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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괴롭게 하지 말라!

새벽예배 2022.04.26 | 말라기 2장 10-17절 | 이선기 목사



말라기 2장 10-17절


10절.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절.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13절.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절.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절.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새벽 묵상


해리 에머슨 포스딕(Herry Emerson Fosdick)은 크리스천 설교자는 아니었습니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한 번 쯤, 귀 기울여야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동력기를 통과하지 않고 물을 빛이나 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여러분은 지금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무엇에 집중하면서 헌신하시고 훈련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목표로 하고 이루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십니까?

웨슬리는 경건 생활로 유명한 모라비안 교도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자신이 경건생활을 위해 영적인 훈련의 과정으로 위해 스스로 자문했던 내용이 이렇습니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 4. 욕심 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독생자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 구원하신 그 위대한 사랑을 갚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소원, 내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집중하고 헌신하며 훈련하고 준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나오는 문장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닮는 거룩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삶, 성도의 삶,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목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앞에 2장 9절까지에서 말라기서의 두 번째 설교를 통해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형식적으로나 억지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 특히 제물드릴 때에 처음 것을 구별하여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 말만 번드르르하지 행함이 부합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시고 책망하시는 하나님,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하시고 똥을 얼굴에 바를 것이라는 표현까지 쓰셔서 백성들보다 제사장들이 더 문제였다고 우선하여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설교로 이제 아래로 내려가서 제사장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한 문장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그동안 백성들의 모습은 거룩과 거리가 먼 삶, 오늘 말씀 제목처럼 17절 앞부분에 나오는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일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거룩의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셨는가? 살펴보시면서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첫 번째로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진 형제임을 기억하고 화목하는 것이 곧 거룩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10절 보십쇼.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여기서 한 아버지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핏줄로 이루어진 한 공동체로 형제와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싸우면 한탄하면서 이런 말을 하죠. 얘들아 내가 없으면 세상에 너희 둘 밖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모르니? 왜 이렇게 싸워? 제발 좀 싸우지 마라. 서로가 가장 믿을 만한 존재임을 제발 잊지 말아라. 거룩한 삶은 옷을 고고하게 입고 말을 매너 있게 하거나 신비하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형제와 화목을 이루고 사는 것, 화평을 이루며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 마음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거룩한 삶을 이룰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시편 133편 1절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마태복음 5장 23-24절에“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하셨습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세상에 대하여 반박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교회 안에서라도 먼저 형제 화해 운동을 일으키는 그래서 당당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고 영광의 면류관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두 번째로 혼합하지 않는 것이 곧 거룩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와 화목하는 것과 다른 차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와 직결되어 있는 혼합하지 않는 성결한 삶, 11절 보십쇼.“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중요한 것은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표현은 신명기 14장 1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아들”과 대조적인 표현으로 이방 신 즉 우상과의 혼합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2장 27절을 통하여 이방신과의 통합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이방신을 섬기는 배우자와 결혼하면 아무리 나는 괜찮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이방신을 받아들이고 섬기게 되는 법,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지혜를 얻었던 솔로몬이 어떻게 이방신을 섬기는 아내들과 결혼하면서 어떻게 말로에 우상을 섬기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바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같이 멍에를 메지 말라는 표현이 바로 같은 차원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가까이 하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 여러분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 아닌 것들 중 무엇을 가까이 하는지 진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식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돈 버는 데만 치우치는 분들, 지나치게 먹는 데만 집중하는 분들, 지나치게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거기 집중하는 분들..우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아닌 그 무엇을 더 가까이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보셔야 합니다. 13절에는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백성들이 이방신의 딸과 결혼한 것은 곧 14절에 나오는 어려서부터 맞이한 아내를 버렸다는 뜻으로 그 원래의 아내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이 여호와의 제단을 가릴 정도였다는 표현입니다. 원래의 버림받은 아내들의 원망과 분노가 얼마나 극에 달하였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구절. 에스라 10장에 보면 맨 마지막에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의 명단이 쭉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 이방인 아내와 자식들까지 즉시 다 내어 쫓으라고 명하는 에스라. 좀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했던 에스라,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혼합함이 거룩함을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거룩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 새벽에 그동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들 다 내어 쏟으시면서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처럼 거룩함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신앙관을 가지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17절 보십쇼.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인다 기쁨이 된다 할 정도로 가치관을 상실하고 잘못된 것을 잘한 것으로, 잘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무너진 가치관들, 심지어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즉 그런 하나님은 없다 할 정도로 갈 때까지 막 간 이들, 잘못된 신앙관의 백성들 이런 잘못된 가치관과 신앙관을 다 버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라는 것,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 세 가지가 다 관계성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들과의 관계, 이방신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생긴 가치관과 신앙관, 다 관계라는 사실, 거룩함은 내가 하나님과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서 결정된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말고 건강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거룩을 완성해 가시길 바랍니다. 이게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그렇게 강조하신 성화, 나의 관계들을 진지하게 점검하시면서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셔서 점점 더 거룩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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