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막측하신 분

새벽예배 2022.03.02 | 시편 139편 13-24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18장 1-14절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절.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절.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절.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절.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절.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절.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절.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3월 2일 새벽 묵상


하나님은 대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아직도 우리 인간의 노력과 개발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의 끝 우주 끝까지를 만드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별 우리가 잘 아는 수금지화목토전해명 수성 금성 지구 화성 이런 우리가 아는 별들이 모여 있는 것이 태양계인데 이 태양계 1000억 개가 모인 것을 은하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런 은하계가 1000억개가 모인 것을 뭐라고 하는가? 우주라고 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공간을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소우주 라고 불리우는 우리 인간 또한 지으셨다는 사실, 놀랍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그럼 이번에는 안쪽으로 우리 인간의 신비 중에서 가장 큰 신비는 뇌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뇌 학자인 콘스탄틴 폰 에코노모는 인간의 뇌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그 무게가 1500그램이고 분홍색 고체입니다. 두께는 평균 3밀리미터이고 그것을 펼치면 2240 제곱미터, 즉 신문지 한 장 넓이인데 그 안에 들어있는 세포 수는 무려 136억 5300만개, 즉 세계 인구의 3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뇌세포 1개의 기능은 소형 트랜지스터 1개의 성능과 같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또한 존 폰 노이만 박사는 뇌세포와 트랜지스터를 비교한 논문에서 뇌세포가 트랜지스터 속도보다 1만 배 내지 10만 배가 빠르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신비한 뇌를 인간이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요? 10%도 못쓴다. 아니다 그건 아직까지도 논쟁 중입니다. 여러분 이 새벽에 졸린데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하시는 분이 있는데 엄청난 것을 지으신 창조의 하나님을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위대하시다라는 말보다 더 큰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그런 표현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를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아봤습니다. 무엇일까요? 14절 보십쇼.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이건 개역개정이구요 옛날 개역성경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신묘망측이 아니라 신묘막측하심이라. 히브리어로 니플라임이라고 발음하고 영어로 wonderful, marvellous라고 하는 이 단어 신묘막측, 신비롭고 오묘하여 감히 측량할 수 없다. 파악할 수가 없다는 의미의 신묘막측 저와 여러분이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우신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이 단어를 외치면서 찬양하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니플라임, 원더플, 마벨러스, 신묘막측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을 계속 찬송하시면서 경배하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 시편 바로 전의 시편인 시편 138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고귀한 특성, 마치 어머니 같은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했었는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아버지 같은 특성, 하나님의 능력,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직접 체험한 하나님, 정말 위험한 순간순간마다 기가 막히게 역사하신 하나님, 하나님께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감탄하며 고백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껏 노래하는 시편 139편, 사순절을 시작하는 오늘 아침에 이 139편을 묵상하시면서 능력의 하나님 붙들고 일어나시고 힘을 얻고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같은 하나님을 다윗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세히 표현했는가?


1. 첫째로 나를 기묘하게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4절 다시 보십쇼.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 구절이 개역성경에는 “신묘막측”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자세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은 기묘하신 분이다. 신묘막측하신 분이시다 라고 해도 되는데 그게 아니라 나를 지으심이 즉 나를 지으신 것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왜 다윗이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라서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내가 내 자신을 보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하는데 아! 하나님이 나처럼 이렇게 생기셨겠구나. 생각했을 것이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며 자신이 태어나고 이렇게 성장해 온 모든 자기의 모습들을 돌아보면서 참 기묘하심이라 표현했다는 것을 예상하게 됩니다. 바로 앞에 13절을 보십쇼.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 내장까지 지으셨습니다. 즉 내가 지금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오는 것, 내 속까지 다 지으시고 훤히 아시는 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고백입니다.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즉 나를 이 땅에 나게 하신 것부터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었고 지금까지도 신비롭습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고백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고 심지어 죽는 것까지 다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기묘하십니다. 신묘막측하십니다. 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거울을 보면서 에이 젊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이제 다 늙어버렸구나. 이게 뭔가? 사는 게 뭔가? 한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 앞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도 다 똑같이 이 늙어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몸이 변해 가는 것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늙지 않고 그대로면 그게 이상한 것입니다. 늙어가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랑 비슷하신 분 아니 나를 비슷하게 만드신 분 그 분을 드디어 만날 날이 곧 오게 되리라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설교의 왕자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기 원하는가? 멀리 갈 것 없다. 당신 자신의 몸을 보라. 인간의 신체보다 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의 구조와 각 기관 그리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 등 인간 신체의 신비는 현대의 의학자들조차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탄성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손가락의 지문만 봐도 세계에서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 참 신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세심하게 다 다르게 지으셨다는 사실. 저는요 제 딸들 얼굴과 성격 보면서 하나님은 참 기묘하신 분이시다 느낍니다. 첫째는 얼굴이 엄마 닮고 성격은 저 닮아서 수줍음이 많습니다, 둘째는 반대로 얼굴이 저를 닮아 쌍꺼플이 있어 잘 생겼고, 성격은 엄마 닮아서 너무 씩씩하고 약간 세고 그렇습니다. 아주 골고루 닮게 만드신 하나님, 우리는 전부 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지어졌고 이 땅에 잠시 왔다가 곧 가는 존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이 우리의 신비한 몸을 보고 나를 기묘하게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일 것이다. 혹은 어쩌다가 저절로 인간은 그냥 생겨났을 것이다.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나를 기묘하게 만드시고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다윗은 능력의 하나님을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절 보십쇼.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공의로 악인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20절에 그들이 했던 주께 대한 악한 말과 주의 이름으로 했던 헛된 맹세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리라는 고백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하셨는데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수년 동안 쫓아다니던 사울왕의 최후의 모습, 스스로 자결하기에도 창피해 했던 사울왕의 최후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남의 아내 빼앗고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그래서 죄를 감추려다 결국 그 남편까지 살해한 자신의 씻을 수 없는 죄들에 대한 심판을, 죄로 생긴 아이를 죽게 하시면서 죄값을 치루게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다윗은 분명하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했던 모든 것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행한 대로 분명히 심판대에서 계산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사랑을 베풀었던 양과 이기적이었던 염소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심판 비유, 이런 비유들은 예사로운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다 기억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도 CCTV가 있는데 한국에서 얼마 전에 보니까 어떤 도둑들이 CCTV 앞에서 까불다가 원래는 다 완전히 놓치는 건데 다행히 그 까부는 것 녹화된 영상 때문에 잡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의 CCTV는 몇일 혹은 한두 달 정도밖에는 영상이 저장되지 않습니다. 곧 없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CCTV는 지워지지 않고 계속 영원히 저장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데 괜찮겠지 하고 행동했던 것, 세상 CCTV에는 사각지대여서 혹시 안 잡혀도 하나님의 CCTV에는 다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코람데오의 마음으로, 키에르케고르처럼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의 모습으로 분명히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최고의 하나님의 능력은 역시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다 변하고 유한한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곳, 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24절 보십쇼. “내게 무슨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여러분 세상의 종교 중에 어떤 종교가 영원한 길은 분명히 여기다. 하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종교가 있습니까? 안다 해도 죽음을 넘어선 확실한 증거, 부활의 증거를 500명 이상에게 직접 보여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무덤도 텅 빈 무덤인 종교가 세상에 어느 지도자 중에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길이 분명히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하사기를 바랍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죽어도 사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40일 금식기간을 묵상하며 절제하는 하루하루가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삶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끝없이 찬양하는 그런 기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