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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07.30 | 고린도후서 12장 11-2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12장 11-21절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새벽 묵상


본문 11절을 보면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라는 말은,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자랑에 쉽게 현혹되어, 자신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우려해서, 자신이 부득이하게 해명을 하면서 자신도 자랑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바울을 비판하고 음해 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바울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생활비를 받지 않는 대신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연보에서 이익을 취한다고 계속 공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바울이 16절에서,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곧 사례는 받지 않았다고 해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이 말은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는 연보에서 사사로이 이익을 취했다는 모함입니다. 



이런 모함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 소문에 적극 대응하여 바울을 변호해주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부득이하게 자신이 자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을 한 겁니다.   



그러면서 본문 14절에 보면 “보라 내가 이제 세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다”면서, 조만간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면서  이번에도 재정적 후원을 받을 마음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 20-2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바울이 원하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이런 것을 보면 아직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이 바라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오직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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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 바울의 편지를 보면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던 주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과 관계된 개인적 갈등만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건전하게 신앙적으로 바로 서 가도록,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다독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성공적인 인간관계 몇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1)성공적인 관계를 원하면 서로 격려해 주십시오.



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거짓교사들이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이간시키려고,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이중 인격자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지만, 부득이 하게 자신이 사도들 보다 못한 것이 없다,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려다가, 그렇게 인식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이런 부족함을 본문 13절에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며 용서해 달라고 했고, 오늘 본문 19절 중반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격려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꽃들도 봐주고, 좋아해 주고, 그래야 아름답게 잘 크는 겁니다. 엄마가 화를 내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아이가 설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칭찬과 격려와 축복하는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나바의 격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격려할 때 인간관계가 더욱 견고해 지는 겁니다. 



2)오래 인내하십시오.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된 증표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첫째로 ‘참음’을 말했습니다. 인내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겁니다. 오래 참고 인내할 때 인간관계가 견고해 지는 겁니다. 



화가 날 때 혼자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자신이 어떤 일로 화를 내고 분노하면 주의 사람들이 신경써주고, 위로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하는 순간 인격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때로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최대한 인내하십시오. 그러면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명예는 더 올라 갈겁니다.



3)깊이 자신을 성찰하십시오.



당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툼과 당짓는 것과 수군수군하는 어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여 교인들을 만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바울은 자신에 대한 오해 보다는 그런 불편한 만남을 두려워 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방문할 때까지 서로 자신들을 성찰하는 시간들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그런데 가끔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남의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깊이 살피고, 오히려 ‘내 탓입니다’고 자신을 탓하며 새로운 창조적인 방법을 찾아 보십시오. 그럴 때 서로 오해 때문에 소원해 진 관계가 더욱 굳건한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영국의 유명한 히극 배우인 ‘찰리 채플린’을 잘 아실겁니다.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구두, 지팡이에 콧수염을 하고, 중절모자를 쓰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은 마치 덜 떨어진 바보처럼 보이는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역설적으로 세상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해하면서도,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같은 방법으로 대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그들을 향해 인내하고 있습니다. 



악을 이기는 것은 악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 모순 같아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고, 인간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세우는 방법인 것임을 알고, 사랑하고, 인내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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