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09.17 | 창세기 24장 54-67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24장 54-67절


54.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62.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새벽 묵상


창세기 24장은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인데, 거의가 이삭의 신부감을 얻는 이야기입니다.  이삭의 결혼을 보면 처음부터 기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1-9절까지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종 엘리에셀과 허벅지에 손을 넣고 맹세하며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2-14을 보면 엘리에셀이 우물가에 물길러 나온 처녀중 자신과 자신의 낙타에게 물을 주는 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참한 신부 한 명을 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신부를 만나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면 당사자인 이삭은 어땠습니까? 63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저물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러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묵상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겁니다. 이삭도 결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잘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위해서 계속기도했던 겁니다. 



자녀들의 결혼 때문에 걱정하시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배필이 다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정해주신 배필을 다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 처럼 결혼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배필이 있는데 자신의 잘못된 욕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으로 만나지 못하거나, 만나도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기계나 로보트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하는 것도 선택은 인간의 책임에 속하게 두신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일일이 하나 하나를 다 지목해 주시면서 “너는 이 사람 하고, 너는 저 사람하고” 짝을 지으라고 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오늘 예를 들어서 결혼하는 일에 있어서도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분명한 결혼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배필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결혼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라고 마음대로 자기 정욕과 욕심을 따라 결정하면, 불행해 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불행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 엘리에셀, 당사자 이삭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 묵상한 말씀이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엘리에셀을 통해서 다 들은 오빠 라반과 아버지 므두엘은 50절에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리브가를 데리고 가도록 허락을 한 겁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종 에리에셀은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데려가도 좋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에야, 54절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잠을 잤다” 고 했습니다. 정말 엘리에셀은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54절 후반부에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랬습니다. 리브가의 식구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뭐 이런 사람이 있나” 기가 막혔을 겁니다. 55절에 보면 리브가의 식구들이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하라”고 한 것처럼 그 당시 결혼 예법으로 볼 때 그 다음날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지나친 요구였을 겁니다. 



그래도 엘리에셀은 56절에 보면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라고 말을 합니다. 



사실 엘리에셀도 그 곳까지 거리가 약 1,200km 정도의 먼길을 왔습니다. 리브가를 만날 때까지 긴장도 했을겁니다. 그런데 일들이 잘 풀렸습니다. 그러면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이 찾아 왔을 겁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같으면 그 당시 예법도 있고하니 열흘쯤 쉬었다 가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엘리에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시간이라도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행동이 부지런해지고, 삶의 목적이 분명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 갈 동안 찬송하게 합소서.


손과 발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일을 위하여 민첩하게 합소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데이트 약속 시간에 계속 습관적으로 늦게 나온다면 의심을 해 보아야 할 겁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싶어 미리 나올 겁니다. 예배 시간에 자주 빠지거나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했거나 식어버린 사람이 틀림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에셀에게는 인간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먼 길을 찾아가 수고를 했으면 어느 정도는 대접을 받을 줄도 알고, 또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모 형제지간인데, 서로 인간적인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좀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명을 가진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한 열흘 쯤만 머물다 가라고 하는데도 당장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니까 식구들이 그러면 리브가가 원하는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젊은 처녀였으니까 고향과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을 떠나 멀리 가는 것이 섭섭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얼마간은 머물다 가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대답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본문 58절을 보면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가겠다”는 겁니다. 리브가도 정말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는 모든 것을 다 즐기며 살 수는 없습니다. 리브가의 이 자세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적교훈을 줍니다.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은 전에 즐기던 것을 다 즐기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한 열흘만이라도 더 있다가 가겠느냐? 아니면 지금 당장 가겠느냐?” 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물은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영리한 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 좋다”고 합니다. 리브가가 받았던 질문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한 마디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삭이 연애를 해서 정이 든 남자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이삭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삭을 빨리 보고 싶어서 리브가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리브가도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단했습니다. 어린처녀 리브가가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마땅히 끊어야할 것들이 있는데, 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 시간부터 당장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도 결단하기 어려울 때 순종하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신령한 세계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