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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3.11 | 사무엘상 21장 1-9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상 21장 1-9절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새벽 묵상


우리는 몇 일간 다윗과 요나단의 눈물겨운 우정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알고 활을 쏘아서 도망하게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붙잡고 슬피 울고, 축복해 주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부터는 다윗이 본격적으로 도망다니는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 갑니다. 



이 때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볼 때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1절에 보니까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다윗 생각에 혹시 자신이 도망자신세라는 것을 알고 사울왕에게 알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본문 2절에 “다윗이 제사장 아히레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일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식을 달라고 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의 말을 듣고 평민은 먹을 수 없는 진설병과 골리앗을 쳐서 죽인 칼을 내줍니다.   



나중에 사울이 이 일을 알고, 왜 다윗과 공모해서 나를 배반했느냐?고 아히멜렉과 제사장 온 집안을 85명이나 죽여 버립니다. 



사실 다윗은 사울의 충신이고, 사위이고, 자기 아들의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죽이려고 할까요? 지금 다윗을 죽이려고 동원한 군사가 3,000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원수가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사울은 충성스러운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오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치사하고 못된 죄가 시기 질투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자기 제사는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자기 제사를 받지 않는 것과 아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왜 아벨을 죽어야 합니까? 가인의 생각에는 아벨이 없으면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시기고 질투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는 것은 가인 자신의 문제이지 아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가인은 스스로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고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다음번 가인의 제사를 받았을 것이고, 평생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졌을 겁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다윗만 죽이면 자기 왕위가 튼튼하고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물러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인간 세상에는 일등이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죽어야 내가 일등이고, 네가 살면 나는 꼴찌라고 생각합니다. 수 천만명이 뛰어도 일등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모두 일등 뿐이고 이등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어릴 때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지옥에 가니까 사람들이 빼빼 말라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보니까 긴 수저로 자기 입에만 넣으려고 하다보니까 자기 입에 밥 한 톨도 안들어 가더랍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보니까 그곳 사람들은 살이 포동 포동 쪄있더랍니다. 그 이유를 보니 긴 수저로 밥을 떠서 서로에게 넣어주더라는 겁니다. 다 같이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반대로 다윗은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힘도 있고 기회도 있고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엔게디 굴에 숨어있는데 그 굴속에 사울이 들어와서 볼일을 보는 것입니다. 이때 부하들은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으니 처치해 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이라면서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옷자락 벤 것으로 인해 마음을 아파했습니다. 삼상 24:6절을 보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갚는 것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극히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일도 자기가 처리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물어 봤습니다.



삼상 23장에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들어 와 타작 마당을 탈취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내가 블레셋을 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사울을 피해다니는 다윗으로서는 그일라에 싸우러 간다는 것은 사자굴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부하들도 반대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여호와께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대답하십니다. 삼상 23:4절에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인간의 생각으로는 위험하고 불안했지만 주님께서 가라하심으로 가서 승리를 했던 겁니다. 



이렇게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사람이나, 자연과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받으려는 자세, 들으려는 자세, 순종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로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사순절 새벽 공동기도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2.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힘을 잃고 멈추게 해 주옵소서! 


3. 사순절에 온전히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온전히 주님을 닮아가게 해 주옵소서! 


4. 가정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며 치유와 평안을 느끼게 하옵소서!


5.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6.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모든 병자들이 치유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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