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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7.25 | 고린도후서 10장 1-1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10장 1-11절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특히 7절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사람의 외모나 그 사람의 행동,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 그런 것이 전부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예수님의 일군이라고 하면서 찾아 온 사람들이 와서는 바울에 대해서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복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다” “바울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지만 그는 진정한 사도가 아니다” ”'바울은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이다”는 등의 말로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 보다 더한 것은 교인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동조하여, 자신들도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육체적인 시각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이 비난을 받아, 거짓 사도, 거짓 복음을 전한 사람처럼 여겨졌지만, 거기에 대해서 해명하기보다는, 이러한 비난의 이면에 있는 중요한 특징을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것,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 육신적 것들만 보고서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빠져 든 함정이 바로 이겁니다. 바울을 비난한 것은 작은 문제이고, 결국은 성도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성도는 사람이나, 이 세상에 대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눈과 귀를 열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보면, 신령한 세계에 대한 경험, 체험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잘못된 전통과 흐름이 기독교 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체험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성령께서 우리 삶의 주체가 되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주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대 교인들도 고린도교회 성도들 처럼, 점점 이런 영적인 특징들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7절에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영적인 자질, 영적인 특성을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한자로 靈性은 ‘신령한 성품, 혹은 영적인 성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성이란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특징을 말하는 겁니다.  영어로는 spirituality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한자와 비슷해서 '정신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성이란 말은 주로 카톨릭에서 많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주로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초월적인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그것으로 현실과 세계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자들도 영성을 말할 때 신비한 체험을 하고,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영성이 충만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금 전통주의 교회에서는 영성을 특별한 체험이나, 은사를 말하는 것 보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영성의 다른 말은 신앙생활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즉, 영성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혹은 “누구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그 정신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인격,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일어나는 삶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훈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말씀 훈련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묵상과 기도 훈련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물론 영적인 체험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그러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이런 변화를 통해서 주님을 조금씩 닮아가는 겁니다. 이것을 영적성숙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변화가 있을 때 . 가정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에 세상이 교회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합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을 때, 고맙게 생각하세요. 왜냐하면 그래도 세상이 교회에 대해서 아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맞아. 교회가 다 썩었어”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왜요?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믿는자들이, 교회에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교회가 왜 이래. 썩었어” 이런 말 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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