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8.26 | 창세기 14장 17-24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14장 17-24절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새벽 묵상


아브람이 사로잡혔던 조카 롯과 빼앗겼던 재물들을 찾아서 개선 장군처럼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때 두 왕이 아브람을 영접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왕은 소돔왕이었고 다른 한 왕은 살렘왕이었습니다. 17절 18절 말씀이 그 말씀 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 살렘 왕 멜기세덱이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때 아브람의 기분을 짐작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아브람이란 인물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는 한낱 이방 땅에 들어와 사는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니까 왕들이 나와서 그를 영접을 합니다. 이 순간의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브람에게는 이 순간이 대단히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여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잠깐 롯을 다시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날 때에 그는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바라보며 화려한 도성이었던 소돔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소돔의 화려함을 누리고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아브람은 외로이 빈 들판에 남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았습니다.  그 때의 그 순간은 분명 롯이 화려해 보였습니다. 롯의 삶이 훨씬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멀지 않은 시간에 전쟁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자리에 이르고 맙니다.  아브람이 아니었으면 그는 일생 포로가 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이 떠날 그 당시에 초라했습니다. 고독하게 빈 들판에 남았습니다. 물이 넉넉하고 화려한 성읍을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전쟁의 영웅이 되어 왕들의 영접을 받는 영광과 감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영광스런 믿음의 승리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 겁니다.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로 하여금 최후의 승리와 영광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조급하게 살지 맙시다. 조금 멀리 보며 삽시다. 하나님은 결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성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여기 아브람을 영접한 살렘 왕 멜기세덱이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왕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고 아브람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왜 아브람을 영접합니까? 성경은 이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람을 맞이 합니다.  



이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영접하며 행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축복과 감사의 요구입니다. 본문 19절에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은 믿음으로 행한 아브람의 아름다운 행동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빌어줍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은 들은 아브람은 본문 20절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두었더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내어 놓습니다.  이것이 전쟁에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하나님께 돌리는 겁니다. 



물론 감사의 표현과 고백이 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삶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결국 돈은 우리의 가장 값진 것을 드리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헌금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리는 헌금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돈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하나님 앞에 드려 질 때 그것은 물질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신앙의 고백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간섭하셨다”라는 신앙의 고백이 헌금입니다. 



또 한 왕이 아브람을 영접합니다. 누구입니까? 소돔왕입니다. 소돔 왕은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그를 환영하며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고 합니다. 



지금 소돔 왕으로부터 이 제안을 받는 아브람은 대단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안은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전리품을 가지도록 함으로서 아브람과 동맹을 맺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승리 후에 찾아오는 중요한 위기의 순간입니다. 유혹의 순간입니다. 그 승리를 한 순간에 무너지게 만드는 무서운 순간입니다. 이 때에 분명히 해야할 것은 소돔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브람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소돔의 것으로 사는 자가 아니며 소돔과 함께 손을 잡고 사는 자가 아닙니다.  만일에 소돔과 동맹을 맺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소돔의 것을 부러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 이상 세상의 것으로 배불리려고 하면 그것이 위기요 유혹인 겁니다. 



이 때 아브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본문 22절과 23절입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것으로 치부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아브람 같은 아름다운 신앙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아름답고 거룩한 신앙으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이유는 ‘복의 통로’로 삼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던 겁니다. 



오늘 우리도 나 혼자 잘먹고 잘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축복이 흘러 갈 수 있도륵 축복의 통로가 되도륵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이삭에게 야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죽었어도 그 축복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속 계승되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혜와 복이 나에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나 때문에 교회가, 나 때문에 이 사회가 커다란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잘되고 복을 받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