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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07.23 | 고린도후서 9장 1-9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9장 1-9절


  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신뢰할 만한 일꾼들, 디도와 다른 두 형제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것에 대해서 기록해 주고 있는데, 이 세 사람을 파견하는 이유는 본문 20절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모금한 돈을 다루고 운반함에 조금도 부정한 것이나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보낸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16-17절에서는 디도에 관하여, 그리고 18-19절에서 다른 형제에 관하여, 22절에도 또 다른 형제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모금을 위해 파견하는 세사람중 디도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6-17절에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그랬습니다.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냄은 디도의 마음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간절함이 있듯이, 동일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간절함’이란 간절한 바램, 열성, 근면함 등의 뜻이 있는데, 그러니까 디도에게는 진정으로 고린도교인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 열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디도의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이런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교회에 대해서, 교인들에 대해서 걱정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신 겁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마음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디도의 간절함이 자신의 자원함으로 되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17절에 그랬죠?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함은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라 하라' 해서 마지못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참석한 기도모임이나, 예배나, 봉사는, 오래 못가는 겁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할 때 모든 일이 즐겁고, 보람있고, 은혜가 넘치는 겁니다. 



디도는 처음에 바울의 지시하는 대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보고나서, 바울의 자랑이 무엇이며, 그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염려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와는 무관한 고린도 교회였는데, 그 교회를 방문하고 난 지금은 자신도 그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그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염려와 기도가 디도 자신의 염려와 기도가 된 겁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디도와 같은,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데, 18-19절에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애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고 했습니다. 



이 두 번째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마도 복음을 잘 증거해서, 또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복음증거에 힘을 써서, 또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잘 살아서, 칭찬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가 “복음으로서” 칭찬을 받되 또 “모든 교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마게도냐에서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이 두번째 사람은 아마도 마게도냐 교회들 중 한 교회에서 선별한 사람일거라 보이는데, 이 사람에 대한 바울의 칭찬은 마게도냐 모든 교회들, 곧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 교회들에서 모두 칭찬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면 바울이 그의 이름을 거명하여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본인이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바울에게 원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앞에 이름이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번째 사람은 정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을 더 원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모금하는 일에 아무런 부정한 것이 없고, 투명하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교회들이 인정하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을 선택한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 모금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을 온전하고 흠없이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본문 22절에 세번째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디도와 한 형제)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번째 사람 또한 참으로 신실한 사람인데, 바울은 이 사람이 과연 정직하고 물질을 탐하지 않는 사람인가 여러 면에서 지켜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사람이 과연 모금하는 일과 모금한 연보를 관리하는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어서 그 일을 감당케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실 때, 과연 그 사람이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보시기 위해서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확실하게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최종적인 인정함을 받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바치는 과정을 통과 해야만 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과연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는 연보를 감당하기에 합당한 형제라고 판단이 되어서, 그에게 고린도 교인들의 연보를 관리할 수 있도록 보낸 겁니다.  



바울은 이 세 사람을 고린도교회에 보내면서  24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고 부탁을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말로만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열매도 있는 사람들인 것을 내가 보낸 이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는 당부입니다. 



목회자의 기쁨은 그가 사역했던  또는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이 될 때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보람이요 기쁨입니다. 



오늘 바울은 연보하는 일을 격려하고 모금한 돈을 관리하는 일로 파견한 세 사람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과연 하나님의 일군의 덕목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간절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간절함은 하나님과 그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의 헌신이나 봉사는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복음 증거를 위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정직하고, 근면하고, 불의와 부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쓰임받는 일꾼을 찾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험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길 뿐 아니라, 우리 마음과 삶에 평강과 축복으로 함께 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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