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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10.14 | 잠언 8장 22-36절 | 이선기 목사




잠언 8장 22-36절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은 잠언 8장 22-36절 말씀으로 “지혜를 사모하고 또 사모하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부흥사로서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우는 목사님 성결교회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 예화 중에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금강석이 뭐죠? 예 다이아몬드입니다. 예화가 이렇습니다.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금덩어리와 과자를 주면 금덩어리를 내어버리고 달콤한 과자를 먹는 것과 같다. 이는 금덩어리를 모르는 까닭이다.

옛날 독일의 광물학자가 아프리카에 어떤 지역에 갔더니 까만 흑인 여자아이가 돌 네 개를 가지고 공기를 하는 것이다. 그 돌을 보니 금강석이라. “얘, 너희 집이 어디냐?” 하니 “저기예요” 하면서 가리킨다. 그 아이를 따라 그 집에 가보니 아이의 엄마가 움막집에서 핏겨죽을 쑤어 먹고 있었다. “여보시오, 이 아이가 당신의 딸입니까?.” 그렇다고 하니 “미안하지만 이 아이가 가지고 노는 돌을 나에게 파시오” 하니 “아이고, 별 양반 다 보겠군. 돌을 팔기는 무얼 팔아요? 그 양반 그거 드려라” 하니 그 아이는 돌 네 개를 광물학자에게 주었다.

광물학자는 지갑에서 돈 몇 십원을 주었다. 그 부인과 어린이는 횡재했다고 매우 기뻐하였다. 광물학자는 금강석을 가지고 자기의 나라에 와서 몇 백만 원에 팔고 정부와 교섭하여 방문했던 아프리카 지역에 가서 거기서 채광한 것이 독일 정부 재산의 절반 이상이나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 지역 사람은 돈 몇 푼 받고 주었지만 아는 독일 사람에게는 자기만 아니라 자기 국가에까지 큰 행복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내가 전하는 온 세계의 대종교인 기독교의 주인 되시는 예수는 누구이신가? 예수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예수를 모시기만 하면 현재 문제, 미래 문제, 개인 문제, 가정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가 다 해결되건만, 그저 사람들은 몰라서 몇 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허영에 속아서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장사하고, 먹고 자고 애나 낳고, 먹고 자고 변소에나 다니면서 번민 고통에 병들고, 마지막에는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가 해골바가지가 되고 화장장에 가서 한줌의 백골, 재와 연기로 사라지는 경우가 이 시간에도 부지기수가 아닌가?

