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노아,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던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노아가 오늘 본문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이제 방주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에 비로소 정착하게 되었는데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자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이 참 솔직하고 위대한 책입니다. 보통 대단한 사람이면 가능하면 그의 실수는 감추기 마련인데 성경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대단한 믿음의 사람의 실수도 그대로 남김없이 다 밝히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엄청난 사람 노아가 실수한 부분을 보시면서

1. 첫째로 섰다고 방심하면 누구든지 쉽게 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카일이란 학자나 크리소스톰은 노아가 포조주의 효능에 생소했을 수도 있고 혹은 생활에 안정을 찾은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졌기에 술에 취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인간은 가장 좋은 일이 있을 때 바로 그 직후를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방심하기 쉽습니다. 어제도 다윗 이야기 했는데 여러분 다윗이 언제 죄를 범했습니까?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리감에 충만하여 잠깐 쉬는 그 때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작정하고 죽이고..나귀 턱뼈로 일천명의 적은 작인 삼손도 바로 다음 여인 들릴라의 유혹에 아주 쉽게 무녀져 버렸습니다. 머리카락 잘리고 힘을 다 잃고 눈은 뽑히고 연자맷돌 돌리는 처량맞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한국에 고3 학생들이 수능시험 대학입시험 보고 난 직후 긴장이 풀어져서 술 마시고 오토바이로 질주하고 그러다 안타깝게 갑자기 목숨을 잃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대학교 1학년 들어와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술마시고 폭탄주 마시고 음주운전하다가 황당하게 그냥 삶을 마무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신자의 타락가능성,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았을 지라도 신자라도 늘 타락의 가능성이 남아 있어 늘 깨어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죄의 유혹에서 완전한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유명한 목사님 중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특히 돈의 유혹과 성적인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한 번에 추락하기도 합니다. 제 어머님이 이번에 한국에서 짧게 뵈었는데 또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들 목사야. 돈 조심해라. 여자 조심해라. 목사는 한번 실수하면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여러분 이 새벽기도 왜 해야 할까요? 날마다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영적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여러 가지 유혹이 올 텐데 정신 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유혹을 능히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는데 우리가 어찌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3장 12절 이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여러분 이 새벽기도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빛의 갑옷을 입고 하루를 출발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유혹을 잘 이겨내시고 승리하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과용하고 탐닉할 때 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완전한 자 노아가 넘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술 때문이었습니다. 21절 보십쇼.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취하니까 통제가 안 되고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술마시지 말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 과용 즉 지나친 것과 탐닉 즉 인간의 타락한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술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지 술 마시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호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술 마시면서 취하지 않는다 과연 가능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지나친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게 더 심해지면 중독이라고 하죠. 그리고 지나친 것, 그리고 중독은 결국 모든 죄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아예 술을 마시지 말아라. 한국에 들어간 기독교 초기 선교사님들이 한국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도록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는 것이 좋겠다 하고 아예 술을 금하여 한국 기독교를 전파시킨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소돔 성의 롯을 기억해 보십쇼. 롯이 하나님의 은혜로 타락한 소돔성을 떠나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소알 성으로 피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이 소알 성으로 오는 길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다음 피했던 소알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롯의 두 딸들이 아버지와 잠자리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끊어짐을 면하자 하고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거기 술을 마시우고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인사불성이 되도록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마시우고 또 마시우고 끝까지 마셔서 잠들어 비몽사몽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롯은 자기 딸을 딸인지 구분을 못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딸이 잠자리를 하여 아들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모압과 암몬입니다. 술김에 했다.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인간인 술에 취하면 무슨 사고를 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술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혹들이 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나치거나 탐닉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바로 무서운 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높아지려고 하는 욕심의 바벨탑을 하나님이 흩으셨습니다. 지나치게 자기 이름을 내려하는 사울, 그래서 다윗을 질투하고 죽이려 했던 사울을 하나님은 버리셨습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뒷전으로 여기겠구나 생각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 이삭을 죽여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뭐든지 지나친 것이 문제입니다. 어린 아이들 중에 지나친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를 보십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한번 내 삶에 지나치게 하고 있는 것들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나치게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겠더라고요. 지나침과 탐닉과 잘 싸워 이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허물을 들춰내는 유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술 먹고 벌거벗은 노아를 보고 23절 보십쇼. 아들들 중에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치며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려 26절 27절에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함은 22절 보십쇼.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이게 뭐가 문제일까요?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으면 바로 문제를 조용히 수습해야지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밖으로 나와서 알렸다는 것은 그 모습을 놀리면서 아버지의 수치를 즐기고 들춰내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부끄러움을 보고 덮어주지 않고 허물을 들춰내는 것도 죄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의 치부를 드러내고 놀렸다는 것, 제가 이래서 아들을 안 낳은 것입니다. 이 함은 결국 이 일로 끔찍한 저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26절 끝에 함의 아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또한 27절 야벳의 종이 된다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여호수아 9장 23절과 열왕기상 9장 20-21절을 찾아보시면 이 예언이 예언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보고 셈과 야벳은 각각 백인과 황인의 조상이고 함은 흑인의 조상이다 하면서 지나치고 엉뚱하게 해석을 하게 되는데 전혀 신빙성이 없는 주장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인간의 약함, 즉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데 열심 내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깨닫고 이 본성 때문에 누구든지 함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너무 질투하고 시기하는 우리의 본성, 남 잘되는 일에 박수치는 데는 인색하고 안 좋은 것 여기 저기 동네방네 소문내는 데는 아주 열심인 우리들. 뒷담화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대화 중에 뒷담화를 우리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전도는 안해도 왜 그렇게 뒷담화는 잘 전하고 또 전하는지..여러분 남의 허물 이야기하는 데는 침이 마르도록 열심 내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속회 모임 하실 때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나누고 예배 후에 음식을 먹는 것 거기까지만 하시면 딱 좋겠는데 음식 나눈 뒤에 뒷담화가 예배보다 더 긴 그런 속회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하지 마시고 날마다 영적으로 무장하며 내 입술, 내 손과 발 하나하나 함의 길을 따르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누명, 뒷담화 비난과 조롱을 보고 들으시면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속에 악한 본성이 있는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시며 중보기도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악한 본성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덮으시사 흰 눈보다 더 희게 맑히시고 씻겨 주신 구원의 예수님, 오늘도 인간의 약함을 따라 그저 그렇게 살지 마시고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