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9.10 | 창세기 21장 22-34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21장 22-34절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새벽 묵상


지금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곳은 ‘그랄’ 이란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때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한 후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어 기쁨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와서 무슨 말을 합니까? 본문 22절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랄 왕이었고 비골은 그 군대의 장관이었습니다. 이들은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브라함 보다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찾아 와서 하는 말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들이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는 겁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가장 영광스런 말은 이런 말을 듣는 겁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말입니까? 



이런 말을 듣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이 처음 그랄 땅에 들어 왔을 때에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심히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 때문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지 않았습니까? 



사실 아비멜렉은 그 때 아브라함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인연이 아니라 서로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인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언제나, 어떤 일에나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분명 그들의 눈에 아브라함이 위대하게 보여졌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들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불신 가족들이 그것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여러분을 얕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이 여러분을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보고 감동하고 감격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아비멜렉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고는, 이제 아브라함에게 매어 달리는 겁니다. 내가 너를 이 땅에서 후대한 것처럼 너도 앞으로 우리의 자손들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비멜렉은 그 땅의 왕이고 주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방인이고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까? 주인이 나그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인들, 교회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의 조롱거리로 바뀌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리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을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하나님없이 사는 저 불쌍한 사람들, 자신들의 인생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지를 못하는 저 불신의 사람들, 누가 구원 할 겁니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들에게 “어머니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은 참으로 성공한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장로님이신데 예배시간에 집에 계시네? 우리 어머니는 권사님이신데 예배시간에 T.V를 보고 계시네”하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어서는 안됩니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믿음으로 살려고 애쓴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보면 대등한 관계에서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낮은 자와 높은자 사이의 언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교만할 만도 한데, 절대로 교만해 하지 않았습니다. 일곱 암양 새끼를 주면서 언약을 맺습니다. 아비멜렉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을 왕같이 높여 대접했습니다. 잘 되었을 때, 남들이 자기를 인정할 때 자기를 더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자기를 낮추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비멜렉의 종들에게 억울하게 당했던 일을 말합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에게 우물을 빼앗기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짚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몰랐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전에는 아브라함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말도 한 마디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고, 사과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말도 제대로 못하며 사는 분들이 계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잠잠히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지금 다 말하면서 살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면 반드시 때가 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끝까지 사람 앞에서 겸손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기념식수를 하였다는 겁니다.  찬송가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더욱 강해 지는 증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더욱 건강하게 되어지는 증거, 남에게 꾸러 가던 사람이 남에게 꾸어 주는 증거, 성령 충만의 증거, 축복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통해서도 그 증거를 보여주고, 사업을 통해서도 그 증거를 보여주고, 직장 생활을 통해서도 이런 증거를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증거를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심어 나가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