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 수건을 벗으라!

새벽예배 2022.07.12 | 고린도후서 3장 12-18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후서 3장 12-18절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새벽 묵상


들어보셨습니까?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세세하게 심혈을 기울여 그렸습니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얼굴,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이 화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더니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들고 있는 포도주 잔 도자기의 정교함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 속에 있는 도자기가 아름다워 오히려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리는구나. 주님 죄송합니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전부 다 붓으로 다 지워 버렸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열심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에 무관심할 수 있는 열심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주님, 주님 아닌 그 어떤 것도 주목받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 오직 주님만 붙들고 주님만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 어제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3장 앞부분에서 내 추천서를 가지고 걸고 넘어지느냐 내 추천서는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다. 율법 조문 옛 언약 붙들지 말고 새 언약의 일꾼으로 더욱 큰 영광, 길이 있을 영광을 바라보라고 했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내 추천서보다도 내가 바라보는 영광보다도 더 영광받아 마땅한 분 내 삶의 주인공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런 고백을 담아 고린도후서 3장 뒷부분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지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최종 주인공, 가장 클라이맥스의 모든 영광은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오직 주인 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바울처럼 참 사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3장 후반부가 참 특별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시내산에 있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 수건을 벗으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끝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14절에도 중간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15절“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16절에도 또 “그런데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마지막 18절에도 잊을까봐 한번 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왜 이렇게 반복해서 계속 수건을 벗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게 가장 중요하게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수건을 벗으라는 의미가 뭘까? 우선 왜 모세가 수건을 썼는지를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이후에 나오죠.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운 것은 저같이 부끄러움 많은 A형 남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빛을 입어 얼굴에서 광채가 나니까 백성들이 광채가 나게 하시는 광채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주목해야 할 텐데 행여 당장 눈에 보이는 얼굴에 광채나는 모세를 더 높일까봐, 하나님보다 모세가 더 드러날까봐 얼굴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즉 모세는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즉 자신의 얼굴빛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엑스트라 같은 것이었기에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대단한 지도자 모세라고 해도 하나님보다느 중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모세의 겸손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바울이 왜 이렇게 모세가 수건을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라고 단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율법을 모세처럼 하나님보다 더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수건으로 율법을 가려야 할 텐데, 그게 아니고 율법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워 버리는 것, 하나님보다 율법을 더 중요시여기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음을 정확히 깨우쳐 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건으로 하나님 가리지 말고 차라리 율법을 가려야 한다 하나님은 더 드러나셔야 한다 모든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런 메시지입니다.

사사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충분히 이길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지도자들이 찾아왔을 때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께서 과연 암몬자손을 내게 넘겨주시면 나가 싸우리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누가 한 말입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했던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더 드러나게 되는 것들은 어떤 것들 일지라도 과감히 제해 버리시길 바랍니다.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순절 기억하시죠?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절제하고 금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사순절에 40일 아침 금식하겠다고 하시고 열심히 12시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12시 땡 하면 정말 한 삼일 굶은 분처럼 정신없이 먹고..내일은 안 되겠다. 차라리 늦게 일어나야 하겠다. 하고 수면제 먹고 주무셔서 11시에 일어나시고 또 12시까지 한 시간 막 힘들게 견디시고...또 12시 땡 하면 또 삼일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드시고, 안타깝지만 그냥 금식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힘들게 자신의 식욕을 억제하며 자신을 학대하시지 말고 금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것인데 주님께 집중하여 주님의 말씀, 행동 하나하나를 닮고자 애를 쓰는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는 교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께 집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오직 주님께 집중하여 수건을 벗는 것 같이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면 과연 어떤 결과, 무엇을 얻게 되는가? 바울은 세 가지를 표현합니다.


1. 첫 번째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17절 보십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무거운 율법의 굴레를 벗고 주의 영이 계신 곳을 바라보면 인간이 가장 행복을 느끼게 되는 상태 자유의 상태가 된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엘류세이아”라는 헬라어인데 멍에를 메고 있는 종이 멍에를 다 벗어버리는 상태, 사냥꾼의 올무에 잡혔던 새가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상태일 때 쓰는 단어가 바로 엘류세이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게 되면 그런 자유, 신분의 자유, 마음껏 창공을 날아가는 그 넓은 자유를 다 누리게 된다는 것, 여러분 오늘 새벽에 나올 때에 혹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친 상태로 나와 계신 분 있습니까? 앞으로 가도 막혀 있고 뒤로 가도 막혀있고 다 포기하고 싶고 그런 마음으로 오신 분 있습니까? 주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엘류세이아 최고의 자유를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의무감의 수건을 과감히 벗어버리시고 주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르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명명백백하게 눈이 활짝 열려 다 환하게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18절 보십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여기서 “거울을 보는 것 같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카톱트리조메노이”, 이 단어는 비춰지는 것들 아주 세밀하게 자세하게 전부 다 보여줄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집에 전신거울이 있으십니까? 그 거울 앞에 서면 뭐가 느껴집니까? 저도 집에 거울 앞에 서면 몇 가지가 느껴집니다. 야 참 머리 크다. 야 참 다리짧다, 집사람한테 참 고맙더라구요..이렇게 묘하게 생긴 나랑 살아주는 게 너무 고맙더라구요..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게 되면 무슨 마음이 드는가? 나의 못난 모습이 다 보이게 됩니다. 나의 죄악된 모습, 남모르게 감춰두었던 나만 아는 비밀들이 세밀하게 다 드러나게 되어 고개를 들 수 없게 됩니다.

바울이 왜 하필 여러 가지 표현 중에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다른 사람보지 말고 내 자신을 보라는 메시지입니다. 지금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삼는 자들, 율법을 붙들고 다른 사람 판단하는 이들, 가서 너희들을 거울에 비춰보라 너나 잘하세요 그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죠. 여기 이 “거울을 보는 것 같이”라는 표현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시면서 곧 나를 면밀히 살피는 그래서 고개가 숙여지고 할 말이 없어지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바울은 주님께 집중하면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18절 중간 보십쇼.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우리는 처음에 지음 받을 때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음으로 그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언제 예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잃어버린 형상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제도 영광의 영광 영원한 영광, 더 큰 영광, 길이 있을 영광을 표현했는데 여기 3장을 끝내면서 마지막 절에 바울은 다시 영광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다시 18절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결국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입니다. 그 찬송 마지막 가사가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 찬송지으신 분이 고린도후서 3장을 많이 읽은 분 같습니다. 영광 영광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저와 여러분 이 새벽에 주 앞에 나온 모든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영광의 면류관 최후 승리의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