1950-60년대 크게 활동했던 목사님이셔서 메시지가 아주 원색적이고 강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강한 찔림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허영에 속아서 사는 인생을 내려놓고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 붙들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새벽마다 묵상하고 있는 잠언에서 그토록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지혜입니다. 그리스도가 곧 지혜 아닙니까? 지혜는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 그 무엇보다 귀한 지혜, 어제 우리는 엊그제 다룬 7장과 확 달라진 밝은 분위기로 8장을 시작했습니다. 지혜는 귀하고도 귀하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공개적으로 널리 계시된 지혜, 지혜가 누구에게든지 소리 높여 부르신다는 사실, 또한 지혜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하고 보배롭다. 은이나 정금이나 진주 보다 귀하다 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귀한 지혜의 최종 대단원입니다. 지혜가 얼마나 귀한지 그 지혜의 시작, 기원을 밝히며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선 1. 첫 번째로 지혜는 선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지어지기 전에 먼저 존재하고 계셨던 지혜이기에 귀하고 또 귀하다는 사실입니다.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지혜가 세움을 받았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지혜는 시간을 초월하여 먼저 계신 하나님이 곧 지혜이시다는 표현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요한복음 1장 1-4절 태초에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로고스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죠. 여러분 어거스틴의 고백록 11권 13장 16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간을 창조하셨고, 모든 시간을 앞서 계시니, 시간이 없었을 그 때에 어떤 시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시간을 만드셨기에 하나님이 처음과 나중 되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시오. 모든 것들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존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시간의 제약을 받으시지 않으신 분, 오히려 시간이 하나님의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간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는데 천 대까지 존재하시는 분만 말하실 수 있는 표현입니다. 우리 인간은 3대 4대까지만 봐도 증손자, 고손자를 보았다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천 대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모든 시간의 시작도 하나님이 하셨고 마지막 마무리 오메가 끝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의 근원이시고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여긴다면 시간의 지나감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시간을 아까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6-17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거울보고 내가 이렇게 늙었구나 이젠 아무것도 못하겠네. 혹은 다리 아프시고 몸 여기 저기 아프신 것 때문에 낙심하고 힘빠져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까워해야 합니다. 이제 기회가 얼마 안 남았구나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나머지 잘 쓰임 받으리라.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하나님 만나기 전에 한 가지라도 더 하고 가리라. 이렇게 되야 합니다. 곧 뒤따라올 신앙의 후배들에게 아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 할 정도로 멋진 신앙의 선배님의 본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에이 그 사람 맨날 아프다 아프다. 맨날 병원에만 있다 갔어. 혹은 에이 그 사람 맨날 그저 자기만 위해 살다 갔어. 이러면 되겠습니까?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다리 떨리기 전에 세계 여행이 아니라 다리 떨려도 영혼 구원. 다리 떨려도 주의 일, 몸이 불편한데도 주를 기쁘시게 하므로 열심히 시간을 아끼면서 끝까지 달려가서 영광의 면류관의 주인공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시간을 지으신 분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지만 공간, 즉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그 창조주 하나님과 지혜가 함께 있었고 항상 함께 즐거워했다는 사실입니다. 24절부터 29절까지를 보십쇼. 마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표현하고 있습니다. 29절에 바다, 큰 샘들, 25절 산, 언덕 26절에 땅도, 들도, 세상 진토 전부 다 이 땅을 지으실 때 기초적으로 만드신 것들입니다. 27절 보십쇼. 하늘, 궁창, 해면, 28절 구름 하늘, 바다의 샘들, 29절 바다의 한계, 땅의 기초를 정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들을 짓기 전부터 계속 지혜가 함께 있었고. 이제 30절을 보십쇼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여러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는 표현은 창세기 1장의 창조 때에 하루하루 창조하시고 나서 꼭 하셨던 표현과 같은 표현입니다. 뭐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좋았는데 우리 인간이 인간의 편리와 편함을 위하여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것들을 인간의 마음대로 지나치게 욕심내고 개발한다고 하면서 마음껏 쓰다가 훼손하여 지금 그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지혜가 함께 즐거워했던 그 모습이 변형되어 많이 망가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가 깨달을 것은 그저 인간이 쓰기에 좋은 대로 공간을 변형시키는 것은 지식일 뿐이고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하나님이 기쁘시도록 원래대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도 종말의 시기를 연기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시면서 환경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지혜를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3. 마지막으로 지혜를 매일매일 사모하시고 가까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4절은 마치 22절 23절 시간을 지으시기 전에 함께 있었던 지혜, 그리고 24절부터 29절까지 공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 있었던 지혜를 같이 묶어서 지혜를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사모하라 하고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구절 같은 느낌을 줍니다. 34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날마다”라는 시간적 표현을 보십쇼. 히브리어로 “욤 욤”이라고 합니다. 용용 죽겠지의 용용이 아니라 욤욤 이라고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라는 뜻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지혜를 사모하라. 여러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지혜를 하나님을 사모하고 계십니까? 아멘하셔야 하는데.. 꼭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 모든 기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면 어떻게 매일 매일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개는요 매일 봐도 매일 주인을 반기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혹시 한 몇 일 만에 오면 개가 삐집니다. 너무 주인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매일매일 사모하고 또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사모해도 우리를 더 사랑하셔서 독생자 주신 그 큰 사랑에 비하면 부족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34절 다시 보십쇼. 문 곁에서 라는 표현과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문 곁, 문설주 옆, 이건 가장 가깝다는 표현입니다. 몹시 기다리는 사람은 그 사람 문 앞에서 기다리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지혜를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열심히 사모하고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만나고 있습니까? 주일예배가 기다려지시고 새벽에 만나고 싶어서 저절로 눈이 떠지고 일찍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날마다, 공간적으로 문 곁에서 문설주 옆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다음 35절 보십쇼.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는 이미 생명, 즉 영생을 얻었고 부활의 나라 특권을 얻었고 여호와께 은총, 즉 너무 큰 은혜를 이미 얻은 자들입니다. 자격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구원해 주신 은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생명과 은총 주신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께 평생 감사의 삶을 살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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