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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07.16 |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분을 받았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한 일들을 기록해 주고 있고,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고후4:8-9) 또 고후 12:2-4에 보면 자신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갔던 체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화자찬한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을 가리켜 속이는 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16절을 보면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본문 11절에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떤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였을까요? 그것은 바울의 모든 행동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를 원했습니다. 본문 13을 보십시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런 삶의 목표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바울은 본문 14-15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한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였다는 겁니다. 특히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는 말씀에서 “강권한다”는 말은 “지배한다, 통제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강하게 지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바울은 이 본문에서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9-10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을 지배했기 때문에 바울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이었던 겁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세상에 복음을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선하게 사는 박애주의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겁니다. 



도덕이 우리를 경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경건하게 만들고, 삶의 목표를 바꾸게 하는 겁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그 자신의 삶의 목표를 말한 다음에,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16-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난 후에 바울은 그의 관점이 달라지게 되었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사람도 육신대로 알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육신대로”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로 “부패한 본성에 따라서”라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부터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적인 것을 보고 결정하거나 판단하려고 합니다. 인종, 신분, 재산의 많고 적음, 교육정도에 따라 판단을 합니다. 



바울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모든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바울 자신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으면, 누구든지, 그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나 자유자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적게 받은 사람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겁니다. 



어느 교회의 창립예배에 참석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의 장로님이 기도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우리 교회의 목표가 달라지게 하옵소서. 성장에 목표를 두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두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삶이 달라지게 하옵소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순간 저의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목표가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생활패턴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를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십시오.



세번째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의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제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 직책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내용이 고린도후서 6:3-10에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모든 일에 일꾼이 되어, 환난, 궁핍, 고난, 매맞음, 같힘,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오래 참고, 거짓없는 사랑으로 살았다는 겁니다. 



이런 모든 사실에 근거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 성도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삶의 중심되는 가치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매 순간 모든 관계들과 만남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새로운 만남속에서, 업무상 사람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  화목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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