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7.21 | 고린도후서 8장 1-15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8장 1-15절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당시의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의 섬기는 일, 헌신하는 일, 사랑하는 일, 겸손의 모습을 소개해 주면서 고린도 교회도 이와 같은 생활을 해 줄것을 부탁하고 있는 겁니다. 



마게도냐 도시들에 대한 말들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게도냐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 중 우리가 잘 아는 교회들은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베뢰아 교회입니다.



성경 속에 마게도냐 인으로서 바울의 동역 자들이 된 사람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20:4절에 소개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가 있습니다. 로마서 15:26절에 보면 마게도냐 사람들이  예루살렘성 중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쁘게 헌금했고, 오늘 본문 2절에도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게도냐 교인들은 힘을 다해서 연보를 기쁨으로 풍성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힘 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남을 섬기는 일에 참여했다고 하는 겁니다. 정말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 된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은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겁니다.  



사실 마게도냐는 지리적으로 수많은 전쟁과 내란으로 인해서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늘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이 넘치는 기쁨은 오히려 예루살렘의 어려운 형제들에게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해서 보냈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런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굳센 믿음을 고린도 교회에 소개해 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21장에서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을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 하시면서 칭찬하셨듯이, 바울도 마게도냐 교인들이 극심한 어려움과 가난 중에서도 아낌없이 연보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마게도냐 교인들의 굳센 믿음을 고린도 교회에 모범으로 소개해 소개해 주고 있는 겁니다. 



주려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마음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을 보면, 너무 현실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서, 정말 해 야 할 것마저 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본문의 마게도냐의 교회들 처럼, 자기 힘껏, 또 그 이상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섬김의 자세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마게도냐 교인들은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이웃을 돕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들은 헌금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헌신을 잘 했다는 겁니다. 즉, 헌금보다 헌신을 더 잘했습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먼저 전인격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즉, 교회에 출석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잘 하다보면 자연히 헌금도 잘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헌신의 자세가 곧 하나님께 열 납 되어 집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을 줄 압니다. 충성, 봉사, 헌신의 말들은 입으로 줄줄 많이 말하지만, 진실로 마게도냐 교인들처럼 자원하여, 기쁨으로 헌신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겁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줄 수 있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마게도냐 교인들은 본문7-8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풍성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진실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보이지 않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진실하려면 먼저 보이는 이웃에게 진실 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23-24절에 있듯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고 하셨습니다. 이 것을 보면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먼저 이웃과의 화목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요한 삶은 우리의 가진 것이 여유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과 나눌 때에 이루어집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그들의 극한 상황가운데서도 그들의 것을 아끼지않고 풍성하게 내어줄 때, 그리스도안에서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주님께서 물고기 2마리와 떡 다섯덩이로 5,000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신 기적도, 적은 것을 떼어서 나눌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진 것을 떼어서 나눌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혹은 교회가 혼자만 잘 살겠다고, 혼자만 구원받으면 됐다고 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받았다고, 입으로 말하나, 여전히 가난한 자요, 여전히 불쌍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사도 바울 시대에 고린도 교회에게 쓰여졌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기억하고, 환난과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통로로, 은혜의 통로로 우리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통로가 깨끗하려면 계속 은혜가 흘러 가야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게 되기를 바랍니다.